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면권→임명권은 KBS 사장 임기보장 위해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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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박지원 민주당 의원 통해 입장 밝혀

“통합방송법 제정 당시 KBS 사장과 관련해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공공성을 지키고 임기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꿨다. 임면권 아래에서 공영방송 사장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강원룡 목사의 건의를 받아 결정한 것이다. 또한 관계 장관인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있었기에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연주 KBS 사장 해임으로 불거진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 논란과 관련해 21일 입장을 표명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을 통해 지난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당시 대통령에게 있던 KBS 사장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꾼 취지를 설명한 것이다.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위원장 천정배, 이하 대책위) 주최로 이날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 법적 정당성을 묻는다’ 토론회에서다.

▲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는 2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 법적 정당성을 묻는다’토론회를 개최했다.

통합방송법 제정 주역 DJ 전 대통령, ‘임명권=임면권’ 여당 주장 반박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 일부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송개혁위원회(이하 방개위)가 마련한 통합방송법(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박 의원과 함께한 휴가에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자유를 위해, 또 KBS 사장의 임기보장을 위해 대통령의 KBS 사장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통령의 ‘임명권’ 안에 ‘임면권’도 포함된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10년 전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당시 KBS 보도국의 기자와 간부들이 공보수석실로 파견 나와 방송을 조종했었다”며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방송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정부에서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로 넘겨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강원룡 목사 등으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통합방송법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당시 국회 문광위에서도 대통령의 KBS 사장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고치는 것에 대해 문제된 게 없는데, 이 내용이 이미 (대통령과 정치권, 언론,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결정된 내용이었고, 야당이 된 한나라당 역시 원했던 내용이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논의 기록 없는 것은, 우리의 기득권 포기를 한나라당이 너무 좋아했기 때문”

이날 토론회에는 통합방송법 개정 논의 당시 여당 측 문광위 간사를 지냈던 신기남 전 민주당 의원도 참석해 “국민의정부 출범 이전까지 방송과 관련한 모든 정책·행정권을 문공보처, 다시 말해 정권이 갖고 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보처를 없애고 공보처가 갖고 있던 방송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방송위원회로 넘겼다”고 밝혔다. 신 전 의원은 2000년 통합방송법을 대표발의했다.

신 전 의원은 “(통합방송법의 ‘임명권’ 조항은 삽입은) 김 전 대통령의 엄명이기도 했다. 야당 시절 땡전뉴스에 하도 시달렸기 때문”이라면서 “이전 정권은 방송사에 기관 요원을 상주시키는 등 공보처를 통해 (방송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는데,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이를 돌려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방송과 언론학자, 시민단체 등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여 통합방송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신 전 의원은 “당시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굉장히 찬성했다. (김대중 정권이 방송을 장악할까봐) 두려워했는데, 방송독립을 이룬다는 좋지 않았겠나. 그만큼 방송독립 확보에 중점을 뒀다.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만든 조항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당시 야당 측 문광위 간사였던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고친 것은 시대적 추세에 따른 것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어처구니없는 말로 언어도단이다. 당시 기득권을 포기한 우리의 배려를 무위로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최문순 의원이 “당시 국회에서의 논의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신 전 의원은 “(통합방송법에 ‘임명권’ 조항을 넣은 것은) 우리가 기득권을 내놓은 것인 만큼 한나라당이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토론거리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은 상임위 전체회의뿐 아니라 소위원회 회의 등도 속기록이 남는데, 당시엔 전체회의밖에 기록되지 않았다”며 “당시 (관련 논의를) 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법안소위)에서 얘기하며 법안의 내용을 걸러내는 작업들을 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았다. 법안소위에서 충분히 얘기하고 (전체회의로) 간 것인 만큼 긴 얘기 없이 (법안이) 통과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DJ 전 대통령-강원룡 목사 대화, 청와대 기록물로 남아있을 수도”

▲ 박지원 민주당 의원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통합방송법 제정 당시) 강원룡 목사와 대화한 내용들이 청와대에 기록물로 남아있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박 의원은 “별세하신 강 목사께선 수시로 청와대에 오셨고 김 전 대통령과 관저에서 식사를 하며 말씀을 나눈 일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관저가 아닌 본과에서 그런 말씀을 나누셨다면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개위 실행위원으로서 당시 통합방송법(안)을 마련하는데 참여했던 이효성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과거 방송위는 방송관련 정책·행정의 권한이 없는 심의기구에 불과했지만 통합방송법 제정으로 과거 문광위에 있었던 방송관련 모든 권한을 이어받게 됐다. 정부가 방송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당시 방개위에서 KBS를 비롯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밤새워 진행한 논의와 법안들은 다 기록으로 남아있다”며 “일부 국회에서 손질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 기록을 참조하면 통합방송법 제정의 기본정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정부·국회·방개위 등 통합방송법 제정을 통해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꾼 당사자들이 한목소리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사장의 임기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해당 발언들은 의미가 있다.

“정연주 사장 해임, 이 대통령이 저지른 쿠데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나라는 성문법주의 국가로 명문규정에 충실하게 처벌 내지 권한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며 “그런데 방송법에 명확하게 임명권만을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 소위 해석에 의한 면책권을 인정함으로써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법치주의를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 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저지른 쿠데타로, 대통령에 의해 법률이 무시되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천 의원은 “정연주 사장 해임은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기초인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무시하고 법과 원칙을 자신의 국민통제와 지배도구 정도로 인정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면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입법취지를 무시하며 불법적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국민이 용납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서동용 변호사(법무법인 오름)가 발제를 맡았으며,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 김승환 전북대 법대 교수, 김갑배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고문변호사)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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