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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와 대립각 세운 'PBS' 흔들기

요즘 한국에서는 흥미로운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새 방송통신위원장과 임기제 사장인 정연주 KBS 사장을 둘러싼 것인데, 이런 일은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대부분이 민영방송이라서 수익을 가지고 사장이 바뀌는 일은 있어도, 방송을 둘러싸고 있는 이처럼 극적인 드라마를 미국에서 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제공=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공영방송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법제상으로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려고 하지만, 여러 정치집단들이 재정이나 이사회 등을 통해 관여하려 한다면 정치 개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치개입을 막으려고 만든 여러 가지 수단은 사실 권력을 가진 쪽에서 의지가 없고, 국민의 감시가 없는 한 무용지물인 탓이다.

한국에는 최시중 위원장과 정연주 사장이 있다면, 미국에는 케네스 톰린슨(Kenneth Tomlinson) 공영방송 위원장과 빌 모이어(Bill Moyers)라는 존경받는 프로듀서가 있다. 공영방송 위원장이 된 톰린슨이 미국 공영방송, PBS가 너무 리버럴하다는 비판을 하면서 시작된 이들의 충돌이 가시화된 것은 2005년이었지만, 사실 그 시작은 방송을 보는 보수와 리버럴의 뿌리깊은 시각 차이로 비롯된다.

우선 빌 모이어 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60년대에 케네디 정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70년대에 들어서 뉴욕 주의 한 신문사에서 언론인으로 첫발을 디딘 후, 미국 공영방송 PBS에 사회이슈를 주로 다루는 <빌 모이어 저널>(Bill Moyers Journal)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세간의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후 NBC와 CBS에서도 잠시 일하기도 했으나 그의 대부분의 경력은 PBS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한 탐사 비평 프로그램들로 30개가 넘는 에미상을 수상한 것으로 요약된다. 2007년부터 다시 방송되고 있는 <빌 모이어 저널>은 타 방송사에서 다루기를 꺼려하는 전쟁, 종교, 기업 윤리들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현 부시정부와 대립 각을 세우고 있다.

▲ 미국의 공영방송 PBS 홈페이지.

다른 한편에 서 있는 톰린슨 또한 언론인 출신으로 베트남전 종군기자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 ‘미국의 소리’에서 일하기도 하고, 또 ‘리더스 다이제스트’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0년 미국 공영방송을 관장하는 CPB(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의 이사로 공영방송에 관여하기 시작,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사회 위원장이 되었다. 그의 취임은 부시정권의 공영방송에의 정치적 개입의 시작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톰린슨이 부시 정권의 건축사라고 불리우는 칼 로브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이 이런 의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런 의심이 구체화된 것은 CPB의 감사가 톰린슨의 전횡에 대한 리포트를 2005년 공개하면서 부터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톰린슨은 보수 프로그램을 많이 방송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재정에서 CPB 사장 임명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간섭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방법에서 이사회는 프로그램에 관여하지 못하고, CPB의 독립성을 보장하기로 한 것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톰린슨의 프로그램 제작 개입을 보면, 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톰린슨은 <월 스트리트 저널>이라는 보수 성향의 경제 프로그램이 400만 달러가 넘는 후원을 받도록 직접 지원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그는 이사회에는 알리지 않고 모이어가 당시 제작하던 <나우>(Now)라는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기 위해 공화당 당원을 고용해 이 프로그램의 리버럴 성향을 밝히려고 했다.

이에 대해서 모이어는 공개 토론을 제안하기도 하고, 또 모니터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반격을 가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결국에는 제작하던 <나우>를 포기하고 PBS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드라마에는 극적인 반전이 있기 마련. 모이어는 2005년 6월 미디어 개혁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범 국민적인 지지를 받은 CPB와 PBS의 독립 유지라는 이슈는 나중에 미 의회로 하여금 톰린슨을 조사하게 만들었다. 위에 언급한 비리들이 이 조사로 밝혀지자 톰린슨은 CPB 이사회 의장에서 사임을 하게 된다.

그 후에도 톰린슨은 ‘미국의 소리’ 방송을 관장하면서 공금 유용, 수당과다 신청 등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공화당과 부시, 백악관의 지원으로 아직까지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한편 모이어는 그의 간판프로그램인 <빌 모이어 저널>을 지난해 다시 시작, 그 첫 소재로 이라크 전쟁에서의 미디어 역할을 조명, 다시 시사 비평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고 있다.

돌아보면, 톰린슨은 물러나고 모이어는 다시 방송을 시작해 겉으로는 PBS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에 없던 공영방송의 정치화로 공영방송의 중립성에 대해 큰 의문을 남겼다. 어느 측이든 공영방송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이고, 이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추락이 그 둘이다. 공정과 공영으로 국민에게 받을 수 있던 지원은 정파를 따라 조각이 난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nomedia@gmail.com

한국에서도 그런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정부의 KBS 사장 조기 사퇴 촉구로 방송의 독립성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들의 신뢰를 재물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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