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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라고 다 멋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페루 인질범 소탕작전 때 후지모리대통령이 방탄복을 입고 무전기를 들고 직접 상황을 지휘하는 모습이 뉴스에 나와 한동안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됐었다. 일본계 인물이 페루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부터가 일찌기 관심거리였는데, 이번 일로 그가 세 번이나 연속으로 대통령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니, 한치 앞도 모르는 지경에 처한 우리네 정치인들은 정말 부러워할 일이다. 그런데, 소탕작전 이튿날인가 어느 라디오방송에서 전화로 시민들의 반응을 물어보는 대목에서 어떤 아주머니 한분은, 특공대가 범인들을 소탕하고 인질들을 구해내는 장면이 ‘고맙고도 감격적이더라’는 말을 했다. 특공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인질들을 구해내는 모습이 딴은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혹시 특공대가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인질이 몇명 죽거나 했을 경우에도 아주머니가 ‘감격적’이라고 했겠는가 하는 야릇한 의문이 들었다. 특공대가 마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작전을 멋지게 끝냈기 때문에 감격적으로 느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얘기다.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는 주인공 혼자서 모든걸 해치우는 ‘맥가이버’, ‘다이하드’ 따위를 비롯해서 두사람이 짝을 지어 활약하는 ‘레셀웨폰’ 같은 액션영화, 또는 몇 명의 소수정예가 조직적으로 일을 해치우는 ‘제5전선(미션임파서블)’이나 ‘스니커즈’ 같은 특공대식 영화들이 가장 많다. 말 그대로 특공대를 조직해서 적의 요새를 때려부수는 전쟁영화도 얼마든지 있다. 반면에, 세력과 세력간의 싸움을 주제로 하더라도 대중이 힘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영화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영화 ‘간디’를 비롯해서, 남미 아마존의 소수민족이 등장하는 ‘미션’이라든가 사하라를 배경으로 한 ‘사막의 라이온’, 남아프리카의 줄루족이 나오는 ‘파워오브원’ 같은 영화처럼, 주인공이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힘을 통해 뭔가를 이루어 나가는 종류의 영화는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한편씩 만들어지는 것이 고작이다. 우리가 특공대식 액션영화에 그만큼 길들여져 있다는 말이다.그런데, 혹시 우리가 그런 영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영화처럼 특공대식으로 해치우는 방식에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페루 특공작전에서도 알고 보니 범인들은 인질들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하나도 죽이지 않은 반면, 특공대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인질범측 소녀들까지 사정없이 죽여버렸는데도, 우리는 무조건 성공한 주인공인 특공대와 후지모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특공대라고 모두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박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공대가 자신들만을 위해 스스로 조직된 것이거나, 자신들을 조직해준 모(母)집단을 망각하는 경우, 특공대는 그 힘이 강한 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된다. 영화 ‘다이하드’에 나오는 악당쪽 특공대놈들은 얼마나 악랄하고 제멋대로인가! 우리네 정치판 언저리에서 노는 사람들도 그렇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사조직을 만들어 여기저기 한명씩 박아 놓고 저희들끼리 숨어서 이 나라를 떡 주무르듯 한 것도 위험천만한 패거리짓이고,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듯한 ‘가신그룹’이라거나 ‘상도동계’ 또는 ‘동교동계’ 따위의 계보정치라는 것도 경계해야 할 패거리주의다.특공대의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를 당분간 보지 말아야 할까? 그런다고 될 것같지는 않고…. 이런 방법이라면 도움이 될까? 누군가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혹시 못된 짓을 하는 특공대를 만들자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따져 보는 거다. ‘똑똑한 놈 몇명만 있으면 그냥 어쩌구…’하는 혼잣말을 자주 하는 사람도 일단 요주의인물로 점찍어 두는 거다. 특히 그런 친구들이 남몰래 모여서 이마를 맞댈 때는 더욱더 말이다. 세상이 갈수록 어지러워지다 보니 벼라별 잡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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