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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남내원 EBS〈다큐프라임〉PD

먹을거리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식탁의 세계화가 가져올 위험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많이 보아왔다. 보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갈망과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공포 또한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왔다. 그러는 동안 언제부턴가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먹어서는 안 될 나름대로의 제품 리스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짧은 점심시간에 순두부찌개 한 그릇을 시켜놓고 GMO 콩과 중국산 김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은 일상 속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공포는 ‘알고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먹을 게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자기 위안과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확고한 운명론 또한 우리의 일상을 합리화하는데 한 몫 단단히 거든다. 

▲ <경향신문> 10월1일자 9면
하지만 여전히 찝찝하다. ‘멜라민 몇 %’라는 표기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괜스레 제품 성분 표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유기농 먹을거리에도 고개를 디밀어본다. 중국산은 위험하지만 덴마크산은 안전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도 생겨난다. 덴마크의 수도가 코펜하겐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지만, 선진국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으레 정부는 각종 숫자로 나열된 과학적 성분분석 결과를 발표해 조그만 위안을 주며 공포를 잠재운다.

‘커피 3000잔’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나왔다. ‘커피믹스에 들어간 크림의 경우, 하루에 커피를 3000잔 이상 매일 마셔야 위험’하다는 발표였다. 그러나 커피는 마셔도 된다는 안도감보다는, ‘커피 3000잔’이라는 표현이 주는 묘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우리 모두는 기네스북 도전자가 아니다. 매일 하루에 3000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비현실적인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으니 안심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한 것은 왜일까?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먹을거리와 관련된 우리의 삶이 확률로만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먹어도 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추상적인 숫자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추에 밥과 고기, 마늘을 얹어 한 입 가득 먹는 대신, 쇠고기가 광우병에 감염되었을 확률과 마늘의 유전자가 조작되었을 확률을 곱해 안정성에 대한 최종결론을 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분석과는 별개로 우리의 먹을거리가 삶에서 가지는 총체적인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식품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불편한 이유는 과학적 분석을 넘어서는 먹을거리에 대한 세심하고도 진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기자회견 후, 단체로 닭고기를 먹고 쇠고기를 먹는 몇 십 년째 반복되어 온 구태의연한 감수성으로는 결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 남내원 EBS〈다큐프라임〉PD

‘몇 십억 분의 1’이라는 희박한 확률이 100% 안전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험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으로 작용해 줄 수는 없을까? 먹을거리에 엮여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정서적인 면을 어루만져주는 감동적인 정책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커피 3000잔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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