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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심의위, 무엇이 문제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MBC 〈PD수첩〉이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KBS 〈뉴스9〉에 대해 ‘주의’ 조치를 내린 것과 관련, 방통심의위의 공정성 심위가 과연 합당한가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계와 학계에선 국가기구인 방통심의위가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이 위법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심의위와 상위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에 명백한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사프로그램의 ‘공정성’ 심의 적법한가=방통심의위는 〈PD수첩〉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하면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4조(객관성), 제17조(오보정정)의 관련 조항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도 특히 공정성과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방송계 안팎에선 공정성은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일본·독일 등 많은 나라들에선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만을 심의할 뿐, 공정성은 심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영국의 Ofcom(통신위원회)은 공영방송인 BBC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미국의 FCC(연방통신위원회)는 방송사의 보도를 위축시킨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1987년 공정성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기시킨 바 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정성이란 기준은 누구도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윤리의 문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특정 사안을 보도하는 방송인들이 직업적으로 내면화해야 할 가치 기준”이라며 “국가기관이 규제할 사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정성 심의가 적법한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전체회의 모습.
방송심의규정의 위법적 요소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PD수첩〉 심의의 근거가 되기도 한 제9조 공정성 관련 조항이 모법인 방송법과 비교해 위법적이란 지적이다.

최영묵 교수는 “방송법 제33조 9호에선 공정성 심의 범위를 보도와 논평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심의규정은 방송 일반으로 의미를 확대했다.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규제하는 것”이라며 “상위법이 제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위법이다. 심의위는 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방송사 한 관계자도 “국가 권력이 방송의 공정성을 재판하고 심판하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며 “국가 기관이 공정성을 심판하는 사법 권력을 가지는 것은 삼권분립의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방통심의위 ‘어정쩡한’ 위상=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애매한 위상도 논란거리다. 대통령 소속인 방통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장에 따라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방통심의위를 두고 있다.

심의위는 외견상 ‘민간 기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방통위 설치법에 근거하며, 준조세인 방송발전기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국가 기구’로 분류할 수 있다. 이처럼 어정쩡한 심의위의 위상은 ‘민간 기구’로서 광고 불매 게시글에 대해 ‘삭제’ 명령이라는 사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가 기구’로서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시사보도프로그램을 심의한다는 모순된 기능과 더불어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 방통심의위의 'PD수첩' 심의 결과를 두고 정치적 독립성과 객관성 훼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민간기구와 국가기구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심의위의 위상이 논란이다.
방송 심의에 대한 최종 결정권의 주체가 어디인지도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심의위는 방송법 제100조와 방통위 설치법 제25조에 근거해 해당프로그램에 대한 제재 조치를 결정한다. 그런데 같은 방송법 제100조 6항에선 “제재조치에 이의가 있는 자는 당해 제재조치명령을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방통위는 서면 또는 구두로 의견진술 절차를 거쳐 재심을 진행한 뒤, 해당 사업자에게 징계명령을 통보한다. 결국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통위가 방송을 심의하고 징계를 명령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적일 수 있는 시사보도프로그램을 정치 행위를 하는 방통위에서 규제할 경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방송 사업자 입장에선 지상파 방송 재허가권을 갖고 있는 방통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승동 한국PD연합회장은 “방통위는 KBS 이사들을 추천할 수 있고, 이사회에서 사장을 교체할 때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방송사에 대한 재허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의위로부터 몇 번의 제재 조치를 받을 경우 재허가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방송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심의위를 방통위에서 떼어내 독립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 개정에 들어가야 한다”며 “방통위와의 관계에서 심의위에 최소한의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방송계에선 몇 년 전부터 ‘순차적 자율 심의’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방송사 관계자는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외부평가제를 도입하거나 한국방송협회에서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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