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론 강타 미얀마, 제 2의 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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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기] MBC 〈W〉 ‘긴급 취재, 절망의 땅 미얀마로 가다’ 나현태 PD

시속 200km의 강풍과 높이 3.5m의 해일이 미얀마 남쪽 해안가를 덮친 지 1개월이 지났다. 무시무시한 괴력의 사이클론은 13만 명의 사망․실종자와 250만 명의 이재민을 남겼다. 하지만 미얀마 군정은 언론 취재를 철저하게 통제하며 구호 물품 전달 또한 가로막고 있다. 피해는 더욱 커져가고 있고, 그 규모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MBC 〈W〉가 국내외 어떤 언론에서도 제대로 취재하지 못한 최대 피해현장 라뿌따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다. 지난달 23일 〈W〉에서 ‘긴급 취재, 절망의 땅 미얀마로 가다’를 취재․연출한 나현태 PD가 보내온 제작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지난 5월 2일, 시속 200km의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 남쪽 해안가를 덮쳤다. 이로 인해 약 14만 명의 사망․실종자와 25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이클론 발생 5일째 되던 날, 우리는 미얀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전원도시이자 옛 수도인 양곤은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군인들의 복구 작업으로 기능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기와 물은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피해가 제일 많은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와라디(Ayeyarwadd)도의 삼각주 지역 라뿌따(Labutta)로 향했다. 현지 안내인과 운전기사조차도 동행을 거부한 곳이었다. 이 지역에선 주민 약 18만 명 중 약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모든 통신과 전기 또한 마비된 상태였다.

평시에도 외국인의 출입이 통제된 라뿌따는 사이클론의 최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미얀마 군정이 외국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곳에 들어가는 외국인에게는 안전을 보장 할 수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 지난달 23일 〈W〉에서 방송된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의 처참한 실태. 나현태 PD는 두렵기까지 했다고 했다. ⓒMBC
취재진이 이와라디(Ayeyarwadd)도의 주도인 뻐떼인(Patueln)에 도착했을 때 일본에서 온 의료봉사팀은 짐을 풀기도 전에 그 곳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역시 안전 보장이 문제였다. 이곳은 국내는 물론 해외언론조차도 제대로 취재한 적이 없었다. 곳곳에 깔린 경찰과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우리는 라뿌따 지역의 그닝공 마을로 잠입할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조금 벗어나자마자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떠있는 시신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마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보이는 것은 방치된 채 부패되어 가는 시신들뿐이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에 왔을 때는 시신이 너무 많아서 대나무로 치우며 뱃길을 냈어요.” 현지 안내인은 대부분의 시신들이 강바닥에 가라앉았으며, 그나마 보이는 시신은 기름이 없어서 화장을 못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촬영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간혹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우리 같으면 땅을 치며 통곡을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울지 않았다. 이미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말랐든지, 아니면 아직도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할 말을 잃은 얼굴들이었다.

아들, 딸 손자들을 모두 잃은 노인… 아이를 목마 태운 채 야자수를 안고 살갗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태풍을 버티다 결국 아이 셋을 모두 잃은 여인… 부모를 다 잃고 역시 부모를 잃은 사촌동생을 돌보고 있는 9살의 여자아이….

사이클론의 피해는 이것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구호 물품 부족으로 인해 피해가 더욱 커질듯 보였다. 굶주림과 추위뿐만 아니라 늦장 구호로 인해 곳곳에 부패된 시신과 오염된 식수, 복구되지 않은 집들, 그리고 우기로 접어든 날씨는 집단 설사와 콜레라 뎅기열 등 전염병 노출에 무방비 상태였다. 곧 2차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 미얀마 사이클론의 최대 피해지역인 라뿌따를 취재한 나현태 PD
현지 안내인의 신변 보호를 위해 더 이상의 취재를 할 수가 없었다. 라뿌따 시내에 총을 메고 순찰, 검문하는 군인들이 유독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깊은 밤 시름의 그 땅을 빠져나왔다.

이후 라뿌따로 향하는 길은 원천봉쇄 됐으며 출입증을 지닌 사람들만이 허용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안내인과 운전기사를 포함한 제작진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군정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으며 취재했던 캠프의 모든 이재민들은 다른 캠프로 옮겨졌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9살 여자 아이 역시 정부 캠프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곳을 빠져 나왔던 날은 바로 미얀마 군정의 영구 집권을 위한 신헌법 찬반 투표가 있던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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