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절망 속에서 희망 찾는 100일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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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모르고 신자유주의 논리에 투항한 미숙한 노 정권과 달리, 현 정권은 뻔히 알고 의도적으로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내 건 말 그대로의 본격적 자본국가입니다. 둘 다 거칠고 무능하며 일방적인 점에서는 같지만 말이지요. 쉽게 민의를 배신하고 여론을 왜곡하며 선전을 일삼는 데서도 별 차이가 없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오륀지 정권이 들어선 지 딱 100일이 되었습니다.

상큼하기는커녕 쉰내가 풀풀 심합니다. 대통령도 얼마나 이 시간이 길다고 느꼈겠습니까만, 우리 또한 정말 미치도록 피곤하고 지겨운 날들이었습니다. <피디수첩>이 출렁 여론의 파고를 일으키기 전까지만 해도 딱 그랬습니다. 예민한 10대 소녀들이 깜찍한 그리나 샤프한 메시지를 들고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답이 안 보였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낀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름 아닌 인·민 다중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행동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아고라를 중심으로 일상적 여론교환을 행하다가, 청계광장으로 나가 직접적이고 집중적인 자유언론의 시공간을 만끽합니다. 조·중·동 선전망에 맞서 쾌활한 콘텐츠전을 수행하고, 무력하고 기회주의적인 기자·피디들을 대신에 스스로 저널리스트로 나서는 멋진 민주 주민, 대중들의 출현입니다. 아직까지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까? 더 이상 광우병, 쇠고기 국면이 아닙니다. 문화연구자, 미디어활동가의 입장에서 보건 데, 2008년 5월과 6월 한국에서는 놀랄만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미디어 변혁, 그 핵심에는 바로 대중교통의 형식적·내용적 대폭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대중교통 패러다임의 전복·전환입니다. 지금처럼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신문과 방송이 대량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전달·전파하는 과정 정도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참 고리타분한 개념정의입니다. 많은 언론학자들이 아직까지도 그런 관습적 인식에 갇혀 있겠지요? 여러분은 설마 그렇지 않으시겠죠? 위대한 이 땅의 대중들은 그 낡은 정의를 단박에 뒤엎어버렸습니다. 이제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말 그대로 대중교통으로, 대중들 사이의 자유롭고 공개적이며 이성적인 의사소통·의견교환·이견경합의 시공간으로 정확하게 재정의 됩니다. 대중이 대중의,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소통·교통·커뮤니케이션을 직접적으로 행동에 옮기고 있다는 겁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적 불능 상태를 정확하게 간파한 대중은 후진 정권과 낡은 운동권을 우회해 직접행동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론대표의 공영방송, 여론왜곡의 수구신문을 대체해 직접언론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게 평화적 촛불시위, 통쾌한 촛불집회라는 사회·정치·문화적 사건의 핵심입니다. 무능한 정권과 기회주의적인 주류매체, 그리고 악의적인 수구신문에 맞서, 대중들이 진실발언의 용감한 파르헤시아스트(parrhesist)로 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와 성별, 지역, 계급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상식의 대 연합이 구성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대반격. 이 교통대중의 도도한 흐름, 창의적인 운동을 대체 누가 가로막고 왜곡·은폐·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다 아실 본격적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수많은 언론관련, 미디어관련, 공영방송관련 실정·실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적일 수 있습니다. 아, 공영방송 해체와 미디어 공공성 폐쇄, 언론자유 탄압의 총공세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권력은 결코 대중의 역능을 완전 진압할 수 없습니다.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에 밟히면서 오히려 커가는 게 자유연론, 언론자유의 힘인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진보입니다. 무능한, 그래서 폭력적인 정권에 맞서는 선한 대중들의 집체적 역능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공권력’의 잔인한 폭력에 맞서는 청(소)년들의 기발하고 평화로운 발상들이 여러분을 감동시키지 않습니까?

어둠이 촛불을 더욱 빛나게 하는 법입니다. 선전독재가 언론자유의 가치를 선명하게 만들죠. 이 대중혁명, 대중교통, 대중언론의 역사(歷史/役事)에 ‘프로’로서 어떻게 응답하실 건가요? 선량하고 정직한, 그러면서 창의적이고 꽤 많은 교통대중의 실험에 피디와 기자 여러분은 어떻게 참여하실 겁니까? 학자로서, 그리고 활동가로서 대중과 만나는 차원을 넘어 어떻게 대중들로부터 신속하게 배울 것인지 고민이 큽니다.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그렇지 않고는 지체되고 버림 당할 불안감이 다가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러한 공포로부터 안전할까요? 결단하고 서둘러 행동에 나서시죠. 프로그램으로 말입니다. 쳐지지 말아야죠. 이렇게 상식과 용기, 진실의 대중교통양식만 따라잡아도, 100일의 시간이 힘들지만 그래도 귀중한 학습의 시간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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