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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국의 방송통신 조정기구 오프콤(Ofcom)이 바쁘다. 정부와 방송사간 밀월관계가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조사다. 정부도 방송사도 “우린 그런 사이 아니예요” 하면서 밀월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라 대략 정황을 살펴보면 이렇다. 영국이 치안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면서 정부는 경찰인력을 대폭 늘렸다. 그러나 정규 경찰인력을 늘이는데 한계가 있자 지역별로 경찰업무 보조 인력을 뽑아 활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보조 인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여론조사결과 겨우 28%만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그 28이라는 숫자가 내부무 장관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만든 모양이다. 장관은 두문불출, 수치를 올릴 방법을 찾느라 머리를 싸맸다. 머리도 아팠을 거다.

▲ ITV에서 방송된 <비트: 라이프 온 더 스트리트>(Beat: Life on the Street). 사진제공=ITV

장관이 ‘28’이라는 숫자 때문에 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한 광고회사가 (MG-OMD라는 이 광고회사는 경찰보조인력 모집광고를 담당하던 회사다) 장관님께 귀띔을 했다. TV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라고. 프로그램 잘 만드는 제작사를 한 곳 소개해주마고. 장관은 당장 그 프로덕션을 불러 들였다. 투포 프로덕션(Twofour Production)이라는 제작사는 장관에게 일요일 저녁시간 때에 ITV를 통해 6편의 경찰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겠다고 약속했다. 장관은 바로 현금 8억 원을 제작비로 입금시켰다. (오해하지 마시라. 8억은 6편 제작비가 아니다. 60분물 한 편당 제작비다. 필자도 안다. 우리나라에선 믿기 힘든 꿈같은 금액이란 것을….)

그리고 그 첫 편이 지난해 가을 <비트: 라이프 온 더 스트리트>(Beat: Life on the Street)라는 제목으로 전파를 탔다. 약발은? 300만 명 시청이라는 기록과 함께 28이라는 숫자는 62라는 숫자로 껑충 뛰어 올랐다. 실로 마술과도 같이 말이다. 확실한 약발에 두통은 사라지고 장관은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8억 원을 쥐어주면서 “한 번 더”를 외쳤다. 2탄은 올해 초 방송됐다.

역시 훌륭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물론 프로덕션도 방송사도 모두 행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힘들게 없는 제작이었다. 넉넉한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촬영이라고 해봐야 그저 경찰 보조 인력과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불량배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주워 담으면 되는 다큐멘터리였다. (영국에선 전문용어로 ‘fly-on-the-wall’ documentary라고 한다). 촬영에 경찰의 협조가 전폭적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흡족한 내무부는 이미 8억 원의 협찬을 약속하면서 내년도 방송편을 예약 주문한 상태다.

오프콤은 말한다. “프로그램은 제작비를 대는 스폰서가 누군지 (시청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앞과 뒤에 로고와 함께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스폰서는 제작진에 대해 제작과정과 편성 전반에 걸쳐 프로그램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어떤 간섭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방송된 두 편에서 영국 내무부의 로고는 프로그램의 앞과 뒤에 등장하지만 시청자들이 미쳐 인식할 틈 없이 번개처럼 ‘휙’ 지나가는 정도였다.

제작 담당 프로듀서 줄리 시무어는 말한다.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제작비를 대는) 내무부에 계속적으로 알려 주었고, 두 번째 편집본을 보여 주면서 전문용어에 대한 감수를 받았다. 그러나 편집권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었다”. 과연 돈줄의 눈치를 안 봤을까? 적은 돈도 아니고, 한편만 하고 말 것도 아닌데? 필자의 이런 의심을 뒷받침 하듯 프로듀서는 이런 말도 한다. “우린 가장 훌륭한 경찰과 경찰 보조인력을 찾아 카메라에 담았다”고.

내무부는 말한다. “우리는 협찬의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오프콤의 규정을 충실히 따랐다. 프로그램 내용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한 바가 없다.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럽게 영국의 경찰이 무엇을 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광고보다 나을 것이다. 광고는 광고로 보지만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진실로 받아 들이니까.

야당인 보수당은 말한다. “국민이 경찰에게 준 세금은 치안확보에 쓰라고 준거지, TV에 경찰을 선전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물론이다.자유언론을 위한 시민단체는 말한다. “정부가 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하나의 교란 행위다”. 오프콤은 아직 내무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역시 앞서가는 시민단체다. 그들의 경험상 뻔하다는 것 아닐까?

▲ 런던=장정훈 통신원/ KBNe-UK 대표

오프콤의 조사를 보도한 <선데이 텔레그라프>는 영국정부가 지난 5년간 최소 8개의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40억 원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아무튼 위의 사건을 종합해 보면 한마디로 “돈을 주되 간섭은 말라”는 거다. 간섭을 하는지 안하는지, 간섭을 받는지 안 받는지 오프콤이 두 눈 크게 뜨고 감시한다. 언론은 그 어떤 것과도 유착할 수 없다. 언론은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성직자와 같다. 언론의 유착은 곧 불륜이다. 걸리면 둘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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