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서 손으로…하나의 촛불이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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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서 손으로…하나의 촛불이 바다로”
촛불시위대 행진에 시민들 ‘짜증’ 대신 ‘환호’
  • 김세옥 기자
  • 승인 2008.06.06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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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오후 6시20분]

“시청으로 함께 가요!” 이 말 하나면 충분했다.

‘72시간’ 릴레이 촛불 시위 이튿날인 6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출발한 당시만 해도 500여명에 불과했던 촛불 시위대는 서울 종로에 진입할 즈음인 오후 5시20분께에는 3000여명으로 불어났다.


▲72시간 릴레이 촛불시위 현장④

“대통령이 국민 마음을 너무 모르고 있어.” 종로3가 단성사 사거리 인근에서 촛불 시위대를 바라보던 70대 한 할머니의 말이다. 이름까지 알 필요가 있냐며 쑥스러워 하던 할머니는 “세월이 많이 변했다. 우리는 예전에 나랏님이 하는 일이면 억울해도 차마 대들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참 많이 똑똑해 졌다”며 촛불 시위대에 대한 감탄을 전했다.

▲ 72시간 릴레이 촛불 시위의 이튿날인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행진에 나선 500여명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대는 1시간 30분여만에 3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대학로에서부터 2개 차선을 허락하던 경찰이 종로3가에서 갑자기 시위대를 막아섰다. 더 이상 행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위대가 항의하기도 전 행진을 구경하던 시민들이 나섰다.

“왜 가지 못하게 하는 건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경찰을 향해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한 발 늦게 도착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 역시 평화로운 행진을 막아선 경찰들에게 거센 항의를 전했다. 3분여가 지났을까. 길이 뚫렸다. 시위대와 시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쏟아냈다.

“시위를 하루 이틀 본 게 아닌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시위대를 향한 시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경찰도 놀란 눈치다. 휴일의 낮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삼삼오오 나온 시민들인 만큼 교통체증을 부르는 시위대에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불평은커녕 그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연예인이라도 만난 양 핸드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 등은 익숙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나눠주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유인물도 인기 폭발이다.

자신을 출판 노동자라고 소개한 이은미씨(26)는 “쇠고기 반대 유인물을 나눠주면 거의 모든 시민분들이 기꺼이 받아주고 곧바로 읽기 시작한다”면서 “과거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등에서 주변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면 안 받으려하거나 받고도 제대로 읽으려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경향신문>을 손에 쥐고 행진을 하던 고등학생 최모군(17)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에 있어서 <경향>은 이미 바이블(성경)이 됐다. 문제를 가장 정확히 짚을 뿐 아니라 민심을 분명히 읽고 전하고 있다”며 “이젠 조·중·동이 뭐라고 하든 신경쓰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최모군은 “조·중·동은 우리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젠 청와대도 너희들의 요구를 다 알아들었다. 정말 대통령을 탄핵하면 얼마나 사회가 혼란스럽겠냐’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여전히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면서 “조·중·동은 그냥 이명박의 세계에서 보조나 맞추고 살길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 종묘 공원 앞에서 촛불시위대를 맞이한 할아버지들이 박수로 격려를 전하고 있다.
오후 5시 45분, 종각을 거쳐 광교를 지나고 있는 시위대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맞은편 명동 쪽에서 행진해오던 또 다른 촛불들을 만난 것이다. 서로에게 보내는 박수는 거리를 가득 메우고, “민주시민 함께해요” 구호는 오가는 이들의 마음에 파고든다.

오후 6시,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서울 광장에는 4만여 촛불들이 거리 곳곳을 행진해 온 시위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져 온 한판의 문화제 같은 분위기 탓일까.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가족과 친구, 연인들의 무리가 눈에 띈다. 

“이제 우리가 만났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스름한 하늘 아래 하나 둘 촛불을 밝히던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청와대!”

손에서 손으로 서로에게 전해주는 촛불은 지금 막 서울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울 하나의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72시간 릴레이 촛불 시위 중 24시간이 지난 순간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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