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낙천·낙선운동 중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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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낙천·낙선운동 중간평가
  • 승인 200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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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민주주의적 형태를 지닌 정치체에서 정치는 사회에 기반을 둔다. 사회내에 형성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특정한 집단의 요구가 주로 관철될 수도 있고 다수의 이익이 우선될 수도 있겠지만, 전근대적인 1인독재나 과두제가 아닌 이상, 사회에서 유리된 정치는 존재할 기반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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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우리 정치의 근본적 문제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우리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정치가 사회를 반영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폴라니(karl polanyi)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 정치는 사회로부터 유리된, 사회파괴적이고 일탈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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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국민 대부분이 강렬하게 원하는 바가 있어도 우리 정치는 초연할 수 있다. 아무리 신랄한 비판이라도 귀를 막고 무시할 수 있다. 유권자의 뜻보다는 몇몇 보스의 말이 훨씬 존중된다. 국고지원과 정경유착에 의해 사회의 부를 얻어서 생존하지만, 사회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며, 사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설사 개혁이 추진되어도 개혁의 원래 목적은 실종되고 그 정치적 득실에 따라 변질된다. 정치는 사회혼란과 경제위기를 촉발하고 증폭시킬지언정,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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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지역감정 때문에 지역당이 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3공화국 이후의 한국정치를 돌아보라. 또, 지난 몇번의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얼마나 지역감정을 부추겼는지 되새겨 보라. 우리 정치는 우리가 지닌 대부분의 문제들의 독립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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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벌어진 낙천·낙선운동은 획기적 의미를 지닌다. 사회에서 유리된 정치에 대해 최소한의 응징이 시도된 것이다. 또한 "독자적인" 정치가 더이상 사회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 첫걸음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켜온 우리 정치에 대해 국민 대다수의 불만이 쌓인 결과이자, 총선연대의 결단에 의해 국민들의 불만이 비등점 이상으로 터지는 상황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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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두 가지 중대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의도되지 않은 전략적 실수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 시민운동이 지니는 구조적 성격에서 야기되었을 수도 있으나, 다음 두 가지 문제는 낙천·낙선운동의 성패는 물론 이번 총선과 향후 한국정치의 장래에 암운을 드리울 위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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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첫째는 총선연대가 공천방식 자체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특정한 정치인들만을 타겟으로 삼은 데 있다. 보스에 의한 밀실공천 방식을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고, 스스로 소속 정치인 일부를 퇴출시키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꼬리를 잘라도 도마뱀은 잡을 수 없고, 꼬리는 언제든 다시 자라나는 법이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가 목도했듯이, 결과적으로 총선연대의 활동은 각 정당의 보스들에 의해 이용당했고, 문제된 정치인들 소수가 제외된 공천 명단은 면죄부를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특정지역 낙천인사들로 이루어진 제4당이 출현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보다 분할되고 강화된 지역주의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제 총선연대에게는 주적이 제4당이 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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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이렇게 된 것은, 문제의 근원을 건드려 봐야 당장 해결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아마추어 시민운동가들보다 정치9단들의 정치적 단수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총선연대는 목표를 잘못 설정함으로써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은폐, 강화시켜주었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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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두 번째 문제는 보다 심각하다. 이번 총선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2년만에 벌어지는 선거이다. 어떤 대통령제에서나 대통령의 임기 중간에 벌어지는 선거는 집권당과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니는 법이다. 그렇다면 4·13 총선의 가장 중대한 의미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라는데 있다. 지난 2년 동안 국민들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주요 정책들, 특히 경제위기와 연관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유권자들에 의해 심판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권의 독자적 논리에 따라 기존정책이 유지되거나 변경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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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6|이러한 본질적 이슈는 선거를 불과 한달 남짓 앞둔 이 시점까지도 드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두 달간 낙천운동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내의 공방에 모든 주의가 쏠림으로 인해, 이번 총선의 가장 중대한 의미가 흐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임을 총선연대에 지우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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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1|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총선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개혁세력은 지금이라도 본질적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40명에 대한 공천무효소송이 아니라, 1인 보스 중심의 공천 자체를 무효화하는 운동을 벌여야 하며, 평당원과 유권자들의 뜻에 의해 공천이 이루어지도록 제도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이번 총선의 본질적 의미를 되살림으로써, 국민들에 뜻에 따라 국민들의 삶이 결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어떤 선거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는 정치권 내부의 논리에 따라 이합집산하며 움직일 것이고, "독자적인" 우리 정치에 의해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 사회에는 혼란과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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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3|※ 본 시평의 의견은 pd연합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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