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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올림픽은 다이내믹했다.
선수들은 영웅이 되었고,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내 결심은 무너졌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이 끝나고 결심했다. 더 이상 대한체육회와 대중매체를 간판으로 세운 ‘대한민국 제일주의’가 선동하는 순위 다툼에 열광하지 않겠노라고. 올림픽 금메달도 월드컵 6회 연속 진출도 통장잔고 불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21세기 소시민적 깨달음 때문이 아니다. 종목과 국적 불문, 선수 한 사람의 아름다운 플레이만 집중하고 환호하겠다…라는 세계만민주의…보다는 지난 올림픽부터 이미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요상한 순위 집계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이번 올림픽에 국운을 몽땅 건 듯한 비장한 느낌의 중국과 어디서 무엇을 해도 자신이 제일이라는 미국. 이 두 슈퍼 파워의 올림픽 순위 집계방식은 끝까지 웃음 유발요소 없는 거대한 코미디였다. 중국은 금메달 개수로 미국은 전체 메달 개수로 각각 자국이 1위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 어느 쪽으로도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할 수 없는 현실감이 ‘여우의 신포도’로 감정을 이입하게 만들어 낸 것 인지… 이번 올림픽만큼은 한국의 순위와 관계없이 느긋하게 경기자체에 집중하…면 좋겠다…라는 심정이었다.

아름다운 청년 마이클 펠프스와 더 아름다운 청년 박태환의 레이스 때는 결심을 제법 지켜낸 것 같다. 아시아 최초의 400m 우승이라는 기적이 백신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지만, 1500m 레이스가 끝나고 노메달의 아쉬움에 한숨을 쉬기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인종 펠프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단연코 야구!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능가하는 기적이 아닐까 싶은 2008 올림픽 야구 때문이다. 대표팀은 우리 생애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 확실한 무패행진을 거듭하고, 숙명의 일본과 준결승에서 재격돌 했다. 2006년 WBC의 아픈 기억도 있었고, 일본 감독 호시노의 오만방자한 인터뷰는 필자의 대뇌 구조도에서 “승부와 관계없는 아름다운 플레이 집중 중추”를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경기 결과에 따라서 한일 양국의 금메달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한 판 승부였다. WBC의 재연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우승은 바라지도 않으니, 이 승부만은 제발… 그런데… 승리… 그리고 연이은 승리! 기적의 금메달….

올림픽은 끝났다. 모두 한 여름 밤의 유쾌한 꿈이 끝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더 이상 중·미 양국의 요상한 순위집계방식도 재미있지 않다. 영웅들은 귀환했고 ‘그 누군가’의 발상으로 20세기에서나 가능했던 영웅들의 거리 행진을 지켜보았다. 다만 거리행진에 열광하는 시민의 숫자는 ‘그 누군가’가 기대했던 것처럼, 혹은 지난 세기처럼 장쾌하지 않았다. 이 또한 재미있지 않다.

▲ 공태희 OBS〈문화전쟁〉PD

다만, “종목불문 국적불문, 아름다운 플레이에의 열광”을 산산조각 내었던 일본으로부터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과 쿠바의 결승전이 열리던 순간 많은 수의 일본인이 한국을 응원했다. ‘비록 우리 일본은 졌지만, 그래도 아시아가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쿠바가 아닌 한국을 응원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 여름 밤의 꿈을 마무리 지으며 다음 올림픽에 다시 순위에 관계없이 경기 자체를 즐기겠다는 결심을 거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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