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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한국사회의 희망과 절망]을 TV로 보고 싶다
이혜형<회사원>

|contsmark0|70년대 말, 대구 변두리의 내가 살던 마을에 tv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 tv는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의 사유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체통을 지키셔야 했던 나이 든 어르신들 빼고는, 온 마을의 남녀노소가 tv 있는 집으로 몰려 들어 집단시청을 했었다.그때 주인이 아무리 깐깐한 사람이었다 해도, 인정 중심의 촌마을에서 tv라는 환상적인 매체에 쏠리는 대중의 요구를 물리치긴 어려웠을 것이다.우리 생활에서 tv의 자리 매김은 그렇듯 순조로웠다. 그 이후로 tv는 현대사회에 끼치는 그 엄청난 영향력과 폐해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 당해 왔고, 바보상자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지금은 우리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먼 미래에, tv라는 매체가 pc나 다른 매체에 눌려 사라져 버릴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현재로선 tv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나는 뉴스 외엔 정기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가 별로 없는데, 그렇게 가끔씩 들여다보는 tv가 심어준 정보와 의식, 문화 등이 내 생활 깊숙이 스며있음을 종종 깨닫는다.장황했지만 나는 ‘tv론’이나 tv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힘주어 말할 수 있을 만한 전문가도 아니고, tv매니아도 아니다. 다만, tv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고, 볼 것 많고 감동을 주는, 소외감 대신 진실을 일깨워 주는 tv로 존재할 때 건조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tv를 통해 우리가 보는 것들은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그 중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듯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인 ‘드라마’를 앞의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을 테지만 할 얘기의 초점은 그러한 비교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대한 것이다.요즘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가를 물었을 때 다루는 내용을 떠나서 다큐멘터리를 꼽는 사람이 많아졌음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한마디로 다큐멘터리가 재미있다는 얘기다.어쩌면 tv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거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예쁘게 치장하여 내보내는 여러 프로그램들 때문에 먹고사는 건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환상’만이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알고 그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삶의 진실’이 아닐까.실제의 인간과 자연과 사회.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소재 속에서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것. 내가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게 되는 이유인 듯 하다.물론, 다른 형식과 방법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도 그것이 가능함을 알지만, 사실의 기록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는 다큐멘터리가 좀더 직접적이고 리얼하기 때문일 것이다.지난 3일 첫방영 된 kbs1-tv의 tv로 보는 20세기의 희망과 절망 은 kbs와 bbc의 공동제작이었는데, 그 내용의 방대함과 깊이에 놀랐었다. ‘번영의 시대’라고 이름한 두번째 방송에서는 세계대전 후 30년의 생산력 발전으로 인한 경제적 풍요와 몰락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을 내가 평가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다만 그야말로 20세기의 마지막에 서있는 지금, 20세기를 정리하고 또 그 속에서의 희망과 절망을 정리해내야만 하는 시기에 tv로 보는 20세기의 희망과 절망 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든다.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런 프로그램의 주제가 단순히 ‘20세기’가 아닌, ‘20세기 한국사회’나 ‘97년 한국사회’가 된다면, 우리에겐 훨씬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명승지도 좋고, 철새도 좋고, 해외문화 탐방도 좋지만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를 통해 역사와 시대를 꿰뚫을 수 있는 우리의 의식이 조금이나마 더 생겨난다면….그럴 때 ‘tv는 내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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