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거짓의 상상'을 멈추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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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수첩 > '광우병'편 메인작가가 번역자 정지민씨에게

▲ MBC 의 한 장면.(자료사진) ⓒ MBC

정지민씨, 저는 지난 4월 29일 <PD수첩> '광우병' 편을 집필했던 메인작가입니다.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막상 얼굴 보면 낯이 익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층 편집실에서 오며 가며 마주쳤을 수도 있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공통점 하나는 있군요. 정지민씨처럼, 저 역시 MBC에서 월급 대신 일한 만큼 돈을 받는 '프리랜서'이지요. 하는 일은 각자 다르더라도 말이지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메인작가는 PD를 도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전조사에서 취재, 마지막 후반작업까지 제작 전반을 함께 하는 '제작진' 중 한 명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편집콘티(구성안)를 작성하고, PD의 1차 편집 후 2차 편집(파인커팅)에 참여하며, 마지막으로 내레이션 대본을 집필하는 일이 주요한 역할입니다.

1차적으로 편집의 흐름을 잡고 방대한 취재자료 중 방송에 쓸 인터뷰와 영상을 골라내는 것도 저의 몫이지요. (물론 그 모든 것은 제작진 회의와 PD 편집, 데스크 시사, 종합편집을 거쳐 판단되고 수정, 완성됩니다.)

그런 역할을 생각하면, 저는 당신이 말하는 '왜곡·거짓 방송'의 주범 중 한 명쯤 되겠군요. PD가 과장과 왜곡과 조작을 의도했다면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봤을 것이고, 혹은 공모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 젊은 PD들이 왜 저러고 있어야 하나

<PD수첩>은 현재 방통위 심의와 제재, 농식품부와의 반론·정정 보도 민사소송, 농식품부 명예훼손 제소에 따른 검찰 수사, 국정감사 증인채택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무총리가 촛불시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더군요. 앞으로 또 누가 어떤 죄목으로 소송이나 재판을 걸어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걸 PD들은 감당하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하느라 점점 녹초가 돼가고 있지요.

▲ 7월 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PD수첩' 광우병 편의 제재여부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 연합뉴스 황광모

나는 '광우병' 편을 끝으로 <PD수첩>을 떠나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있던 터라 한동안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언론보도로 접하거나 오며 가며 들은 얘기들로 짐작만 할 뿐. 그렇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프로그램으로 인한 모든 파장을 감당하는 것은 오직 PD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지, 누구도 작가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묻거나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간 내가 한 일이라곤, 사무실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잠든 PD들을 볼 때마다 착잡해하는 것뿐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저 젊은 PD들이 왜 저러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광우병' 편을 만들 당시의 그들을 떠올려보았지요. 방대한 자료와 전문가 보고서들을 파고들고,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을 쪼개고 또 쪼개며, 섭외와 취재와 후반작업을 연달아 하느라 단 한 시도 쉬지 못하고 뛰던 그들은, 10년 경력 작가의 눈에 참 신선해 보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PD들은 밥을 먹다가도 졸고, 생방송을 위해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복도에서도 비틀거렸습니다. 나는 그때 그들에게 어떤 '진정성'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끝내 버텨내 방송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왜 지금은 온갖 재판과 악의적인 언론보도와 권력기관들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요.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걸까요. 그들이 정말 왜곡과 과장을 했던 걸까요? 그들이 정말 '촛불 정국'의 원인제공자이자 '괴담'의 주범일까요?

제가 오늘 정지민씨를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PD수첩>에 붙어있는 온갖 왜곡·조작·거짓이란 단어들의 '열쇠'가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미 신문지상에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당신을 떠난 말들은 홀로 생명력을 갖고 확대재생산 되었고, 왜곡된 실체로 눈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개인의견을 가지고 있고 어디서건 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처럼, 당신 역시 그럴 권리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정지민씨. 당신은 '개인'의 자리가 아닌 '<PD수첩> 번역자'의 위치를 내세워 그런 발언들을 했습니다. '제작진 내부 고발자', '양심고백'으로 포장돼서 말이지요. 몇 주에 걸친 제작과정 중 보조 작가 한 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당신을 만난 적이 없다는 PD들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요. 몇 번의 연기 끝에 새로운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이 고시되던 날. 왜 그날,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당신의 주장을 대서특필하고 여당과 청와대가 '일벌백계' 분개하고 검찰 전담반이 꾸려졌는지. 광우병과 미국의 축산시스템에 무지한, 불과 2, 3일 영어 단순번역을 도와준 한 번역자의 말이 어찌하여 국가의 핵심 권력기관들을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는지. 그러나 그런 건 일개 프리랜서 작가가 여기서 논할 내용은 아닙니다.

▲ 4월2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한 장면. ⓒ MBC

나의 '양심'이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 말하는군요

'광우병' 편의 제작과정에 참여했던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란 한 가지뿐입니다. 정지민씨가 제기했던 그 모든 '거짓과 조작의 근거'들이 작가로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과 어떻게 다른가, 그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의 '양심'이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 말하는군요. 비록 누구도 내게 그것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젊은 피디들과 함께 모처럼 '일할 맛'을 느꼈던 한 작가가, 미약하나마 자신의 그런 기억에 예의를 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PD수첩>의 취재자료 상당부분의 내용을 아는 입장'을 내세워 당신의 주장을 사실인 양 포장하곤 했지요. 그리고 이 글은 그런 당신의 주장들이, 어찌하여 '<PD수첩> 취재자료 전체를 아는 입장'인 저에겐 모두 거짓과 과장, 허위사실이 되는가에 대한 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CJD→vCJD' 의역을 두고 'MRI 상 CJD' 진단이 나왔는데 제작진이 인간광우병으로 몰아가기 위해 일부러 'vCJD'라고 바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아레사 빈슨은 정확히 'MRI 상 vCJD'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가 인터뷰 상으로 말하는 'CJD란 모두 vCJD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인터뷰 테이프 4권 중 단 한 권만을 번역한 당신은, 당신이 번역하지 않은 나머지 테이프 3권의 내용은 모른 채 그런 주장을 하셨겠지요. 오직, 미 현지 카메라맨을 별도로 섭외해 찍은 아레사 빈슨 장례식 테이프를 근거로 해서 말이지요.

또한, 당신은 다우너 소 동영상 제작단체의 인터뷰 테이프 3권 중 단 한 권도 번역하지 않은 채, '동물학대 영상 속 다우너 소를 광우병과 연결시키는 건 왜곡'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도축시스템의 문제가 다뤄진 4월 29일 방송도 보지 않은 채 그런 주장을 했지요. '젖소→이런 소' 의역이, 당신의 '광우병 위험성 과장' 주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위험성 축소'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 지 못했겠지요.

<PD수첩>이 인정했던 '번역 오류'를 '의도적 오역'이라 주장합니다.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단정적으로 몰아가기 위해 PD들이 번역, 감수 결과와 다르게 자막을 바꿨다는 것이지요. 번역·감수자였던 자신의 번역 실력상 절대 오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르군요. '의도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다른 번역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초벌 번역본 중 하나를 공개할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당신의 허위 주장들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도 따져 볼 생각입니다. 이 점은 왜 당신이 제작진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한가, 에 대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정지민씨. 당신은 '당신이 본 것'을 토대로 말해왔으니, 저 역시 그러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기억과 추측'에 의존해 말하는 것과 달리, 나는 '근거를 토대로 한 사실'만을 말하려 합니다. 그 대부분은 ‘당신이 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설명하겠습니다. 참고로, <PD수첩> '광우병' 편의 촬영 원본 테이프는 한국·미국·일본·중국·영상자료를 포함해 모두 150여 권에 이르며, 시간으로 따지면 총 5000여분 가량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MBC나 <PD수첩>과 관계없이, 프리랜서 작가 개인으로 당신께 드리는 편지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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