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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드라마 <허준>
  • 승인 200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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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허준>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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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mbc 드라마 <허준>의 인기가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폭발적이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허준>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일단 아주 빠른 드라마 전개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탄탄한 스토리에 적절한 캐스팅, 시청자들을 몰입케 하는 탁월한 연출, 그로 인한 생생한 극적 긴장감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고, 정보가 있고, 무엇보다 상업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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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조금 더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매력을 보게 된다. 첫째, <허준>은 영웅 신화를 기저에 깔고 있지만 무소불위의 만능인으로서의 영웅 혹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영웅, 우리들이 느끼는 결핍의 부분을 채워주는 영웅을 구현하고 있다. 영웅 개념의 시대적 변화를 잘 읽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허준>은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전개 속도가 매우 빠르다. 벌써 60회를 기준으로 중반을 넘어 서고 있는데 호흡이 가쁠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시대물이라는 느낌보다는 지금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준다. 셋째, 여성의 지나친 희생을 그리고 있다는 난맥도 있지만 <허준>에는 허준과 관련한 예진과 다희의 관계가 근대적 여성성을 넘어서는 탈여성성이라는 현대적 담론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두 여인은 상투적인 삼각 애정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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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이상한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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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아마도 이와 같은 점들이 <허준>을 보는 재미를 더욱 쏠쏠하게 만드는 듯 싶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문제점들도 있다. 우선 이 드라마는 허준의 이타심을 무기로 휴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허준>에 나타나는 휴머니즘은 어딘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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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허준이 신분을 극복하고 명의로 우뚝 서기까지는 허준을 둘러싼 여인들의 희생과 그를 따르는 민초 무리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데다가 소외된 자들이다. 그런데 허준은 놀랍게도 그들의 희생을 돌아보지 않는다. 과연 인술을 펼치는 것에서만 휴머니즘을 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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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떤가? 허준은 병자들을 위해 문둥병 소굴에 들어가기도 하고 환자를 뿌리치지 못해 과거 시험을 놓치기도 한다. 그런 허준이 역설적이게도 스승에게 다려줄 산삼을 갖고 도망친 약초꾼이 도적을 만나 부상당한 채로 있는 것을 알면서도 산중에 버려두고 떠난다. 악인을 징벌하는 그의 그런 행동에 우리는 심정적으로 공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인술을 우선시하는 의사가 환자를 버려둔다?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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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3|이에 너무 지나친 지적이나 요구가 아니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지 않다. 최근 방영분을 보자. 내의원 입격을 기뻐하는 가족들에게 생활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허준과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당연한 일"이라면서 대책도 없이 상황을 수용하는 어머니와 부인, 남편의 등원을 축하할 고기라도 얻을 요량으로 섣부른 노동을 하다 아이까지 유산하는 부인과 부인이 쓰러져 유산한 뒤에야 임신 사실을 알고 허망해하다 다시금 서둘러 등원하러 달려가는 허준. 과연 이런 상황들에서 허준의 휴머니즘이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것이 지나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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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8|허준 신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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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이번에는 이 문제를 좀더 밀고 가 또 다른 문제를 끌어내보자. 이를테면 허준의 성공 스토리에 가려진 과정들을 무시하며 지나칠 것인가? 그런 험난한 과정 뒤에 성공한 허준을 보며 허준의 삶을 칭찬만 할 것인가? 결과만을 볼 것인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도 볼 것인가? 성공하면 모든 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가? 어쩌면 <허준>에는 인간 허준이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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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5|분석이 여기에 이른 김에 더 가보자. 허준은 개인적인 탁월한 능력과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의술의 일가를 이룬다. 그러나 허준의 삶을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그는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훌륭한 스승 유의태를 만나고, 부술을 행하는 기인을 만나고, 삼적 스님을 만나고, 예진을 만나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와 부인 다희, 그리고 그를 따르며 도와주는 민초 무리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좋은 운이다. 이를 보면서 <허준>이 인간 허준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엘리트주의를 그리고 있다면 역시 지나친 것인가? 게다가 그와 대비되는 인간들, 예를 들면 유도지라든가 초기의 약초꾼들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은 모두 악인으로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살리에르적 절규를 들어보라는 요구 또한 지나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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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0|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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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이제 <허준>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흔든다. 여기서 한 한의학자가 경남일대를 답사하여 기록한 것을 아무런 검증 없이 기정 사실화했다는 비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질병에 대한 소개와 응급처치법, 처방 약재에 대한 의학 정보를 매회마다 제공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철저한 검증을 받은 것이냐고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에서 제작진의 의도가 목적점을 상실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허준이 중심이 아니라 허준의 이름을 빌미로 허구적인 상황으로 드라마적 재미만을 키우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방송 매체가 갖는 파괴력을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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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7|예를 들어 이라는 외국 드라마를 생각해보자. 이 드라마는 분명 메디컬 드라마이지만 의학 정보 제공을 의도하지도 않고, 보는 사람들도 그것을 통해 의학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요구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은 시청자들에게 주객이 전도될까 하는 염려를 갖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있을 법한 병원 내의 문제들이나 의사 및 환자의 고뇌 혹은 갈등 등을 부담 없이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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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9|그러나 <허준>은 어떤가? 우리는 재미있는 의학 드라마로서의 <동의보감>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허준이라는 한 인간의 인생 역정과 그를 둘러싼 삶의 구조를 반추하면서 인간애, 희망과 용기, 삶의 역동성 등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준>은 적어도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줄타기로 인한 혼란과 부담을 시청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허준>은 그러한 혼란과 부담을 시청자들에게 과감하게 떠넘긴다. 현대의 문화적 경향과 맞물려 미디어가 점차 권력화되어 가고 있고, 사람들이 점차 디지털 시대라는 기계주의적 샤머니즘의 추종자로 묶이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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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그런데 이런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 처사는 예의 비난받아 마땅한 방향으로 급전직하한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망령처럼 <허준>도 회수 늘리기에 돌입했다. 인기가 치솟으니 좋은 기회를 제작진에서 놓칠 리 없다. 하지만 왜 꼭 그래야 하는 걸까? 회수 늘리기가 드라마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혹은 회수 늘리기가 지나친 상업적 발상이 아니냐는 상투적인 비판 때문만은 아니다. 첫 번째는 밀도 높은 연출과 새로운 이야기 발굴보다도 시청률을 유지하기 위해 시청자들에게 먹히는 약발을 좀더 강화하는 쪽으로 <허준>을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두 번째는 다른 것도 아니고, 돈보다 인간을 택하는 허준의 삶을 조명하는 드라마를 만들면서 돈을 택하는 제작진의 아이러니와 그것을 강압적으로 보아야 하는 우리들의 길들여짐이 슬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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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6|2% 부족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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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1|분명 <허준>은 재미있는 드라마다. 좋은 드라마다. 이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연출, 캐스팅, 노력 등이 보이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그래서 좋다. 좋은 작품은 성공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줘서 좋다. 어줍잖은 삼각 애정 관계, 너무도 뻔한 스토리, 기본도 안돼 있는 연기자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무모함 등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프로그램을 띄우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 설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볼 수 있어서 좋다. 어쩌면 불평불만이 아니라 진지하게 건설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준 것이 고마워서 더 좋은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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