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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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이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PD
  • 김현정 CBS PD
  • 승인 2008.09.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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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프로야구의 시작은 이랬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은 통행금지를 풀고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성인영화의 붐을 일으켰다. 이에 발맞추어 1982년 3월 프로야구도 개막됐다. 이른바 3S(Screen, Sports, Sex)로 국민을 우민화하여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자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80년대 많은 국민들은 밤 문화에 열광하고 프로야구에 성원하는 것으로 광주 학살의 기억을 잊고 독재의 아픔을 애써 모른 척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83년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20%가 야구 중계였으니 따지고 보면 좋지 않은 의도에 의해 우리의 ‘야구사랑’은 종용되었다.

#2 장면 2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여러 편의 드라마를 낳았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야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설마 금메달까지 따내랴 생각했던 많은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며 위풍당당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강민호 포수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함께 울분을 쏟아냈으며 이승엽 선수의 눈물의 인터뷰를 본 사람은 선수와 함께 울었다.

이러한 야구에 대한 열기는 지난 주부터 시작된 국내 프로야구 후반기 레이스까지 고스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야구사랑은 자발적인 것이다. 80년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휘두른다고 휘둘릴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있다. 스포츠를 사랑하되 ‘스포츠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에도 정치, 경제, 사회 다방면에서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처리되었다. 논란이 뜨거웠던 KBS 사장의 해임도 올림픽 와중에 처리되었고 대기업 총수들에 대사면도 이때였다. 올림픽 직전에 불거졌던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 씨의 공천스캔들은 올림픽 응원을 하느라 잊어버렸다.

팍팍한 세상, 이것저것 세상만사 잊고 즐거운 일에만 올인 하고 싶은 그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우리, 챙길 것은 챙기면서 가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환율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누군가 체포되고 누군가 조사를 받고 있다. 잊지 말자, 역사의 시계는 돌아간다!

* 참고 - 이 내용은 데일리노컷 컬럼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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