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C 교차소유 금지 완화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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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 교차소유 금지 완화의 진실
[기고]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 승인 2008.05.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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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직역을 하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천동지할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는 한 귤이 탱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이 매우 중요함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어떤 제도의 맥락(context)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로도 통한다.

지난해 12월18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75년 이후 32년 동안 유지돼온 '동일지역 신문-방송 교차소유 금지'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003년 의회에서 좌절된 첫 시도 이후 FCC의 두 번째 모험이다.
이 완화 결정에 대한 국내의 접근을 보면, 귤이 탱자가 돼버리는 웃지못할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이 결정의 세부 내용이 미국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검토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 진출을 노리며 준비해온 '조중동'은 물론, 언론 공공성과 여론 다양성을 지키려고 하는 언론운동 세력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언론운동 진영이 이 결정에 접근하는 시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FCC가 교차소유를 완화하긴 했지만, '여론 다양성 보장 및 미디어 집중 방지'를 위해 매우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언론운동 진영은 엄격한 조건은 커녕, FCC가 내건 교차소유 완화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전면적인 완화'라고 강조하고 있다.

▲ 케빈 마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AP/연합뉴스
FCC의 교차소유 완화 결정은 크게 네 가지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미국 내 상위 20개 방송지역을 완화 대상으로 하고 ▲한 개 신문사와 한 개 TV 방송사 또는 한 개 라디오 방송사를 교차소유 할 수 있도록 하되 ▲교차소유 이후 해당 지역 안에 적어도 8개의 다른 미디어(신문사와 방송사)가 존재해야 하며 ▲해당 지역의 상위 4대 방송사의 경우 교차소유 대상에서 제외한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FCC는 이런 4가지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 교차소유를 허용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뒀다. 첫째, 신문사나 방송사가 경영난으로 '파산 상태'(failed)에 있거나 '경영난'(failing)을 겪고 있을 경우다. '파산 상태'의 기준은, 파산 신청 직전 최소 4개월 동안 발행 중단 또는 방송 중단이다.

경영난은 ▲일일 총 시청률이 4% 이하 ▲지난 3년간 적자 ▲교차소유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 ▲인수자가 해당 시장에서 유일하게 이 신문사나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일 경우가 기준이다. 둘째, 교차소유로 인해 새로운 지역 뉴스가 방송될 수 있을 경우다. 구체적으론 이전에 없었던 지역뉴스를 주당 7시간 이상 방송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

FCC의 이런 완화 내용은 케빈 마틴 FCC 위원장의 애초 제안과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이에 대해 케빈 마틴은 상위 170개 지역에서 교차소유를 허용하려 한 2003년 시도 때와 견줘 '상대적으로 사소한 교차소유 금지 완화'이며 이런 완화조차 없다면 '미국의 신문업계는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FCC 역시 2003년 때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접근을 취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소하기는커녕 전면적인 완화라는 게 미국 언론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먼저, 교차소유가 허용되는 상위 20개 방송시장은 전체 미국 가구의 43% 이상을 포괄하며 인구 수로는 1억2천만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FCC는 이른바 광범위한 유예조항(waiver)을 두고 있다. 유예조항은, 앞서 말한 공적 이해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네 가지 경우, 파산 상태 및 경영난과 새로운 지역뉴스 7시간 이상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FCC가 그때그때 사안마다(case by case) 심사해 교차소유를 허용할 수 있는 재량권에 해당한다. 결국 상위 20개 방송시장이 아닌 하위 방송시장이라고 하더라도, 해당지역의 상위 4개 방송사라고 하더라도, 유예조항의 적용을 받으면 교차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유예조항의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교차소유를 통해 해당 시장에서 지역뉴스가 상당한 정도로 증가, 파산 또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방송사나 신문사에 대한 투자 의지 등이 그것이다. 유예조항의 적용은, 해당 방송사나 신문사가 유예조항 적용을 신청하고 애매한 기준에 대한 나름의 입증을 하면 이뤄질 수 있다.

결국, 이는 지역뉴스가 최소한 주당 7시간이 아니더라도, 상위 4개 방송사라고 하더라도, 상위 20개 방송지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신문사에 대한 강력한 투자 의지를 피력한다면, FCC가 유예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언론시민단체들이 사실상의 전면적인 교차소유 허용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상원은 지난 5월16일 FCC의 신문-방송 교차소유 완화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불승인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것도 민주당과 공화당 막론하고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반대는 공화당 소속 의원 두 명뿐이었다. 2003년 상원에서 FCC의 비슷한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결의안이 찬성 55명, 반대 40명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채택된 것과 견줘보면, 압도적인 찬성 비율이다. 조만간 하원에서도 상원과 동일한 내용의 불승인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FCC와 케빈 마틴 위원장의 주장처럼, 상위 170개 지역을 대상으로 했던 2003년 결정과 달리 상위 20개 지역에서만 교차소유를 완화하려고 하는데 미국 의회의 반대는 훨씬 더 강한 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상원 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바이런 도건(민주당) 의원은 결의안 채택 뒤 다음과 같이 밝혔다.

"FCC의 결정은 미국 전역에 걸친 신문과 방송의 더 많은 합병을 가능하게 하는 쩍 벌어진 허점 구멍(gaping loophole)을 열었다."

귤은 회수를 건넌다고 탱자가 될 수 없다. 이는 태평양을 건넌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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