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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PD블로그] 박기호 PD의 '드라마 드라마'

올 해 안에 동명의 드라마 2편이 동시에 방송을 타게 되더군요. 조선시대 의적이 2008년 상반기부터 해서 하반기까지 안방을 계속 휘젓고 다니는거죠.^^ 물론 내용은 차별을 꾀한다고 하지만 정작 제작하는 당사자들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울겁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대작을 제작하는 곳이 제가 근무하는 곳은 아니어서 그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같은 타이틀의 드라마를 방송하기로 양 방송국이 이미 결정을 하였다는 것이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치부하기에는 꽤 큰 후폭풍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단상을 적어 봅니다. 드라마시장내부에서 생겨난 피치못할 경쟁이 궁극적으로는 드라마PD의 생존권과 시청자들의 권리까지 훔치게(?) 되는 상황말이죠.

▲ ▲ SBS 드라마 <일지매>에서 일지매 역을 맡은 탤런트 이준기 ⓒSBS
솔직히 현재 드라마시장에서 '대박'감이라고 평가받는 작품들은 방송사 3사의 드라마PD 모두가 알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손에 꼽히죠. 사실 워낙 연출자들이 직접 기획하거나 신인작가들이 들고오는 기획안에 대한 문호가 좁기도 하니까요. 어쨌든 그 '대박'작품들을 잡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궁극적으로 그 경쟁에서 승리한 쪽이 '대박' 작품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죠. 물론 이런 상황속에서 때로 비슷한 아이템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동안 열풍을 몰고 왔던 '정조' 같이 말이죠.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또 기획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속 주파수가 때로 묘하게 일치할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드라마시장 자체의 자정능력일겁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직장인 가장의 밴드성공기>를 다룬 영화가 거의 동시에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개봉한 쪽이 흥행이 더 안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그 영화들중 한 편에 출연했었던 배우가 이런 좋은 영화들을 동시에 개봉할 수 밖에 없는 충무로 현실을 개탄하는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나는데 저는 지금 이 상황에 당시의 상황이 겹쳐지는군요. 물론 드라마가 한 두푼짜리도 아니고 이번처럼 100억 가까운 대작들이 될 경우에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편성을 하는 것도 변경을 하는 것도 말이죠. 드라마라인업이 삽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1-2년전부터 준비를 해 온 것인데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당사자들도 너무 많기 때문이죠. "쟤는 올 해 아니면 캐스팅 할 수 없어!" "저기서는 올 해가 아니면 투자할 여력이 없답니다"

하지만 정작 결정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충무로 영화는 어디 한 두푼 짜리인가요? 웬만한 영화 마케팅비용만 20-30억까지 치솟았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는 작년에 목도했쟎습니까? 그 수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자된 비슷한 내용의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충무로가 입게 된 피해말이죠. 지금 드라마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솔직히 그렇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걸려 있고 엄청난 돈이 걸려 있는 사극 프로젝트라면 이런 모든 상황들을 고려해 오히려 좀 더 신중하고 좀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어야 하지만 각 방송국 드라마 제작의 주체들이 그런 의무를 방기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저는 이 정도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마도 모든 상황들을 다 고려하고서도 전략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일단 시청률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대단히 섬뜻한 결정이라고 보아야겠지요.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기사에서 보았듯이 분명히 두 작품의 차별화는 이뤄질겁니다. 그리고 분위기도 많이 다르겠죠. 그런데 시청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죠? 왜 하필이면 2008년에 같은 이름을 한 의적의 이야기를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누어서 비교해보고 그 색다른 매력을 찾아보는 노력까지 시청자들이 해야하는가에 관한 문제말입니다. 어쩌면 대박이 될거라고 입소문이 나면 일단 무조건 자사의 프로그램라인업에 잡아 놓고 정작 새로운 기획을 쏟아낼 수 있는 젊은 연출가들과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자체는 막아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런 일을 부채질하는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절박한 지상파의 경영악화 상황이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 급하다고 언제까지나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법 배우는 것을 계속 미루어야 할까요? 

언젠가 문득 드라마 제작현장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해 보면 어떨까 꽤 진지하게 생각해 보다가 제목까지 발전시켜 본 게 바로 <드라마 드라마>였답니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드라마제작현장이고 또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제작자들의 희노애락은 드라마의 어떤 캐릭터보다도 더 리얼하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 앞으로 여의도동 46번지(드라마팀이 있는 KBS 별관이랍니다.)의 <드라마 드라마>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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