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갈까 이대로 남을까
상태바
이대로 갈까 이대로 남을까
여의도를 떠나며
  • 승인 2000.0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이 이야기는 구전보다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나을 성싶다.
|contsmark1|
|contsmark2|
|contsmark3|
|contsmark4|
|contsmark5|<대학가요제> 예선 준비로 분주하던 99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내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다.
|contsmark6|
|contsmark7|"이화여대의 유세경 교수인데요."
|contsmark8|
|contsmark9|한 번도 만난 기억이 없던 분이다.
|contsmark10|
|contsmark11|"혹시 학교로 오실 의향이 없으신가요?"
|contsmark12|
|contsmark13|"이대에서도 남학생을 받나요?"
|contsmark14|
|contsmark15|농담으로 가장했지만 이미 유쾌한 긴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contsmark16|
|contsmark17|"언론홍보학부의 교수로 모시고 싶습니다."
|contsmark18|
|contsmark19|"놀라운 제의군요. 전화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contsmark20|
|contsmark21|
|contsmark22|
|contsmark23|
|contsmark24|사실이 그랬다.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이 자랑스러웠을 뿐이다. 교수는 좋은 직업이고 이대는 매력적인 직장이지만 pd일을 그만두고 갈 만한 곳은 솔직히 못 된다는 게 판단이었다.
|contsmark25|
|contsmark26|"중요한 일이니 만나서 의논하는 게 예의일 듯싶습니다. <대학가요제>를 끝내고 한번 조용히 뵙죠."
|contsmark27|
|contsmark28|나는 은근히 신나 있었다.
|contsmark29|
|contsmark30|"마음만 먹으면 대학으로 갈 수 있다니…"
|contsmark31|
|contsmark32|멀리 위스컨신 매디슨에서 유학하는 젊은 친구들의 얼굴이 일순간 떠올랐다. 95년 가을부터 일년간 나는 그들의 진지하고도 피로한 삶을 곁눈질한 적이 있다.
|contsmark33|
|contsmark34|"미국의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고도 자리 얻기가 쉽지 않다던데…"
|contsmark35|
|contsmark36|내가 그들을 기운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말의 양심(?)이 나를 때렸다.
|contsmark37|
|contsmark38|
|contsmark39|
|contsmark40|
|contsmark41|10월 18일. 드디어 유 교수를 만났다.
|contsmark42|
|contsmark43|"기회는 왔습니다."
|contsmark44|
|contsmark45|그 분은 내가 훌훌 털고 나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contsmark46|
|contsmark47|"기회는 왔지만 저는 기회주의자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mbc를 떠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contsmark48|
|contsmark49|늘 섭외만 하다가 섭외를 당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며칠 후엔 학교의 몇몇 교수들과 식사하는 자리도 가졌다. 나의 연기(?)가 그럴 듯해서인지 순진한 교수분들은 오히려 나를 안스러워 했다.
|contsmark50|
|contsmark51|"그래도 꼭 오십시오. 산학협동 제대로 하십시다."
|contsmark52|
|contsmark53|나는 나의 몸값이 오르고 있음을 느끼며 한편으로 불안했다. 넌지시 거부의 뜻을 밝혔지만 믿고 싶지 않다는 표정들이어서 차츰 나를 당혹하게 했다.
|contsmark54|
|contsmark55|
|contsmark56|
|contsmark57|
|contsmark58|<민족통일음악회>의 평양 공연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절차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12월초에는 총장도 면담했다. 인자한 인상의 그 분은 마치 내가 이대로 오리라고 굳게 믿고 계신 듯했다.
|contsmark59|
|contsmark60|"21세기의 새로운 교수상을 기대합니다."
|contsmark61|
|contsmark62|나는 알 듯 모를 듯 미소지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넘겼다.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경건함이 느껴졌다. (어릴 때 부흥회에 끌려가 그냥 통성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그런 느낌이랄까) 교수들로부터 집중적인 전화공세가 이어졌다. 급기야는 "이제 안 온다고 하면 명문사학을 우습게 보는 겁니다. 주 pd만 자존심이 있습니까?"하며 위협하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유 교수에게 거취를 표명해야 하는 마지막 날짜를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신정연휴 끝난 후 1월 4일 최종 입장을 전달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그간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방송에 정진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contsmark63|
|contsmark64|
|contsmark65|
|contsmark66|
|contsmark67|문제의 1월 4일. 그러나 운명은 나를 다른 길로 떠밀었다. 편성실의 고위간부가 점심 회식 후 나를 방으로 불렀다. 그의 표정은 평상시와 달리 근엄하고 진지했다.
|contsmark68|
|contsmark69|"당신에게 마지막 경고이자 당부를 하겠소."
|contsmark70|
|contsmark71|추웠다. 그러나 들어보는 수밖에.
|contsmark72|
|contsmark73|"당신은 이제 당신의 이름을 버리시오. 그 헛껍데기 같은 이름 날리기에 그만 연연하시오. 이젠 데스크를 지키시오. 부장으로서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기 바라오."
|contsmark74|
|contsmark75|
|contsmark76|
|contsmark77|
|contsmark78|고언은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마치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불만의 소리가 내게 밀려왔다. 부분 부분 인신공격성 질타도 없지 않았다. 괴로웠던 것은 그 내용이 대체로 맞는 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지적대로 나는 방송사를 등에 업고 허명 쌓기에 골몰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허명 때문에 방송사가 얻은 신뢰감은 전혀 없었던가.
|contsmark79|
|contsmark80|반성과 반발이 교차하다가 끝내 나오지 말아야 할 말이 나오고 말았다.
|contsmark81|
|contsmark82|"이제야말로 떠날 시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서나 제가 부장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침 오라는 대학이 있으니 그리로 옮기는 방안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contsmark83|
|contsmark84|속이 후련한 건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그분의 낯빛이 충격에서 분노로 헤엄치는가 싶더니 뜻밖에도 평온한 이성으로 금세 돌아왔다. 그는 한 수 위였다.
|contsmark85|
|contsmark86|"축하하네. 내가 당신이라도 그렇게 하겠네."
|contsmark87|
|contsmark88|
|contsmark89|
|contsmark90|
|contsmark91|운명은 이렇게 어이없이 바뀌고 말았다. (아마 이혼도 이렇게 충동적으로 하는 게 아닐까)나의 최종결심을 전해 들은 유 교수는 반색하며 기뻐했다.
|contsmark92|
|contsmark93|"어떻게 어려운 결단을?"
|contsmark94|
|contsmark95|……
|contsmark96|
|contsmark97|"잡아주길 은근히 바랐는데 전혀 안 잡더군요. 저 사실 쫓겨난 거예요."
|contsmark98|
|contsmark99|야릇한 표정 뒤에 숨겨진 문맥(난맥)을 그분이 눈치채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contsmark100|
|contsmark101|
|contsmark102|
|contsmark103|
|contsmark104|만 17년의 방송사 pd 생활은 이렇게 맥없이(?) 정리되었다.
|contsmark105|
|contsmark10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