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만난 ‘엄지공주’의 유해진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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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의 힘”

30일 〈MBC 스페셜〉을 통해 방송되는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2편’을 연출한 유해진 PD. 그는 그동안 간암 말기 아내를 위해 병실을 지킨 남편의 사랑이야기 '너는 내운명' 등 모두 세 편의 휴먼다큐멘터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한 대학생이 유해진 PD를 만나 그의 작품 그리고 연출관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간암 말기의 아내를 위해 병실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는 남편의 사랑이야기 ‘너는 내 운명’,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하는 대장암 말기의 아빠 이야기 ‘안녕, 아빠’, 120cm의 키와 35kg의 몸무게를 가진 1급 장애인의 몸으로 엄마를 꿈꾸는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2006년과 2007년 MBC 가정의 달 특집 <휴먼다큐 ‘사랑’>으로 방송된 이 세 편의 휴먼다큐는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 이 세편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MBC 유해진PD(40)의 작품이다.

▲ 유해진 PD의 대표 휴먼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사랑〉의 '너는 내운명' 편 ⓒMBC


방송의 힘을 빌려 세상을 변화 시킨다

유해진 PD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386세대의 끝자락인 88학번이었던 그는 전공 공부보다 학생운동에 더욱 열심인 학생이었단다. 그는 대학생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이 고민은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대상황에 비판적이던 진보적인 대학생들이 방송이나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저는 방송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바꾸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고민 끝에 그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PD라는 직업을 택했다. 그가 1996년 MBC 입사 이래 시사, 교양 PD만을 고집한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다.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힌 진짜 사랑이야기

<휴먼다큐 ‘사랑’>은 모두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공교롭게도 ‘너는 내 운명’의 서영란씨와 ‘안녕, 아빠’의 이준호씨는 촬영 도중 세상을 떠났고, 방송에는 그들의 죽음까지도 고스란히 담겼다. 유PD가 처음부터 방송에 죽음을 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너는 내 운명’의 경우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지나고 영란씨가 세상을 떠났어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죠.

방송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그는 죽음 앞에서 더욱 아름답고 순결해지는 사랑을 보았다. “죽음 앞에서 사랑이 순간적으로 폭발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2007년 <휴먼다큐 ‘사랑’>에는 죽음을 앞둔 사랑, 죽음 앞에서 잘 정돈된 사랑을 담고자 했죠.” 그러던 중 찾아낸 이야기로 만든 방송이 ‘안녕, 아빠’다. ‘안녕, 아빠’편의 가족들이 아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 〈MBC 스페셜〉‘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연출한 유해진 PD ⓒMBC
2년 연속으로 <휴먼다큐 ‘사랑’>을 연출하면서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이나 사랑을 예상한건 아니었다. 2006년 ‘너는 내 운명’편이 방송된 뒤에는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오는 엄청난 양의 글들에 놀랐고 반응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느라 새벽 4시가 되도록 잠들 수 없었다. 또 2007년 ‘안녕, 아빠’편이 방송된 이후에도 이틀 동안이나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가 ‘안녕, 아빠’인 것을 보고 매우 신기했다고.

시청자들은 왜 <휴먼다큐 ‘사랑’>에 열광했을까. “사람들이 사랑, 사랑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 또한 그랬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진짜 사랑의 존재를 확인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감동한 것 같아요.” 자신들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깨닫게 됐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는 방송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는 바람을 조금은 이룬 것 같다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휴먼다큐

<휴먼다큐 ‘사랑’>은 짧으면 3~4개월, 길면 6개월 동안 촬영이 이뤄졌다. 촬영기간 동안 유PD는 출연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응급 상황엔 직접 간호사를 부르러 가기도 하고 촬영을 하지 않을 때는 간병도 해주면서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자 가족과 같은 신뢰가 쌓이면서 더욱 진솔한 장면들을 담을 수 있었다. “일이 생겨 하루 이틀 병원을 떠나게 되면 오히려 보고 싶다고, 빨리 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인 거죠. 촬영하면서 서로를 얼마나 진실 되게 알아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PD와 출연자의 관계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그들을 대했다. ‘너는 내 운명’편에서 유PD가 혼수상태인 아내 때문에 슬퍼하는 정창원씨를 꼭 끌어안아주는 장면에서도 이런 그의 따뜻한 모습이 드러난다. “사실 PD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면 안돼요. 하지만 저를 보며 ‘안아줘요’라고 말하는 창원이의 모습을 보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저도 너무 슬펐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유PD는 여전히 출연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너는 내 운명’의 정창원씨와는 동갑내기로 지금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구사이가 되었단다. “2007년 ‘너는 내 운명’으로 받은 상금으로 창원이가 송아지를 사서 지금 지리산에서 키우고 있어요.(웃음)” 유PD는 ‘안녕, 아빠’편의 아빠를 잃은 어린 남매에게 아빠 역할도 해주고 있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아이들이 사는 대전으로 직접 놀러가기도 하고 아이들을 서울로 초대해 놀이공원이나 수족관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작업을 해서 서로 친구나 가족이 된 느낌이에요. 쉽게 지워지지 않을 인연이 됐죠.”

이렇게 쌓인 신뢰감 덕분에 작년에 방송된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의 주인공 윤선아씨의 임신과 출산과정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윤선아씨는 임신에 성공하자마자 유PD에게 연락을 해왔다. 촬영을 마친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의 두 번째 이야기는 다가올 5월 30일, MBC 스페셜을 통해 방송된다.

그와 다큐멘터리

유해진PD는 다큐멘터리를 ‘진실의 힘’이라 생각한다. ‘너는 내 운명’편이 방송되고 수많은 출판사와 영화제작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는 의아함이 앞섰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 책을 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 이야기를 영화로 옮겨도 감동적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일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재 MBC 스페셜 팀에 몸담고 있는 그는 차기작을 구상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휴먼다큐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무엇을 찍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꾸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유해진PD. 그의 다음 작품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분명 진실의 힘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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