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초 이종배아 실험 성공에 언론 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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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신화' 만든 한국언론 태도와 비교

지난 4월 뉴캐슬대학 연구팀이 영국 최초로 이종배아(Hybrid Embryos)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다른 나라 국민들 같으면 “이종배아? 그게 뭔데?” 하고 묻겠지만 황우석 사태로 온 국민이 생물학 박사가 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생활용어에 가까울 터. 그저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DNA를 주입해 줄기세포를 체취하기 위한 것” 정도로 용어에 대한 설명은 끝내기로 하자.

▲ 영국 최초 이종배아 실험 성공과 관련한 영국 <더 타임스> 보도.

발표가 있은 후 영국의회는 이 동물과 사람의 교잡을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 두고 볼 것이냐 금지할 것이냐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인 표차로 연구허용 결정을 내렸다. 이런 일련의 뉴스가 영국 방송사들의 식탁위에 주요 메뉴로 올랐음은 물론이다.

TV화면을 통해 동그란 세포를 바늘로 살며시 찌르는 너무도 익숙한 장면을 보면서 황우석과 대한민국을 떠올린 건 파블로프가 실험했다는 조건반사처럼 당연한 현상이었을까? 2005년 5월 20일, 런던 한복판에서 황우석 박사가 처음 치료용 줄기세포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던 날 필자는 현장에 있었다. 그곳엔 영국의 주요 신문방송뿐 아니라 다양한 전 세계 언론사 기자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우린 “세계 최초”, “대한민국이 이룬 쾌거” 등의 용어를 써가며 자못 흥분해 있었다.

<더 타임즈> 기자 등 유명 언론사 기자들이 윤리문제를 들먹이며 황우석 박사를 향해 질문을 던질 때 우린 그들이 시기 혹은 질투를 하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뉴스 말미에 “그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마디 던짐으로써 대한민국 안방의 시청자들이 적이 흐뭇해하길 바랐다. 여러분 모두가 기억하듯 그때 대한민국 언론은 참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황우석의 성과를 조명했다. 수많은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황우석의 줄기세포는 전 국민이 꼭 알아야 할 국가적 교육과정처럼 되어 버렸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학문인만큼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쉽고 자세한 설명은 기본이고, 앞으로 난치병 환자 치료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엄청난 소득을 안겨 줄 것이라는 따위의 분석과 전망을 기억할 것이다. 특허관계가 어떻고, 세계 과학계의 반응이 어떻고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황우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했다.

▲ 의회의 이종배아 실험 허용 관련 영국 BBC 보도.

물론 윤리적 찬반 논쟁도 있기는 했으나 모두가 기억하듯 그 논쟁은 “세계 생명공학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황우석의 줄기세포는 떼돈을 보장해주는 미래의 산업이다”라는 주장에 간단히 밀려 버렸다. 황우석이 전략적으로(난 그렇게 믿는다. 전략적 이었다고) 강조했듯 그 모든 뉴스와 프로그램의 중심엔 국수주의에 가까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었다. 필자는 기억한다. 어렵게 뉴카슬 대학의 줄기세포 연구센터를 방문해 인터뷰 하면서 물었던 잊을 수 없는 질문 하나. “황우석 (대한민국)이 너희보다 더 잘하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 물론 그 질문은 대한민국 생명공학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의도의 질문이기는 하였으나, 거기엔 “대한민국이 부럽지? 대한민국에서 연구하고 싶지?”하는 낯간지러운 의미도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낯이 뜨거워진다.

이제 비슷한 주제를 놓고 영국의 방송과 우리 방송이 어떻게 다른 방송을 하고 있는지 그 차이를 이야기해야겠다. 뉴카슬 대학이 새로운 줄기세포 추출 방법을 찾아냈지만 영국방송은 그 연구성과에 주목할 뿐 뉴카슬 대학이라는 연구센터에도, 그 연구센터의 과학자 누구에게도 특별히 주목하지 않고 있다. 영국 최초라고는 하지만 최초라는 것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른 나라의 반응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 뉴카슬 대학의 연구성과 발표도, 이번 의회의 결정도 주요 이슈로 다루기는 했지만 영국의 방송과 신문은 그 이슈에 대해 이틀 이상 주목하지 않았다.

독립적으로 뉴카슬 대학의 연구와 논쟁에 대한 프로그램은 제작되지 않고 있으며 뉴스는 주로 정계,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가 등장해 윤리적으로 연구를 보장해 주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다. 어떤 언론도 특허문제라든지, 생명공학연구나 산업의 주도권 문제라든지, 영국의 생명공학계가 안겨줄 경제적 가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만 접해서는 뉴카슬의 연구결과가 성과라기보다는 영국사회에 하나의 고민을 던져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런던=장정훈 통신원/ KBNe-UK 대표

그리고 언론은 그 연구결과에 대한 학문적, 경제적 평가 혹은 국민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미화보다는 논란이 되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철저히 객관적인 위치에서 따져 보는 데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송만 보아서는 영국이 마치 높은 도덕적, 윤리적 지위를 가진 나라처럼 보인다. 뭐 최소한 방송계는 아직 그런 순수함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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