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기]“사고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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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기]“사고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SBS 인터넷망 고화질 생방송 <13억을 움직이는 힘 - 중국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 上
  • 오기현 SBS 시사교양국 PD
  • 승인 2008.08.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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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인터넷 망을 이용한 ‘고화질(HD)생방송’에 성공했다. 기존의 위성을 통한 중계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방송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SBS의 오기현 PD가 2회에 걸쳐 제작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모니터가 끊겼습니다. 빨리 연결해주세요”
리허설 중이던 손범규 아나운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알려왔다. 쳐다보니 ON AIR 모니터가 먹통이었다. 좁은 중계차에서 겨우 몸을 비켜나와 인터넷송출을 맡고 있는 외주사의 이한우 실장에게 달려갔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에러신호가 뜨고, 당황한 이 실장이 송출장비의 라인들을 황급히 교체하고 있었다.

전화로 본사 스튜디오에 상황을 알리고, 방송시간 직전까지도 연결이 안 될 경우에는 본사에서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생방송 직전에 터진 사고지만, 마음 약한 이 실장을 제외하고는 스태프들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었다. 당황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방송종료 시간까지는 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어서 웬만한 돌발변수에는 단련이 되어버렸다.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터넷라인을 이용한 해외현지 생방송’은 이렇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인터넷라인을 이용해서 생방송을 하겠다고요?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일 년 전, 위성대신 인터넷라인을 이용해 올림픽생방송을 시도하겠다고 하자 회사의 송출담당자가 강하게 반발했다. 기술부분 뿐 아니라 동료 PD들 조차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 방송송출을 하기까지는 예상치 않은 장애가 나타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특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야외 생방송에서 검증되지 않은 시도는 무모하기 그지없다는 충고들을 했다.

수많은 방송현장에서 실전으로 경험을 쌓은 그들의 지적은 모두 옳았다. 그러나 이전에 누구도 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로 방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바로 PD의 특권이자 의무가 아닐까? 현지테스트를 통해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동지들이 생겼고, 제작본부 교양팀이 담당한 ‘2008 베이징올림픽 특집 생방송’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 되었다.

‘인터넷라인을 이용한 현지생방송’은 정확히 말해 ‘송출장비를 흔히 쓰는 SNG 위성대신 인터넷라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무선장치인 위성보다 유선장치인 인터넷이 훨씬 안정적이다. 위성설비는 규모가 비교적 커서 이동이 쉽지 않은데 비해, 인터넷설비는 신호를 인터넷라인에 실어주는 노트북 크기의 엔코더(encoder)장비와 인터넷라인에서 받아주는 디코더(decoder)장비만 있으면 된다. 인터넷 라인을 연결할 수 없는 방송현장에서는 무선 브릿지(wireless bridge)를 이용할 수 있다.

SNG 위성중계를 담당하는 기술스태프는 2~3명이 필요하지만, 인터넷생방송은 1명이면 족하다. 그리고 위성설비를 이용할 경우에는 설비의 규모 때문에 현지인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인터넷설비는 간단하므로 방송을 해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좋다. 특히 중국처럼 해외언론의 활동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에서 방송의 규모를 줄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넷라인을 활용하더라도 ‘안정적인 라인의 확보’와 ‘압축기술’의 문제가 선결되어야한다. 정확히 말해서 화면과 음성을 실을 수 있을 정도의 인터넷 전용라인을 구축하거나 혹은 인터넷라인에 많은 용량의 화면과 음성을 실을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한다. 좀 전문적인 이야기이지만 HD급의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7메가 이상의 라인이 필요하고 SD급의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서는 2메가 이상의 라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국까지 7메가급의 ‘전용 광라인’을 확보하는 데는 한 장소 당 수 천만 원이 필요했다.

우리처럼 매일 혹은 매주 장소를 이동해서 방송할 경우에는 인터넷설비비만 수억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일단 방송현장에서 중국 현지 도시의 통신회사 까지는 전용라인을 구축하고 현지도시에서 서울로 오는 회선은 일반회선을 이용하기로 하여 비용규모를 5분의 1이하로 줄였다. 그리고 전용라인에 싣는 화면과 음성은 IP-9500이라는 코덱장비를 이용해 기존의 MPEG2 방식에 비해 용량을 반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PD들에겐 생소한 말이지만 송출의 기본지식이라고 해서 적었다)   

일단 송출시스템이 완성된 뒤에는 장거리 이동에 대비해 생방송 장비를 재구축했다. 장비가 육중하면 아무래도 기동성이 떨어져 대륙횡단에 지장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지에서 15인승 미니버스를 빌려서 내부를 뜯어내고 간편한 중계시설을 설치했다. 장비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탄탄한 에어컨은 차량선택의 첫째 조건이었다. 발전차를 몰고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6KW급의 발전기를 두 대 구입하고, 현지 조명회사에 의뢰해 기본조명 2대를 빌렸다.

현장 생방송용 카메라는 일단 6mm EX-1을 활용하기로 하고, 스튜디오를 총괄하는 카메라감독 1명을 제외한 카메라맨 역할은 PD가 대신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공수가 어려운 6mm용 ‘지미 짚’ 카메라는 베이징에서 구입하여 스태프들이 매뉴얼을 보고 직접 조립했다. 중국현지 여건을 고려한 이런 시스템은 기술, 카메라부서의 충분한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애초 우리는 중국대륙의 서부인 티벳의 라싸에서 양자강을 타고 상하이까지 내려와, 다시 해안선을 따라 베이징까지 입성하는 3개 월 가량의 현지생방송프로젝트-‘2008 베이징올림픽특집 생방송, 13억을 움직이는 힘’을 준비했다. 올림픽을 맞아 21세기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변화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힘을 추적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티벳의 수도인 라싸는 정치적인 이유로, 또 다음 기착지인 쓰촨성의 청두는 지진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21세기 중국서부대개발의 중심지인 충칭에서 대장정을 시작하여 올림픽이 열리는 상하이, 칭다오, 친황다오를 돌아서 올림픽이 열리는 8월에 베이징에서 방송을 진행하도록 계획을 수정했다. 그런데 막상 각 도시간의 이동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베이징에 있는 방송용 차량과 장비를 충칭까지 이동하는 데만 2500여 km에 꼬박 3일이 걸렸다. 그리고 충칭에서 상하이까지 3일, 상하이에서 칭다오까지 2일, 또 칭다오에서 친황다오까지 3일이 걸렸다.

장거리 여행 후에는 중계차를 모두 분해하여 다시 조립해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지만 각오가 단단한 기술스태프들은 묵묵히 잘 견뎌주었다. 그러나 이동시간을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결국 방송시간을 주 6회에서 수·목·금 3일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2개월간의 대장정기간 내내 직접 참여하겠다고 자원한 손범규 아나운서의 막판 결단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 D-30일인 7월 9일 아침 6시 30분(한국시간 아침 7시 30분) 드디어 첫 방송을 시작했다. 장소는 양자강의 거센 물줄기와 충칭의 빌딩숲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충칭의 난빈루(南濱路). 양자강이 토해낸 뿌연 안개와 어둠 속에 감추어진 충칭시가지가, 일출이 시작되자 마법에서 깨어난 성처럼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아름다운 모습은 야외생방송이 아니고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충칭이 생긴 이래로 외국의 언론사가 3일간 생방송을 진행한 사례가 없다며 지역방송과 신문이 우리를 역취재할 만큼 현지의 관심은 뜨거웠다.

▲ 오기현 SBS 시사교양국 PD

‘21세기는 중국의 시대이고, 중국의 21세기는 서부대개발의 시대’라는 콘셉트에 따라 서부대개발의 중심지인 충칭의 발전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중국의 동부지역보다 늦게 잠에서 깨어난 서부지역이지만, 중국정부의 야심찬 계획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충칭인들에 대해 관심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이 나름대로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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