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파행방송을 누가 더 걱정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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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주간 미디어 리뷰]

구본홍 사장 선임을 둘러싼 YTN의 노사 갈등이 극한 대결로 치닫지 않을까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구본홍 사장이 물러나든, 노조가 처절하게 깨지든 둘 중의 하나로 결론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예상 때문이지요.

회사 측은 주요 조합원이 포함된 사원 24명의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노조위원장 등 1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고 9월 24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조합원 33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한 뒤 생방송 중 피켓 시위, 집단 연가(연차휴가) 등 투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요.

▲ 이희용 부회장
만일 회사가 해고 등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리고 노조가 이에 반발해 총파업에 들어간다면 1995년 3월 1일 개국 이후 혹독한 'IMF 한파'를 겪으면서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한시도 방송을 멈추지 않은 국내 유일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전직 노조위원장과 전-현직 기자협회 지회장들은 "노사는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나섰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언론관련단체 등은 YTN 노조에 지지를 보내며 구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출입하는 우장균 YTN 기자의 폭로로 불거진 청와대 박선규 언론2비서관의 월권 발언 논란도 청와대의 개입 심증을 굳히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굳이 선의로 해석하자면 언론계 선배이자 국정 최고책임자의 참모로서 YTN 사태를 걱정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요.

9월 12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내년 3월 12일 승인유효기간이 만료되는 YTN, MBN, GS홈쇼핑, CJ홈쇼핑 등 4개 PP의 재승인 심사 기본계획을 의결하는 자리에서 최시중 위원장은 "우리가 (YTN) 조직문제까지 볼 문제는 없나. 방송이 제대로 기능이 안되고 있다. 내부문제 장기화가 시정명령에 해당되나"라고 물었고, 황부군 방송정책국장은 "노사문제로 시정명령을 발동하기는 어렵지만 파업이 장기화돼 방송이 중단될 때는 가능하며 머리띠나 리본을 착용하고 방송을 하는 것은 방송통신심의에서 제재돼 평가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고 하네요.

최 위원장은 9월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당시 발언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인했지만, 시정명령권이나 재승인 심사 등을 내세워 노조의 단체행동 시도를 막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지는 못했지요.

▲ 시위를 벌이고 있는 YTN노조

그런데 7년 전에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임금협상 결렬을 이유로 파업에 돌입한 CBS 노조가 권호경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장기 파업을 벌이자 CBS에서는 뉴스를 녹음방송하는 등 파행이 빚어졌지요. 당시 방송위는 적극 중재에 나서는 한편 방송파행이 재허가 추천 심사에 반영될 수 있다며 사용자 측을 압박했고, 유례없는 특별감사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CBS 노조가 "파행방송이 거듭되고 있는데도 왜 손을 놓고 있느냐"고 방송위에 항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CBS의 전국 13개 채널은 파행방송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2001년 재허가 추천 심사 때 다른 방송사와 달리 유일하게 한 차례 보류된 뒤 그해 12월에 가까스로 조건부 허가추천을 받았습니다.

당시 방송위가 재허가 심사나 특감 권한 등을 내세워 사측을 압박했다면, 최근 방통위에서 흘러나온 재승인 심사 반영설은 노측을 압박하는 구도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통상 파업(strike), 태업(soldiering), 사보타주(sabotage), 보이콧(boycott), 피케팅(picketing) 등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사업장에 손해를 끼치거나 자신들의 정당성을 널리 알려 사용자를 압박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YTN 내부에서는 오히려 노조 쪽이 방송파행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데 반해 사용자 측이 부당인사나 징계 등으로 파행을 부추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CBS 때와는 달리 노사의 처지가 뒤바뀌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사장 선임 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을 이유로 YTN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면 불법으로 규정될 소지가 다분한 탓도 있겠지요. 그렇다 해도 재승인 심사에 반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터에 사측이 강경책을 굽히지 않으려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CBS 사태 때는 재단이사회에 참여한 주요 교단 관계자들이 나서 중재와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YTN에는 구 사장과 노조 사이에서 대화를 이끌어낼 만한 이사들이 없는 상태입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노조의 낙하산 인사 주장에 대해 "이사회와 주총을 거쳐 선임된 적법한 인사"라며 개입을 부인해왔으니 여권 인사가 중재에 나서기도 힘들지요. 결국 내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셈인데, 이처럼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예고된 충돌을 향해 질주를 계속한다면 참사를 피할 길이 없겠지요.

▲ 국회에 출석한 이병순 KBS 사장


21세기 KBS에서 벌어진 무자환국(戊子換局)

KBS에서도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9월 17일 단행된 인사에서 사장 취임에 반대해온 사원행동 참가자들과 탐사보도팀 기자들이 한직이나 외지로 발령 나자 안팎의 불만과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지요. 새 사장이 부임하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인사를 단행하는 게 보통이지만, 희망원을 받는 통상 절차도 없이 노골적으로 보복인사를 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차기 노조 집행부 선거까지 고려해 예상 출마자를 본사 밖으로 보냈다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 활동을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면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될 소지가 크지만, 사원행동은 임의단체이기 때문에 아무런 예고 없이 지방으로 발령난 일부 사원을 제외하고는 이의 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지요.

시사IN의 고재열 기자는 KBS, MBC, YTN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에 비유했더군요. 정연주 사장 때 한직에 있던 사람들이 대거 발탁되고 요직에 있던 사원들이 좌천된 일은 조선 중기의 거듭된 환국(換局)에 견줄 수 있겠네요. 만일 정권과 사장이 바뀌면 다시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걸까요.

조선조의 붕당정치는 부패와 독점을 막는 견제 역할도 했지만, 국익보다는 당파싸움에 치우쳐 극한 대결을 벌이다 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았지요. 어떤 이는 정연주 사장의 팀제 개혁이 바람직한 측면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특정 코드의 사원들을 중용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하더군요. 반대파의 동료 사원들이 인사 대상자들을 지목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희들이 했으니 이제 우리한테 당해봐라"는 식이라면 다음에 더 큰 보복인사를 부르는 법이지요. 또 아무리 노선이 달랐다고 해도 조합원이 겪은 인사상 불이익에 대해 노조가 침묵하는 것은 너무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유리할지는 몰라도 언제 비슷한 사례가 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원 간의 깊은 골을 메울 수 있는 탕평책(蕩平策)을 기대하고 있는 터에 갈등의 씨앗은 계속 뿌려지고 있는 듯합니다. 보수 진영에게는 이른바 코드 프로그램의 전형으로, 진보 진영에게는 개혁 프로그램의 모범 사례로 꼽혀온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시사기획 쌈' 등에 대한 폐지, 혹은 포맷 및 명칭 변경 논의가 일자 제작진을 중심으로 PD들과 기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요.

인사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개편은 늘 있는 일이고, 사장이 바뀌면 폭이 더 커지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일선 제작진의 의견이나 시청자들의 반응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정파적인 시각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한다퇴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진영 쪽에서는 인사나 개편 모두 정상화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 사장의 코드 방송을 비판해왔던 사람들이 반대쪽 코드 방송을 편든다면 그동안의 주장이 정파적 시각에서 비롯됐음을 자인하는 셈이지요. 정 사장의 코드 방송이 나쁘다고 한다면 이 사장도 코드 방송을 해선 안되지요. 과연 진정한 공영방송의 정상화가 무엇인지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에게 물어본 뒤 개편 방향을 정해야 마땅할 겁니다.

▲ 지난 22일 '민영미디어렙 도입 반대' 시위에 참석한 종교방송과 지역방송 노조원들이 선전물을 흔들고 있다.

미디어렙이 MBC 민영화의 압박 카드(?)

해묵은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쟁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9월 4일 방통위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09년 12월까지 미디어렙 신설로 방송광고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9월 17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방침을 시인해 기름을 부었지요.

야당과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이 거세게 반발하자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9월 18일 국회 문방위에서 "내년 12월까지 도입 여부를 매듭짓겠다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고, 기획재정부도 미디어렙 도입 방침을 담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 발표를 9월 24일로 예정했다가 10월 국정감사 이후로 미뤘습니다.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하자는 것은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대행하고 있는 방송광고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이른바 제한경쟁은 민영 미디어렙을 우선 1개 신설해 SBS 광고를 대행하게 하고 공영방송은 KOBACO가 계속 맡도록 하는 것입니다. 완전경쟁은 민영 미디어렙 2개를 만들어 MBC 광고대행권도 맡기자는 것이지요. MBC 지방계열사와 지역민방, 종교방송 등은 신설 미디어렙이 나눠 맡도록 하는 방안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은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모기업 광고에만 치중해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광고료가 인상되고, 케이블TV와 신문 등 다른 매체의 광고가 줄어들고, 시청률 경쟁이 가속화되고, 광고주의 입김이 직접 프로그램에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찬성론자들은 KOBACO가 5공 권위주의 체제의 산물이고, 방송 프로그램의 경쟁과 광고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으며, 소위 끼워팔기(연계판매) 등으로 광고주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고 있지요.

최근 미디어렙 도입 논의의 분위기를 보면 지역방송, 종교방송, 신문, 케이블TV 등이 반대하고 광고단체연합회와 SBS가 찬성하는 기본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SBS는 언론계에서 쏟아질 비난을 감안해 눈에 띄게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내심 바라고는 있지만 먼저 얘기를 꺼내 돌멩이를 맞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MBC는 현재 반대 입장에 서 있기는 하지만 만일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방침이 확정된다면 제한경쟁이 아닌 완전경쟁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메이저신문들의 태도 변화입니다. 그동안 이른바 조중동은 한겨레나 경향 못지않게 미디어렙 신설을 강도 높게 반대해왔으며 동아일보는 올 4월 말에도 문화부의 추진 방침을 비판한 기사를 커다랗게 게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지요.

정부의 미디어 구도 재편 방향에 총론적으로 찬성하기 때문에 각론으로는 여전히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지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지난해와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이는 지상파에 진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태도를 바꾼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하더군요.

비록 조중동이 침묵하고 있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독교방송, 불교방송, 평화방송, 원음방송 등 종교방송사들이 입을 모아 정부 방침을 비난하자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정책으로 불교계와 개신교가 갈등 양상을 보였는데 미디어렙 도입 논란으로 4개 종교의 연대와 화합이 이뤄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공영방송 민영화 추진 방침과 맞물려 민영 미디어렙의 도입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 야당이나 언론관련 시민단체에서도 예전에 비해 훨씬 반대 목소리가 높습니다.

2000년 문화관광부가 제한경쟁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안을 내놓자 MBC는 "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것은 우리나 SBS나 똑같은데 왜 차별하느냐"며 반발했고, 규제개혁위원회도 제한경쟁만으로는 경쟁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며 완전경쟁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을 중심으로 각계의 비판이 거세고 완전경쟁을 도입하면 부작용이 많다는 KOBACO의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가 나오자 유보됐지요.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이나 신재민 문화부 차관 등은 MBC에 대해 공영이든 민영이든 확실하게 선택하라고 주문해왔습니다. 만일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하며 공영방송의 광고는 KOBACO가 대행하게 하면서 MBC에 선택을 요구하면 MBC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지요. 자칫 내부 분열로 이어질 공산도 큽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미디어렙 도입 추진에 이런 노림수가 있다고 지적하며 MBC를 상대로 미디어렙 도입 반대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지요.

미디어렙 논란은 당장은 잠잠해지더라도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차제에 미디어 구도 재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할 필요는 있습니다. 방송정책 가운데 핵심은 재원이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광고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의 틀을 어떻게 만들지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은 터에 미디어렙 논의를 먼저 하려는 것은 민영화와 신문-방송 겸영 추진 등에 미디어렙을 지렛대로 사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6월 5일 유인촌 장관이 "법률안은 미리 준비하더라도 2012년 디지털 전환 시점과 함께 민영 미디어렙을 본격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듯이, 디지털 전환 시점에 맞춰 미디어 구도의 틀을 바꾼다는 목표 아래 미디어 관련법 개정 문제 등을 논의한 뒤 그 사회적 합의에 따라 미디어렙 도입 여부나 방안 등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했습니다.    [이희용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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