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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방송 박람회 ‘2008 NAB(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 Show’가 열렸다. NAB에 참가한 정찬필 KBS PD가 ‘NAB 참관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누구, 편집 대신 해줄 분!!
진짜 황당한 물건은 전시장 밖에 있었다. 라스베가스 한 호텔, 천여명의 청중 앞에 ‘어시스턴트 에디터’라는 소프트웨어를 들고 나온 발표자는 이 물건이 편집을 자동으로 해준다고 주장했다. 이때만 해도 장내는 그저 웃어넘기는 분위기, 또 무슨 장난감인가 싶은 정도?

그런데 소스 클립에 목차를 적절히 넣어주고 동영상의 주제와 길이를 알려주니, 잠시 뒤에 나타난 화면은…. 헉!! 인터뷰들이 적당히 잘라져 나오는 건 물론이고, 중간에 덮어주는 그림과 이름, 장소 자막까지 삽입되어 있었다. 천여명의 방청객들은 경악. 이런 덴장, 이래도 되는거야?
자동 번역기, 자동 작곡기에 이어 자동 편집기까지…. 편집의 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방향과 진행 속도가 문제다. 대체 IT 기반의 제작환경이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대한민국의 PD들은 그 냄새라도 맡고 있는 것일까?

RED의 도발, 싸고 질 좋은….
진홍색 마크와 벌건 천막 앞에는 긴 줄이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될 성 싶었다. RED, 영화를 꿈꾸는 이들의 로망. 모 메이커의 2억원대 카메라에 버금가는 혹은 뛰어넘는 화질이 단돈 4000만원에. 더구나 애초부터 파일로 저장되니 필름값 들어갈 일도 없고, 편집은 150만원짜리 파이널컷 프로에서 다 이루어진다.
DV 6mm 카메라가 방송 현장을 뒤집어 엎었듯, RED의 등장은 영화판을 뒤엎을 기세다. 도저히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소문, 그리고 물량이 없어 미국 외에는 아직 판매할 계획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 근데 이게 영화판에만 영향을 미칠까? 글쎄.

와신상담 소니, 전쟁 끝? 다시 시작?
HDNA라고 구호를 들고 나온 소니, 새로 고화질을 구현하는 XDCAM HD422 카메라와 새버젼의 편집툴 베가스, 그리고 워크플로우를 관리하는 HD Exchange 등을 들고 나왔다. HD 제작은 시작부터 끝까지 소니에 맡겨달라는 주문인 듯,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방송장비라면 카메라도 편집기도 소니가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IT 환경에서는 다르다. 프로페셔널 NLE 시장에서 소니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카메라는 파나소닉의 P2메모리와 빠른 처리 속도의 코덱에 일격을 당했다. HDNA는 이 난국을 뚫고 나가고 싶은 소니의 희망사항이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강한데, 계속될까? 소니의 독점이?

개과천선 Avid, New Thinking 혹은 반성문
NAB 쇼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한 Avid와 Apple. 그러나 두 회사 다 전시장 밖 호텔에 각각 진을 치고 할 건 다하고 있었다. Avid는 그간의 고집스러운 행보에 비해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폐쇄적 하드웨어 기반 정책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옮겨가기, 이에 따른 파격적인 가격 인하, 그리고 윈도우에서만 돌아가던 것과 달리 맥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기.

아는 사람은 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 Avid사는 아예 모토를 New Thinking으로 삼았다. 그리고 함께 한 일행들은 이것을 ‘반성문’이라고 해석했다. NLE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대적할 것이 없어 보였던 Avid. 고가정책을 도도하게 지키며 당당하던, 혹은 그러려 했던 Avid의 변화는 사실 더 이상 시장을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고육책이다.시장과 사용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결과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자화자찬 Apple
같은 날 Apple은 바쁜 사람들을 불러놓고, 파이널컷 프로의 유료 사용자가 100만명을 넘어섰고, NLE 시장 점유율이 40%가 넘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새로운 제품이라고는 1년전부터 내놓겠다고 큰 소리 치던 물건인 파이널컷 서버를 겨우 꺼내놓으면서 말이다. 그나마 한글 지원도 아직 제대로 되지 않는 놈을. 여유? 아니면 오만? 모른다. 시장에서 계속 승승장구하면 여유이고, 실패하면 오만이 될 거다.

방송은 없다, 콘텐츠와 유통 뿐!!
NAB는 원래 방송인들의 단체이고, 그러니 NAB 쇼는 방송을 위한 전시회여야 할 것이다.하지만 NAB 쇼에서 방송은 더이상 키워드가 아니다. 오직 콘텐츠와 유통수단이 있을뿐. 전시장을 뒤덮고 있는 기운은 방송을 더 이상 방송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다. 구글이 라디오, 엄밀히는 오디오 콘텐츠 전송 플랫폼을 제공하고, 방송사의 콘텐츠는 최종적으로 지상파 송출과 동시에 아이폰에 전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정찬필 KBS 미래전략TF PD

방송 관련 업체들의 뜨고 짐은 방송사 자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시장변화에 적응하고 따라가면 여유가, 그렇지 못하면 눈물 섞인 반성문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게다가 한 번 잃은 기회를 다시 찾기가 쉬울까? 그들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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