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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 숨겨진 이상적 인간상과 엘리트 지상주의

|contsmark0|sbs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우선 젊은 방송이라는 점. 그러나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프로그램들을 자주 만든다는 점. 철저히 상업성을 추구하는 방송이라는 점.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 방송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유치함과 경박함의 극치에 가 있다라는 점. 그런 sbs가 드물게, 아주 드물게 좋은 작품들을 선보일 때가 있다. <카이스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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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카이스트>는 방송 초기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에 보답하듯 <카이스트>는 최초의 본격 과학 기술 드라마, 분명한 주제 의식과 젊은이들의 고뇌를 진솔하게 담은 드라마, 현장성이 살아 숨쉬는 생생한 드라마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신선한 이미지의 연기자들, 뚜렷한 극중 캐릭터는 사랑의 강도를 높이는 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역시 sbs 드라마구나 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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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이야기에 앞서 한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 한 토막을 해보자. 그가 어느 날 다리를 다쳐 인근 대학 병원에 갔단다. 그 곳에는 다른 많은 환자들이 있었단다.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그 병원 의사에게 전화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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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곧 그는 다른 많은 환자들을 뒤로한 채 먼저 진찰을 받게 되었단다. 먼저 진찰을 받은 후 그는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우쭐한 마음으로 외과 병동을 나섰단다. 그에게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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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우리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혜를 싫어하면서도 자신이 그 특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알게 모르게 그 특혜의 대상이 되기를 갈망하기도 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어쩌면 우리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혜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시샘하며 특혜의 대상이 되지 못한 자기를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상적 인간상에 쉽게 몰입을 하고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들에 대한 감정 이입을 통해 현실의 자신을 벗어나려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딛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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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오래 전에 한 신문에 월간지 paper의 황경신 편집장이 쓴 "<카이스트> 기다려지는 일요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 글에서 황 편집장은 <카이스트>가 만화 같은 비현실적 드라마가 판치는 가운데 설득력 있는 캐릭터와 메시지를 제시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소재를 풀어 나간다, 이공계열의 최고 두뇌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면서도 그들의 우월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박교수와 만수라는 인간적인 캐릭터가 즐거움을 배가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드라마 <카이스트>를 평가했다. 아마도 <카이스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도 사실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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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그러나 <카이스트>를 보면서 떨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 속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엘리트 지상주의 혹은 이상적(理想的) 때로는 이상적(異常的) 인간상 때문이다. 비단 <카이스트>만은 아니다. 한동안 방송 3사의 대부분의 시청자 참여 tv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대학생 혹은 대학 졸업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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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말할 것 없고, 커플 게임이나 가요제(결국 mbc <강변 가요제>는 제한 규정이 바뀌었지만) 등 대부분 대학생이나 혹은 대학 졸업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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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물론 대학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대학으로 상징되는 특별한 집단 혹은 엘리트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카이스트>도 이러한 엘리트주의에서 나온 것 혹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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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9|우리 주변에는 대학생들보다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tv는 우리 사회 전반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삶은 도외시되고 있다. 그들의 삶은 왜곡된 영웅주의가 필요할 때나 간혹 등장한다. <카이스트>를 보면 이러한 모습이 더욱 잘 나타난다. <카이스트>에 나오는 (정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혹은 수재)거나 특이한 경력의 사람들이다. 때로는 기괴하거나 괴팍스럽기도 한데 부정적 인물로는 묘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천재형 인간으로 나오는 박교수의 경우에는 실수조차도 천재성의 발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약간 우둔하게 나오는 만수에 대한 동료나 후배나 선배들의 시선은 늘 곱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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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4|겉으로는 동료나 후배나 선배들이지만 그들은 일상적으로 만수를 조롱하거나 멸시하기까지 한다. 만수가 대접받는 것은 그가 측은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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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6|지난주 방송된 "세발 자전거"를 보면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분명해진다. <카이스트>는 아마도 혜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똑똑하지만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다른 사람들과 융화하면서 조직의 일원으로 훌륭하게 성장해 가는 면을 그리고자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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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그런데 이 학생은 타대학 출신 학생이지만 엄청난 수재인데다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만수가 했으면 비난받아 마땅했을 일이 그녀의 일이고 보면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순수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그녀의 고민과 행동은 수재성과 순수함의 절묘한 조화로 나타나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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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6|그렇다. <카이스트>는 특별한 것에 대한 동경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카이스트는 대단한 학교이고, <카이스트>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수재이던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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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8|그 덕분에 그 외의 인물들인 일반적인 능력의 소유자들은 <카이스트>에서 캠퍼스 폴리스라든가 카페 주인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출세한 사람이 정만수 정도인데 그는 여전히 구박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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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0|어쩌면 만수와 같은 사람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일텐데 우리는 박교수 같은 사람을 흠모하면서 만수와 같은 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 눈에 비친 <카이스트>는 인간미가 살아 숨쉬는 감동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상실되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나는 이상적(理想的, 異常的) 인간상과 묘한 엘리트주의의 심화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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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5|알게 모르게 우리는 특권 의식에 길들여져 있다. 누군가가 자기를 혹은 자기의 지위를 알아 봐주고 대접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특권화된 삶을 거부하면서 일상을 평범하게 살기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혜의 대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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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7|그리고 방송은 은연중에 그러한 심리를 여러 측면에서 조작하거나 이용한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정작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드라마틱하게 담을 수 있는 일상적인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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