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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PD와 함께 생각해 볼 일

노경희(MBC 다큐스페셜 구성작가) 노경희l승인1996.1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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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pd들 앞에 글을 내놓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또 뭐라고 까다로운 주문들을 해올까. 그래서 또 어쩔수 없이 연말을 맞으며 떠오르는 두 이야기를 옮겨만 놓기로 한다.)

첫번째,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익으면 누구나 공감할 말. p6.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뿐 호흡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때 보다도 저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p48. 느림과 기억사이, 빠름과 망각사이네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웬 사내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문득, 그가 뭔가를 회상하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자신이 방금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시간상, 아직도 자기와 너무나 가까운, 자신의 현재 위치로부터 어서 뻘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한다.(오랫동안 뜸들이다가 정작 중요한 시기에 모든것을 후다닥 해치워냈던 많은 그 pd들과 함께 생각해 볼 일)

두번 째, 시인 황지우가 열었던 조각 전시회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 황지우는 지난해 조각전을 연 후 착으로 묶고 이런 말을 적었었다. ...진흙은 똥 다음으로 더럽다. 그러나 질컥거리는 그것의 촉감은 그 어떤 살보다 에로틱하다. 내 두손에서 일어나는 촉감의 쾌감, 그것의 전율케하는 직접성은 내 속의 무엇인가를 스파크시켰다. 촉각이 영혼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나는 만졌다. 나는 깨어났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였던 것 역시 그 근사한 말 때문은 아니었다. 5월의 비오는 인사동 골목을 거슬러 학고재에 들어서서는 참 많이 웃었는데 그 중 하나, "일요일 내내 tv 福하다"라는 브론즈:배 나온 황지우가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웠다. 너무 나온 배는 쳐져서 바닥에 닿아 있다. 한 손엔 리모콘을 쥐었고 얼굴의 주름들은 우리가 흔히 뺨과 귀를 손으로 괼 때처럼 옆으로 늘어나 있다. 고개가 그덕여졌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도 잡아보았을 것 같을 그 촉각에 부러움이 일었다. (뭐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 바삐 찾아 오는 차례에, 제대로 주물러 거려보지도 못한 채 황황히 이름 달아 보내야 했던 많은 프로그램들, 그 pd들과 이야기 해 볼일)

마지막으로 매일 얼굴 부딪혀야 하는 탓에 감사 인사도, 새해 인사도 변변히 전하지 못할 모든 pd분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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