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영방송, 사르코지에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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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이도경 KBS 파리 PD특파원

지난 6월 30일 저녁 프랑스 공영방송 앞.

사르코지 대통령이 공영 TV에 출연하기 위해 도착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영방송 장악 중지”라는 피켓을 든 공영 방송인들의 야유와 함성이었다. 그리고 사르코지가 스튜디오에 앉았을 때 음향담당자는 마이크를 채워주면서 사르코지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사르코지는 “이건 교육문제야…. 사람을 초대했으면 인사를 해야지…. 공영방송에서 이럴 수가 있나”라고 불평했다. 이 장면은 당시 녹화되었고 인터넷에 퍼지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방송에 들어가자 사르코지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차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 아침 공영방송 사장인 파트릭 드 카롤리스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 “잘못됐고, 터무니없고(stupid), 정말 공정하지 못하다”고 항변했다. 당장 문화부 장관은 공영방송 사장이 그런 말을 한 건 “비정상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공영방송 재원을 둘러싼 갈등

프랑스 정부와 공영방송이 이렇게 ‘막가게’ 된 것은 지난 1월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이 때 사르코지는 공영방송에서 광고를 폐지하면서 프랑스 문화정책의 변화를 기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문제는 광고폐지에 따른 재원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 독일에서는 이미 수 차례 공영방송 광고 폐지를 시도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사르코지의 지시를 받은 여당의 실세인 코페 의원은 네 달간의 위원회 활동 결과를 6월 25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공영방송 광고는 2009년부터는 저녁에서 새벽까지, 2012년부터는 완전히 없어진다. 그리고 광고 폐지로 인한 손실 8억 5천만 유로(약 1조 4천억원)는 수신료 물가 연동 인상과 수신료 대상 범위 확대로 3억 유로, 통신업자와 민영방송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3억 8천만 유로 그리고 자체 절감 등으로 1억 7천만 유로로 보충한다.

사르코지가 영국 수신료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신료(연간 116유로)를 올리기보다 통신업자 등에 대한 세금으로 충당하려는 것은 가뜩이나 구매력 저하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안에 대해 통신업자는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하고, 민영방송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또 인터넷과 이동 통신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유럽의회에서도 반대 의사가 나왔다. 한편 매년 정부가 민간업자에게 세금을 걷어 공영방송에 주는 형식도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까지 임명?

코페 보고서 발표날, 사르코지는 원래 보고서에도 없던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안을 전격 발표했다. 지금은 프랑스 방송위원회(CSA)에서 임명하는 절차를 철도 공사나 전력 공사처럼 대통령 임명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을 비롯해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 선진국 어떤 나라도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이탈리아의 베를루스 코니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과 미디어 환경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탈리아에서는 의회에서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데 이 때문에 공영방송이 정치권에 대해 쓴 소리를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

지난 7월 1, 2일 방송위원회가 1001명의 표본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프랑스인의 71%가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임명을 ‘공영채널의 정치적 통제를 강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한다고 나왔다.

역경 속의 공영방송

정부안대로라면 공영방송은 당장 한 해 2천 3백억 원 정도를 절감해야 한다. 올 초 사르코지의 광고폐지안 발표만으로도 벌써 광고 수익 25%가 줄었고, 보도와 제작에서 차질을 가져오고 있다고 한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고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다채널화로 점점 입지가 축소되는 지역 공영방송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지금 13개 지역방송을 7개로 통폐합하겠다고 한다.

이미 올해 들어서 벌인 두 차례의 전국적인 파업에는 공영 텔레비전뿐 아니라 라디오와 국립영상원(INA) 등 공영방송 관련 종사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들이 느끼는 위협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심각하다.

사르코지와 미디어 재벌 간의 유착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다. 건설사에서 시작해 가장 큰 민영방송 TF1과 부이그 텔레콤의 실제 소유주인 마르탱 부이그나 대형 출판사, 잡지사, 라디오 채널 등을 소유하고 있는 아르노 라가르데르는 사르코지와 절친한 관계로 유명하다.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들에게 분명히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고 한다. 프랑스 노총 CGT는, 공영방송 광고 폐지로 민영방송에게는 연간 3억 유로의 이익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공영방송인들은 사르코지 정권에서 점점 공영 채널이 축소되고 민영화가 가속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지금 프랑스 공영방송은 정권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과 함께 자본으로부터의 위협을 막아야하는 곤란한 지경에 놓여있다. 여론의 힘을 입은 공영방송 사장이 정부안에 적극적으로 반대함으로써 정부안의 9월 의회 통과를 앞두고 본격적인 공방이 벌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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