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잭슨 가슴노출 논란 이면의 정치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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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자넷 잭슨의 가슴이 슈퍼볼 하프타임쇼에서 노출되어 논란이 되었던 것을 한국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 연방 방송위원회(FCC)에서는 이를 방송했던 CBS 계열 방송사들에게 각 55만 달러를 벌금으로 내라고 판시했다. 이에 이 회사들은 연방법원에 FC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후인 지난 6월 재판부는 CBS측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를 지켜 본 보수 측은 이제 방송이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이냐고 개탄을 했지만, 어떻게 이런 생방송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고 법원의 판결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쪽도 많았다. 미국 방송사에서 부적절한 단어나 표현의 통제와 언론 자유의 논쟁을 보면, 위와 같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논쟁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어떻게 미국 사회 안에서 결정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단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연방 대법원에 다시 이 문제가 올라간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당장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자명해 보였다. 미국 국민들의 주요 연례행사인 슈퍼볼에서, 남녀노소가 다 보고 있는 가운데 그런 민망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당연했다.

FCC가 조사에 나서고, 의회에서는 이런 외설적인 방송에 대한 벌금을 올렸다. 이에 방송사들은 생방송에서도 실제보다 5초 늦게 방송하는 ‘딜레이 방송’으로 만약에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대처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2002년과 2003년에 가수 보노(Bono)나 셰어(Cher)가 비슷한 음악관련 행사에 나와서 성과 관련된 막말을 하였지만, 그리 큰 파장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넷 잭슨의 경우를 좀 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2004년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이다. 당시 공화당은 이라크전 장기화와 부유층 위주의 경제 조세 정책으로 9·11 이후에 누렸던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 붕괴되기 시작해 다시 표심의 결집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 가운데 선정적인 소재와 화면은 ‘리버럴’한 미디어를 대표로 해서 보수 논리를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둘째로, 당시 FCC 위원장이었던 파웰(Micheal Powell)은 이 일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추진했던 방송 규제 해제 시도가 여론과 의회의 반대에 밀려 실패한 뒤라서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자넷 잭슨의 가슴은 파웰이 보수 가치의 선봉장으로 컴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고, 파웰은 사상초유의 벌금으로 화답을 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넷 잭슨의 가슴이 공화당이나 파웰에게 반전을 위한 정치적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여기에 흥미를 더 하는 것은 CBS의 대응에 있다. 대선으로 여론이 정치에 관심을 돌리고, 부시가 재선에 성공을 하자 CBS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11월 4일 대선이 끝난 직 후인 11월 20일, CBS는 FCC에 재심 요청을 하고, 연방대법원까지도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아주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 것 같다. 공화당은 가슴을 이용해서 이익을 본 뒤 손을 털고, CBS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를 최대한 피한 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연방법원에서 승소를 한 것은 FCC에 두 번의 재심요청을 하고, 다시 연방 법원에서 한번 패소하는 등 절차에 따라 오랜 노력을 기울인 후이다. 법원은 자넷 잭슨이 공연하다가 일어난 일을 CBS가 사전에 기획을 하지 않은 이상 CBS에 책임을 묻기에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 중에 주목할 것은 법정이 FCC의 결정을 “독단적(arbitrary)이고 변덕스러운(capricious) 전례에 없는 결정”이라고 심한 말로 꼬집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결정을 내릴 때 이전에 있던 선례와는 전혀 관계없이 FCC 마음대로 결정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법원도 당시 FCC와 파웰 위원장이 기존의 방송 규제의 논리를 따리지 않고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경종을 울린 것이다. FCC가 연방대법원으로 바로 항소하지는 않고, 지금 계류 중인 관련 사건들의 추이를 보겠다고 밝힌 것도 일정정도의 오류를 인정함과 동시에 이 사건의 효용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 = 이헌율 통신원 /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격다짐으로 법과 규정을 무시한 정치적인 집행들을 두고두고 따져서 잘잘못을 물을 수 있는, 틀린 것들을 고칠 수 있는 그런 제도적인 성숙이 우리에게도 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에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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