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는 왜 위헌 소송을 준비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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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요소 많은 방송심의규정

한국에서 방송 심의는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로 철저히 기능해왔다. 민간자율기구였던 심의위원회는 1963년 5.16군사 쿠데타 세력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방송법에 방송윤리위원회란 이름으로 국가규제기구로 등장했다.

그리고 유신헌법을 만들며 전국토를 병영국가로 만들었던 1973년 방송 심의는 국가검열도 모자라 이제 방송사내 자체 심의까지 의무화하여 이중 검열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러던 것이 1981년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오며 방송심의위원회란 자율기관의 외형을 띄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신군부의 이념선전기관인 문화공보부의 전위기관 노릇을 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러한 점은 2008년의 방송심의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민간 기구를 표방하지만 대통령이 위원장을 비롯한 3인을 임명하고, 9명 모두를 위촉한다. 세상 어디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민간기구가 있단 말인가?  이러한 방송심의위원 선임의 정파적 구성 때문에 심의위가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의 문제를 심의할 때 정파적, 정략적 관점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공정성’심의는 헌법 위반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에 대한 방송심의는 ‘탄핵방송’, ‘송두율 방송’ 등에서 보듯, 치열한 이념 대립 즉,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간의 대리 전장터 역할을 해왔고, 그러는 사이 방통심의위의 기능과 권위는 허물어졌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은 ‘공정성’이란 어휘의미가가 ‘사상과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불공정하다’라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의 가치판단과 기준이 개입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한 사람의 가치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관을 주입하는 쪽이 사실상의 국가 기관이라면 그것은 바로 국가 폭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방통심의위의 공정성 심의는 국가 폭력의 형태를 띄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에 대통령, 여당이 임명한 심의위원들이 ‘재단’을 하고 ‘재판’을 하면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일종의 ‘사상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심의 규정과 조치들은 바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21조)나 양심의 자유(19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외국은 주로 선정성과 폭력성만 심의해

이러한 위헌적 문제점 때문에 미국, 일본,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방송 심의에 선정성과 폭력성 등을 대상으로 할 뿐, 공정성은 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 역시 BBC의 보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공정성 심의를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의 통신통신위원회(FCC)는 공정성의 원칙이 방송사들의 보도를 위축시킨다고 결론짓고 1987년 공정성(Fairness)을 원칙 폐기하였다. 즉, 미국 방송인들은 공정성의 원칙이 방송인들로 하여금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을 방송하기 꺼려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위축효과에 의한 소극보도는 방송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데, 오히려 역기능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에 공정성의 원칙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공정성을 심의대상으로 하지 않는 대신에 선정성과 폭력성에 문제에 심의를 집중하고 있다. 청소년보호를 위해 음란물과 폭력물은 언론자유의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선정성과 폭력성의 문제에 대처함에 있어서도 개별 프로그램의 내용 규제에 매달리기 보다는 등급제와 평가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심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선정성과 폭력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극도로 신중하게 심의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도 위헌

공정성의 문제 외에도 위헌적인 요소는 또 있다. 바로 방송법 100조에 있는 제재조항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으로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즉, 제작자는 동의하지 않는데, 제작자의 양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준국가기관이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명령하는 것은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를 위배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헌법 19조)에는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을 자유 즉,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에 대한 사과명령’의 위헌성은 사죄 강제 광고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1991년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온 것을 미뤄볼 때 명약관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방송심의 대상에서 공정성 문제를 제외하는 것은 갓 출발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방통심의위가 공정성 문제 심의로 인해 계속 정파간의 갈등, 이념적 대립의 대리 전장이 되어서는 방통위가 제대로 설 수 없다. 또한 수사권과 조사권도 갖지 못한 방통심의위가 복잡다단한 공정성의 문제를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오히려 국민적 동의를 받는 선정성과 폭력성의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방통위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공정성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게 지켜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정성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공정성의 문제는 언론사가 최고로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이다. 다만, 공정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국가기관에 의한 재단이 되어서는 곤란하고 토론과 자율의 영역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 박건식 PD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즉,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시청자위원회, 노사간의 공정방송위원회, 편성위원회 등을 강화하고, 프로그램 공익지수 등을  표준화, 현실화하며, 시사보도프로그램에 평가위원제를 도입하고 외부 모니터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 일본 공민영 방송사가 연합하여 세운 ‘방송윤리 프로그램향상 기구(BPO)'라는 제3의 민간기구나 미국 방송협회(NAB)등과 같이 한국의 방송협회 같은 곳에서 자율적으로 공정성에 대해 심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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