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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금강산에 다녀온 때는 지난 5월 초순이었다.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와 북측 언론본부 간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었다. 당시 머물렀던 숙소는 패밀리비치호텔, 요즘 한창 입에 오르내리는 금강산비치호텔이었다.

늦은 밤 몇이서 숙소 근처 횟집에서 한 잔 하려했지만 마침 문이 닫혀 있었다. 그냥 발길을 돌리기 아쉬워 찾아 간 곳이 금강산 관광 초기 숙소로 쓰였던(지금도 숙소로 쓰인다) 해금강호텔이었다. 선상호텔인 이곳은 밤 늦게까지 노래방을 열어 놓고 있었고 거기에서 술 한 잔 하고 비치호텔로 돌아왔다. 야심한 시각에 비록 거리는 1km도 채 안 되었지만 북쪽 땅에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날 오전에 다시 한 번 산책로를 거닐어 보았다. 해금강호텔에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산책로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산책로는 보도에 빨간색 아스팔트로 표시가 돼 있었고 팔각정 정자 부근까지 갈 수 있었다. 정자 근처에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난 10일 해수욕장이 개장된 이후로는 산책로에서 바닷가로 내려가 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는 것 같다. 거기에도 진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녹색 울타리가 쳐져 있다는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됐다.

또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박왕자 씨 사건 전에도  통제구역을 무단 출입했다고 해서 관광객이 억류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조깅을 즐기다 북군(北軍) 초병에게 붙잡혀 30분 가까이 허허벌판에 서 있었다고 한다. 다른 관광객은 이번 피격사건의 피해자처럼 장전항 해변을 따라 산책하다가 초병에게 붙잡혀 한참 동안을 손을 든 채 서 있다가 훈계를 듣고 풀려났다고 한다.

이런 사건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박 씨 사건이 터진 뒤에야 알려진 후일담이다. 만약 이런 일들이 언론에 보도됐다면 이번과 같은 비극이 일어났을까. 보도가 됐더라면 관광객들이 좀 더 주의했을 것이고 사망에까지 이르는 비극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관광객 총격피살 사건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관광길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으니 기가 막힐 일이고 유가족들의 고통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재발방지책 마련보다는 남과 북 당국이 감정싸움에 몰입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언론 또한 응원군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을 일으킨 한 쪽 당사자인 북측이 지난 12일 발표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와 남측 당국 및 언론의 주장 사이에는 공통점과 함께 이견이 존재한다.  관광객이 군사통제구역을 침범했고 북군(北軍)이 총격을 가해 사살했다는 점에는 남북 양측이 동의하지만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 침범 지점, 공탄(공포탄) 발사 여부, 월경 시각과 피격 시각, 사격의 고의성 여부 등을 놓고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큰 틀에서는 진상이 파악됐으나 세세한 부분에서는 남측이 이견을 제기하거나 북측이 아예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당국이나 남측 언론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진상 파악을 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뒤늦게 현장에 가본다 하더라도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피해자가 남긴 족적이나 흔적 등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도 만무하고 북측이 내놓는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진상 파악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북측 당국을 비난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남측이 원하는 수준의 진상 파악이 가능하지도 않은 데다 쌍방이 져야 할 책임을 일방에게만 묻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심사숙고해 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화풀이는 될지언정 냉철한 보도 태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북쪽 주민이, 또는 거동수상자가 민감한 군 작전구역으로 무단 침입했다가 도주할 때 남측 초병의 대응 수순은 북측과 거의 동일하다. 금강산 지역이 북군에게는 최전방 주요 군사기지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애초부터 진상 파악이 불가능하다. 가능하지도 않은 요구사항에 매달리기보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지 싸움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금강산관광은 대결과 대립의 부끄러운 분단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상징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적의 생명줄을 연장하는 현금 퍼주기??로  매도하면서 지금도 비난만을 일삼고 있을 뿐 아니라 틈만 있으면 적대감을 되살리려 한다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 정일용 6.15남측위 언론본부 공동상임대표

남과 북의 언론이 화해하지 못하면 민족의 화해는 요원하다. 언론이 남북 동포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지 못하면 수많은 당국 간 합의문서도 종잇장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과거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남북 언론의 화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과 북을 등거리에 놓고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보도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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