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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영미 PD

이라크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필자가 기획했던 이라크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2002년 처음 이라크로 갔을 때는 전쟁 이전이었고 사담후세인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때 10년간 이라크를 취재해서 전쟁 전의 이라크와 전쟁 이후의 이라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2002년부터 2005년 외교통산부에 의해 이라크 입국이 금지 될 때까지 6번에 걸쳐 이라크를 취재했다.

그동안 필자는 이라크의 보통 가정부터 바그다드 시민들과 그들의 생활, 한국군 파병과 미군들을 취재했고 아직도 그 다큐는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는 20세기 안보라인에 무척 중요한 곳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수록 우리는 그 안보라인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고, 작년부터 이라크의 정치 상황은 급물살을 타고 있었고 치안 상태도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한국 언론이 분쟁지역을 취재해야 하는 이유

다시 세계의 외신 기자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이 계속 뉴스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미국 언론은 대선 분위기로 들어서며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군 문제가 선거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세계의 뉴스 초점이 이라크로 향하고 있었고 필자도 이런 이라크의 상황을 놓칠 수는 없었다.

바그다드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각종 까다로운 서류심사 끝에 나는 미군 종군 기자 프로그램에 따라 바그다드로 향할 수 있었다. 미군의 종군기자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는 그나마 취재진에게 가장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3년 만에 도착한 바그다드는 거대한 미군 기지를 방불케 했다. 바그다드 공항은 미군 공군 기지로 변했고 그린 존은 더욱 넓어졌다.

필자가 배정된 부대는 제 2 스트라이커 여단이었다. 이 부대소속 2대대 2중대는 시내 한가운데에 밀가루 공장이었던 건물을 점령하고 들어가서 전초기지를 만든 보병 부대이다. 여성 취재진을 위한 시설은 물론이고 여군도 없었다. 거의 베트남전 영화에 나올법한 콘크리트 건물에 식사도 부실하고 땀 냄새와 모기만이 가득했다. 이 부대의 주요 임무는 알카에다 수색을 위한 순찰이었다.

▲ 미국 국방부 허가 해외 주둔 미군 신문인 ‘스타스 앤 스트라입스’는 김영미 PD와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이라크 취재제한에 대해 인터넷 1면 톱뉴스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감독은 이라크 여행으로 인해 법률 위반으로 기소될 수도 있다"(Filmmaker could be tried for violating law against travel to Iraq)고 보도했다. ⓒStars and Stripes

매일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순찰을 나가서 오늘도 내일도 걷는 것이었다. 날씨는 50도가 넘는데 방탄조끼에 헬멧, 그리고 카메라, 장비 가방까지 메고 다녀야하니 군대 가본 적 없는 여성 취재진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처음 미군과 순찰 나가서는 겨우 한 시간 순찰하고 바로 링거를 맞아야 할 만큼 괴로웠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취재진은 바로 퇴출할 수 있다는 종군 기자 규칙을 거론하는 지휘관의 엄포에 힘들어도 힘들단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꾸역꾸역 매일 취재를 나가야 했다.

하지만 도보로 마을과 도시를 순찰하다보니 이라크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알카에다에 지친 이라크 사람들에게 이제 빵보다 더 필요한 것은 치안으로 보였다. 마을마다 한집 건너 한집은 폭파되어 있었고, 하루에도 10번 이상 일어나던 자살 폭탄 테러와 시아와 수니파의 갈등은 수많은 무고한 인명 살상을 불러왔고 시민들은 알카에다에게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미군을 보는 눈도 결코 곱지도 않았다. 전후 5년간 미군의 민간인 학살도 치안의 부재를 가져온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민간인 집에 아침 식전에 예고 없이 총 들고 중무장한 미군들이 마구 들이 닥치면 이라크 사람들 눈에는 마치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울고불고 여자들은 구석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다른 미국취재진이 취재를 왔더라면 미군의 예전과 달라진 젠틀한 수색을 촬영했을지 모르지만 한국 취재진인 필자의 눈에는 지난 5년간의 미군에 대한 공포가 이라크 사람들의 행동에서 여실히 보였다. 필자가 이라크 취재를 할 당시 CNN, NBC등 미국의 메이저 언론사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대선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어 있었고 때마침 벌어진 미군의 알카에다 수색작전은 각 언론사들의 뉴스 경쟁을 치열하게 했다. 미국 취재진 뿐 아니라 유럽이나 러시아, 중국 취재진들도 종군기자 프로그램으로 취재차 이라크에 들어 와있었다. 그 만큼 올해 이라크는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었고 세계 안보정책에 있어서 이라크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핵심이었다.

안타깝지만 그나마 혼자 한국 취재진으로 있었던 필자마저 정부의 강압에 끌려나와 여행 제한 국가 입국으로 형사고발 당한 후 이라크의 상황을 전할 취재진은 더 이상 없다. 언제쯤 우리 한국 취재진들도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이라크나 분쟁 지역을 취재할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언론도 충분히 취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가겼다고 본다. 더 이상 세계 거대 언론사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적인 한국 취재진만의 취재를 할 수 있는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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