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방석호 이사 복귀와 차기 사장의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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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주간 미디어 리뷰]

방송통신위원회는 4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하며 사퇴했던 조상기 KBS 이사의 후임으로 방석호 홍익대 법과대 교수를 추천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일 그를 임명했지요.

방송계 일각에서는 조상기 씨가 통합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추천으로 KBS 이사가 됐던 점을 들어 통합민주당이 왜 자신의 추천 몫을 빼앗기느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일리 있는 지적이기는 하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소 애매한 대목이 있습니다. 방송법은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KBS 이사를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정당 추천 몫을 정해놓지는 않았지요. 실제로도 방송위는 2006년 8월 지금의 KBS 이사회를 구성할 당시 방송인, 방송학자, 법률가, 회계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대표, 여성계 대표 등을 안배해 추천했지요.

다만 방송위 자체가 방송법에 따라 정파적으로 구성돼 있다보니 야당 추천 위원들이 추천한 이사들은 야당 성향, 대통령과 여당 추천 위원들이 추천한 이사들은 여당 성향을 띠게 된 것이지요. 이사들마저 자신은 여당 추천으로 이사가 됐느니, 야당 추천으로 됐느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통합민주당이 자신의 추천 몫을 주장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조상기 이사의 빈자리는 통합민주당 몫이 아니라 당시 여당 몫이었고 이제 여야가 바뀌었으니 한나라당의 의중이 반영되는 게 맞다"고 말하더군요.

위원들이 정치권의 추천을 받아 선임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할 방통위는 물론 정치권의 추천 규정조차 없는 KBS 이사들이 (아무리 현실이 그렇더라도) 스스로 방송법의 제정 취지를 지키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도 그 자리가 통합민주당 몫인지, 여당 몫인지를 떠나 방 교수의 이사 선임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 그는 2006년 9월 KBS 이사로 임명됐다가 두 달 남짓 후인 11월 9일 정연주 사장 재선임 과정에 항의하며 추광영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와 함께 사퇴한 인물이지요.

두 사람은 사장 추천 투표를 마친 뒤 "오늘 KBS 이사회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례없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면서 "이사로서의 전문성, 비전이 KBS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또한 사장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뽑기 위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의 일방적 파행에 책임의 일단을 느껴 사퇴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의 여권에서 보자면 정연주 사장을 연임시키기 위한 이사회의 파행적 운영을 폭로하고 이사직을 사퇴한 방 교수의 행동이 대단히 의로운 것으로 여겨질 만했을 겁니다. 방통위가 그를 이사로 복귀시킨 것도 보은 차원에서 이해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야권에서 보자면 이사회의 정파적 운영을 비판한 방 교수의 주장과 행동 역시 한나라당 성향의 인사를 사장으로 만들기 위한 정파적인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겁니다. 더욱이 책임의 일단을 느껴 사퇴했다는 인물을 다시 선임한 것 자체가 대단히 정파적인 행위로 느껴질 만하겠지요.

2006년 당시 이사회의 최종 투표 결과 정연주 사장이 6표, 김인규 전 KBS 이사가 3표, 기권이 2표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사들의 여야 성향이 8대 3인데, 김인규 후보가 6대 5까지 근접했다는 말이 나돌았던 게 전혀 근거가 없지 않았던 셈이지요.

이제 방석호 이사의 복귀로 이사회의 여야 성향은 4대 7로 좁혀졌습니다. 2006년의 기권 2표까지 지금의 여권 성향이라고 본다면 6대 5로 역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조상기 이사가 정연주 사장과 함께 한겨레신문에 근무했던 인연과 그의 통합민주당 성향으로 미뤄볼 때 정 사장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지요.

또 논문 표절 시비를 빚은 신태섭 동의대 교수, 로스쿨 로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박동영 전 KBS 광주방송총국장, 한국가스기술공사 감사를 겸하고 있는 이춘발 전 지역신문발전위원장, 여성부 장관으로 내정됐다가 부동산 투기 의혹 때문에 낙마한 뒤 노조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은 이춘호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등의 이사들에 대해서도 사퇴설이나 퇴진론이 계속 나돌아 그 비율도 조만간 바뀔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야권 일각에서는 정 사장이 중도 퇴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그 적절한 시점은 조상기 이사가 사퇴하기 전이었다는 이야기가 뒤늦게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정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소문이 한때 나돌았고, 정 사장이 조창현 방송위원장ㆍ서동구 스카이라이프 사장과 만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동반 사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이야기도 들렸지요.

만일 그때 정 사장이 사퇴했다면 엄기영 MBC 신임 사장이 선출될 때 여권이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처럼, KBS 이사회가 여권의 의도대로 후임 사장을 제청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요(2월 11일자 이 글에서 저는 새 정부나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정 사장이 한동안 재직하는 것도 부담스럽겠지만, 만일 조기 퇴진하더라도 현재 KBS 이사의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열린우리당의 추천에 의해 선임된 사람이기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월 엄기영 사장 선출을 마친 뒤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며 3월 방문진 이사에서 사퇴했습니다. 이수호 이사의 빈자리도 곧 채워질 예정인데 누구 몫인지를 놓고 또 한 차례 시비가 일지 모르겠습니다.

차기 사장 김인규 내정설과 낙하산 시비

방송가에서는 현 정부가 내년 11월까지 정 사장이 임기를 채우도록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교체 시점은 올림픽이 끝난 뒤인 9월께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가을 정기국회에서 방송법을 개정한 뒤가 될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교체 시점과 방식에 따라 변수가 많이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2006년 이사회에서 정 사장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던 김인규 전 KBS 이사가 차기 사장으로 가장 유력해 보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방송전략팀장을 맡았고, 대통령당선자 비서실의 언론보좌역을 지낸 것이 흠결로 꼽히지만 경력이나 능력을 볼 때 그만한 인물이 없고 위기의 KBS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권 핵심의 신뢰가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방통위원 물망에도 올랐고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을 제의받았을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요.

김인규 전 이사를 지지하는 인물들은 서동구 전 KBS 사장이 선임될 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언론특보를 지낸 점 때문에 노조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노 대통령의 개입 의혹이 불거져 8일 만에 사퇴한 것과는 엄연히 사정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신문 출신이었던 서 사장과 달리 KBS에 꼬박 30년을 근무했고, 2006년 KBS 직원 설문조사 때 김 전 이사를 후임 사장감으로 꼽았던 응답이 가장 많았을 만큼 내부 구성원 상당수가 그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제가 2월 11일자 이 글에서 김인규 전 이사가 KBS 차기 사장을 염두에 두고 이명박 후보 캠프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을 거듭 거절하자 이 후보 진영에서 "KBS 사장은 아니더라도 KBS 사장을 선택할 권한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는 항간의 소문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김 전 이사 쪽 사람들은 "캠프에 합류하지 않으면 KBS 사장을 할 생각을 말라"며 강권해 할 수 없이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만일 그가 선임된다면 논란을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에 이어 국가기간방송의 수장마저 대통령 측근이 차지한다면 야권뿐 아니라 언론계를 비롯한 각계에서의 반발과 비판이 적지 않을 것이고 이미 여권 내부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요.

김인규 이사 다음으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안국정 SBS 부회장입니다. SBS 사장을 지낸 경력에다 업무 추진력 등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많고 출신학교 인맥들이 적극 밀고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김 전 이사처럼 명백한 논란거리도 없어 보이지요.

그러나 28년간 근무했던 KBS를 떠나 10년간 민영방송(상업방송)에 몸담았다는 사실 때문에 KBS의 상당수 직원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많다고 합니다. 여권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SBS 사장이 된 인물을 또 시킬 수는 없다거나, 정연주 사장을 지지하는 그룹이 주로 PD들이어서 PD 출신에게 사장을 맡기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군요. 또한 송도균 방통위원을 비롯해 청와대의 김상협 미래비전비서관과 곽경수 언론2비서관 등 새 정부 들어 SBS 출신들이 많이 발탁된 것도 부담스러울 듯합니다.

나머지 강동순 전 방송위원, 한중광 전 방송협회 사무총장, 이민희 전 KBS영상사업단장, 이병순 KBS비즈니스 사장 등이 거명돼왔는데 이들에게도 이런저런 이유로 장단점이 함께 따라붙더군요.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란에 신문들 한 목소리

▲KOBACO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민영 미디어렙을 신설해 완전경쟁체제를 도입할 경우 신문, 지역민방, 종교방송 등이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파방송광고를 대행하고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독점체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KOBACO는 방송 공영화와 함께 제5공화국의 대표적인 유산이어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4월 25일 미디어 관련 학회들의 학술대회에서 ''언론계의 5공 청산''을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목 대상이 됐지요.

실제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전략적 규제개혁 방안''의 하나로 KOBACO 독점체제 해소를 꼽았고, 문화부는 최근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의견을 청취하며 방송광고판매제도의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부의 의뢰를 받아 KOBACO가 작성한 ''방송광고제도 변화에 따른 매체별 광고비 영향 분석''에 따르면 민영 미디어렙을 신설해 완전경쟁체제를 도입할 경우 신문, 지역민방, 종교방송 등이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OBACO 자체가 경쟁체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의심받을 소 지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매체별 광고비 영향의 전반적인 추세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지요.

이 내용이 소개되면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고 친여와 반여, 규제 완화와 공공논리로 갈려 대립 양상을 보여오던 신문들도 모처럼 입을 모아 정부의 추진 방침을 비판하고 있지요. 반대로 공공성을 외쳐오던 언론노조는 민영미디어렙 도입을 주장해온 SBS와 MBC 구성원들이 집행부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지 침묵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반대의 근거로는 방송광고료 인상, 지상파방송 독과점 심화, 시청률 위주의 경쟁 가속화, 프로그램의 자본 예속 심화, 미디어 균형발전 저해 등이 주로 거론됩니다. 신설 미디어렙에 대해 지역민방이나 종교방송의 광고판매를 각기 떠맡도록 한다 해도 미디어렙들은 사실상 방송3사의 자회사처럼 운영될 수밖에 없어 지역민방이나 종교방송보다는 방송3사의 계열 PP들에게 더 신경을 쓸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요.

그러나 광고관련 단체들과 SBS, MBC 등은 KOBACO 독점체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WTO와 한미FTA 등에 저촉될 우려가 있고, 끼워팔기 등 불공정거래 관행이 지속되고 있으며, 지상파의 우월적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반론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경쟁체제 도입이 2000년 통합방송법 출범 당시부터 국민적 합의나 다름없었다는 점도 보태집니다. 방송법 73조 5항을 보면 미디어렙 신설의 길을 열어놓은 것을 알 수 있지요. 공공론자 가운데서도 상황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들어 보편적 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위기에 빠진 지상파TV의 경영 여건을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더군요.

2000년 미디어렙 신설 논의 과정에서 문화부는 실질적인 경쟁의 효과를 얻기 위해 민영 미디어렙을 두 개 이상 신설해야 한다는 규제개혁위원회에 맞서 공-민영 미디어렙의 역무를 구분한 뒤 단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제한경쟁을 주장했습니다. 당시에는 문화부가 KOBACO 독점체제를 단숨에 풀려는 시도를 막는 입장이었으나, 지금은 처지가 뒤바뀌어 오히려 문화부가 앞장서서 경쟁체제를 도입하려는 것처럼 비치게 된 셈이지요. 문화부는 2005년에도 방송광고 태스크포스를 꾸려 민영 미디어렙 도입방안 등을 논의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현재 KOBACO는 정순균 사장이 물러난 뒤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답답한 측면이 있을 겁니다. KOBACO를 누가 관할하느냐를 두고 문화부와 방통위가 다투고 있는 것도 KOBACO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지요. 방송사들도 미디어구도 재편 논의와 관련해 이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몰라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 제가 5월 1일자로 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에서 물러나 한국기자협회 상근부회장 겸 언론연구소장으로 옮겼습니다. 연합뉴스를 그만둔 것은 아니고 파견 형식으로 당분간 일하게 됐습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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