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총선 이후, 우리 방송이 해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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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선거가 끝나고 한 달이나 지났는데 또 그 얘기를 꺼내는 게 적절한 지 여러 번 고민을 했다. 냄비 죽끓듯 하는 세태라도 극복해야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선거 이전에 방송이 했던 일들을 뒤늦게나마 차분히 복기해 볼 필요는 있겠다 싶었는데 주말 밤 늦게 tv를 보다가 진짜 기가막힌 그 장면들을 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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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요번에 도박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그 대사이름은?" "… 원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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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시사터치 코미디 파일>의 "시사응급구조119"라는 코너. 한 마디로 정치·경제 등 시사에 무관심한 요즘 일부 세태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보자는 실험정신이 있는 코너였다. 길거리에서 상식에 문제가 있는 그런 사람을 찾아서 응급치료를 해 준다는 설정이었다. 착상부터가 재밌다는 생각을 하며 보고 있는데 바로 이런 뻔한 문제에 대해서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답변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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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16대 국회의 과반수는 몇 석?" "32석!…31석?"
|contsmark10|"민국당은 이번 총선에서 몇 석이나 의석을 확보했습니까?" "8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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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가장 기가막힌 답변만 골라 편집은 했겠지만 제작진이 짜고 만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이 답변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우스웠지만 그 주인공들이 대부분 20대 젊은이들이다 보니 "저게 우리 현실이구나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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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저러니 젊은층의 정치·경제·사회 등 시사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 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밖에 없었구나. 지난번 선거에서 젊은층의 투표율이 그렇게 저조한 것은 당연했겠다. 저런 젊은 층을 상대로 시청률 장사를 해야 되니 삼행시와 스타중심의 엔터테인먼트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방송이 알량한 계몽주의에 집착하지 말고 웃고 즐기는 방송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삐딱한 결론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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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그러면서도 결국엔 방송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평범한 결론으로 되돌아 왔다. 왜냐고? 사실 요즘 문제되는 정치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에 대한 사회적 책임으로 말하자면 언론, 특히 방송은 전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운동 단체의 의정감시 활동이나 낙선운동은 결국 언론 영역의 결함을 떠맡고 나선 측면이 강했다. 정치에 대한 감시력도 부족했고, 대안제시도 미흡했고, 그리고 유권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충분히 하지도 못한 것이 현실 아닌가. 이 점까지를 인정하고 나면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는 쉽게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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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이제까지 방송이 의정감시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정치 무관심을 해소시키는 별다른 묘안도 제시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그렇
|contsmark23|게 한번 해보는 거다. 전면적으로 해야 마땅하지만 여건이 되는대로 해보자는 거다. 그 중에 가장 쉬운 방법 한 가지를 우선 제안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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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6|선거가 끝난 지금 기성 정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개혁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정치신인들을 방송에 많이 불러내는 것. 선거가 임박해서 표를 염두에 두고 언론 플레이 하는거야 눈꼴 사나운 면이 있지만, 지금 방송에 이 사람들을 불러내는 건 아무래도 생산적인 면이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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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그래도 개혁적일 가능성이 좀 있는 초·재선의원들을 불러내서 개혁입법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좀 들어두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패와 부정을 바로잡을 구상도 좀 들어두고, 정치무관심의 근본 원인에 대한 책임감도 좀 요구하고, 소속된 당의 민주화나 정치 개혁에 대한 소신과 입장을 말하게 하자는 거다. 정치 입문하면서 의욕적이다가도 금새 훼절되는 걸 워낙 많이 보아왔던 터이기에 부패와 권위에 오염되기 전에, 나중에 보스정치의 거수기로 전락하기 전에, 일종의 언질을 좀 받아 두면 어떻겠냐는 거다. 이런 질문을 던져 가능한 한 많은 얘기를 하도록 하고 나중에 그 뱉은 말들을 실천하는지 감시해 보는 것. 말과 행동이 다르면 책임을 추궁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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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단적인 아이디어지만 그런 관심사항들을 프로그램에 잘만 용해시켜 나가면 적어도 몇 년 지나서 선거철이 되면 또 "젊은층 정치무관심, 투표율 저조 어쩌고" 하면서 호들갑 떠는 일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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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5|방송에서 더 이상의 계몽은 무의미하고 "지사형" 언론인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그래서 "전문가형" 언론인으로 변신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만만찮고 동조하는 사람도 늘어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정말 더 이상의 계몽은 무의미한가?
|contsmark36|민국당이 80석 얻었다고 답변하고, 도박사건으로 물의 빚은 사람이 원효대사라고 답변하는 그런 일은 없게 최소한의 정보와 판단력을 공급하는 일은 포기하면 안되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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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9|그리하여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의 끈을 연결해 주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이걸 위해 무얼할까 고민해야 될 의무가 "시사응급구조119"팀 말고 다른 방송 현업인에게도 분명히 있다. 특히 공영방송사에 입사원서를 쓰고 들어온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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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2|※ 본 시평의 의견은 pd연합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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