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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회귀, 18년 전 KBS는 지금과 닮았다

[1990년 KBS VS 2008년 KBS] 원성윤 기자l승인2008.05.27 12: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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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KBS 4월 투쟁은 침묵과 굴종의 KBS의 역사를 저항과 투쟁의 역사로 바꾸기 위한 대반란이었다.”

90년 KBS 방송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KBS 4월 투쟁〉은 18년 전 그날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37일간의 제작거부, 경찰투입으로 117명의 KBS 사원이 연행됐던 그 때 KBS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꺾인 민주화의 꽃, 그리고 예정된 수순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관제방송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던 KBS에 민주화의 열매를 익게끔 만들었다. 88년 KBS 이사회도 그나마 독립적으로 서영훈씨를 사장으로 선출했다. ‘땡전뉴스’를 만들어냈던 KBS 방송이 민주화와 함께 서서히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1988년 MBC가 광주민주화 항쟁을 다룬 〈어머니의 노래〉를 제작한데 이어 다음해인 3월 18일에 KBS는 〈광주는 말한다〉등을 방송했다.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방송이 새롭게 거듭나자 이에 감동한 시청자들의 격려전화가 방송사에 쏟아졌다.

   
▲ 1987년 6월 항쟁은 KBS 프로그램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일게 했다. ⓒKBS 노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노태우 정권은 곧바로 ‘언론통제’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3당 합당’으로 지배력을 되찾은 민자당과 청와대는 KBS에 대한 감사원 특별회계를 통해 ‘법정수단 변태지출’ 사건으로 서영훈 사장을 사퇴 압박했다. 노사 합의로 지급된 법정수당이 1억 여 원 오지급 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1990년 2월 8일 감사원이 특감에 착수하고 언론을 통해 KBS를 둘러싼 의혹이 주요기사로 보도됐다.

이러한 정부의 퇴진 압박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탈법 경영에 대한 정당한 제재’라는 여당의 입장과 ‘방송장악을 위한 불순한 음모’라는 야당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었다. 결국 서영훈 사장은 이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3월 2일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사퇴했다.

낙하산 사장 선임, 공권력에 짓밟힌 KBS

노조는 3월 3일 ‘KBS 자주수호 사원비상총회’를 열어 700여명의 사원이 참여한 가운데 ‘정부의 방송공사에 대한 외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 가두홍보 등의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조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KBS 이사회는 신임사장으로 유신정권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서울신문사 사장 서기원씨를 KBS 사장으로 제청했다.

90년 4월 4일, KBS 노조는 ‘서기원 취임 거부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6일 관제사장 저지대 결성, 7일 안동수 위원장 삭발식 등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9일 서기원씨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KBS 노조는 10일 출근저지 전사원 결의대회를 열고 내부역량을 결집했고, 11일 오전 8시 30분 KBS 본관 앞 민주광장에서 서기원 사장과 맞닥뜨렸다. ‘KBS 4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 KBS 노조는 서기원 사장 출근 저지투쟁을 계속 벌였으나 공권력 투입 등을 통해 사장실 진입에 성공했다. ⓒKBS 노조

전날 1차 시도는 실패했지만, 12일 서기원씨는 사장실 진입에 성공했다. 그는 곧바로 공권력을 요청했고, 백골단 1000여명이 동원돼 KBS 사원 117명을 강제연행 했다. 당시 교양국과 기획제작국이 4시부터 전면 제작 거부를 시작했고, 각 직종 및 실국별로 제작거부가 번졌다. 13일에는 KBS 26개 지역국 사원들도 대거 상경해 제작거부에 동참했다. KBS는 조합원 4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비상사원총회’를 개최했다.

KBS 노조는 서기원 퇴진과 구속자 석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송출기술부를 제외한 전원이 방송제작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이러한 KBS노조의 투쟁에 대해 CBS와 MBC 노동조합이 동맹 제작거부에 동의했다. 각 실 국장들마저 사원요구 관철과 공권력 개입 반대를 결의했다.

한 이사의 양심고백 “사장 임명, 외압에 의해 이뤄져”

이런 가운데 서영훈 사장 퇴임 때 반대표를 던졌던 한운사 KBS 이사의 양심고백도 이어졌다. 한 이사는 “이사회에서 서기원 사장이 이미 내정됐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KBS 이사회가 서기원 사장의 임명제청이 외압에 의해 이뤄졌음을 폭로했다.

   
▲ 1990년 KBS 4월 투쟁은 많은 국민들로 지지를 받았다. ⓒKBS 노조

이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KBS를 방문해 파업지지에 박수를 보냈고, 친정권적 방송으로 시청료거부운동을 벌였던 여성단체대표단 또한 지지방문을 했다. 영등포 시장상인들은 인삼즙을 들고 와 이들의 투쟁에 힘을 보탰다.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던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며 서기원 퇴진 여론은 점점 더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공권력을 투입했다. 당시 최병렬 공보처 장관은 “사내질서를 정상화시키지 않을 경우 필요한 모든 조처를 다하겠다”며 30일 밤 11시 15분경 서울시경 산하 전경 19개 중대 3000여명이 방송공사 본관에 투입해 철야농성 중이던 조합원 333명을 연행했다.

MBC노조, KBS 공권력 투입 항의하며 연대파업

다음 날인 5월 1일 MBC 노조는 ‘KBS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즉각적인 연대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KBS 비대위 역시 MBC로 사무실을 옮겨 5월 2일 양 방송사 노조 연대로 ‘구속 동지 석방촉구 및 노태우정권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등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의 기운이 높아지는 가운데 MBC 경영진이 4일 KBS 직원의 MBC 출입을 봉쇄한 데 이어 밤 10시 40분 경 경찰병력 100여명이 MBC 노조 사무실에 들어와 전영일 KBS 비대위 위원장을 연행했다.

이에 KBS 노조는 즉각 김철수 신임비대위 위원장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정비하여 언론민주화와 국민의 방송을 위한 국민걷기대회, 서기원 퇴진 100만명 서명운동 등을 통해 투쟁을 이끌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민주화투쟁은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국민에게 고발하는 성과만 남긴 가운데 7일 MBC 노조가 연대파업 만 6일 만에 제작복귀한데 이어 KBS 노조도 17일 제작복귀를 선언함으로써 종료되게 됐다.

   
▲ 지난 90년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통해 밝혀낸 ‘법정수단 변태지출’을 보도한 일간지(왼쪽)와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들의 국민감사신청 6일 만에 전격적으로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2008년 5월 22일자 보도 (오른쪽)

역사의 교훈, 특감 → 사장 사퇴 → 낙하산 인사 선임

지난 90년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통해 밝혀낸 ‘법정수단 변태지출’ 사건은 최근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들의 국민감사신청 6일 만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2008년 ‘감사원 KBS 특별감사’와 그 모습이 너무나도 닮았다. 학자들로 구성돼 “양심적으로 작성했다”는 KBS 경영평가보고서가 KBS 이사회의 입맛에 따라 “부실경영·적자경영”으로 방송문안이 도출된 것은 압박의 방법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벌써부터 정연주 사장 후임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임기제가 보장된 사장자리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겨 수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KBS의 90년 4월의 역사는 과거의 일인 동시에 정연주 사장 이후의 KBS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일는지도 모른다. 정권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정 사장은 마지막 기로에 서있다. 1990년 서영훈 사장과 2008년 정연주 사장의 모습은 그렇게 닮아있다.


원성윤 기자  socool@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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