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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1일 오후 11시 5분

민변 20년 - 사람이 하늘이다

거리로 나선 변호사들. 다쳐도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

지난 6월 25일 잠시 주춤했던 촛불시위가 다시 거세졌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검역권이 확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수입 위생 조건 고시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촛불집회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강제해산 시키고 이 과정에서 폭력행사 등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소속 변호사들이 나섰다.

민변이 거리의 법률지원단인 ‘인권침해감시단’을 꾸리고 시민을 위한 인권침해 감시 활동을 펼친 것이다. 25일부터 26일까지 시위 중 140여명이 연행되고 100여명이 경찰과 충돌해 부상했다. 인권침해감시단의 이재정, 강영구 변호사 역시 연행 되었고 이준형 변호사는 전경의 방패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졌다.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을 대신해 민변은 지난 6월 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가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그리고 19일은 시위 중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 경찰청장 고소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MBC 'PD수첩' ⓒMBC
민변의 정신. 낮은 곳을 향하여

민변이 창립되던 1988년 5월은 국가보안법의 무서운 칼날이 곳곳에서 국민을 감시했고, 죄가 없는 사람도 소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죄인이 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은 수감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민변은 암흑의 시절, 약자며 소수자였던 이들의 변론을 맡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양심적 변론을 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민변의 창립 멤버였던 이돈명 변호사와 한승헌 변호사는 변론을 하다 수감되기도 했다. 1990년 최초로 철거 지역 세입자들에게 영구임대주택 건립 후 분양하도록 하는 합의문을 이끌어 낸 것도, 호주제 헌법 불합치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낮은 곳을 향한 민변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변 20년. 그들이 꿈꾸는 대한민국

지난 5월 28일, 민변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 동안 민변은 권인숙 성고문 사건을 비롯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문규현∙임수경 방북 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 사건을 변론 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故효순∙미선양 사건, 이라크 파병, 한미 FTA, 그리고 최근 미국산 수입 쇠고기 문제까지 사회 곳곳에서 국가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필두로 문재인(청와대 비서실장) 천정배(법무장관), 고영구(국정원장), 강금실(법무장관), 최재천(17대의원), 임종인(17대의원) 등 민변 출신들이 정부와 국회로 진출 하면서 권력집단화 되고 관변단체로 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과거에 그랬듯이 가장 낮은 곳에서 시민과 소통하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하기위해 지금 민변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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