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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 리터러시](25)

YTN 낙하산 사장이 노조원 6명을 무더기 해고, 전두환 신군부 이래 최악의 언론학살을 자행한 것은 현 정부의 방송 장악 욕구가 얼마나 집요한 지를 잘 보여준다. YTN이 33명의 조합원에 대한 무더기 중징계를 강행한 것은 80년대 신군부의 살인마적인 군사통치 하에서 이뤄졌던 반독재 투쟁 언론인 불법해직 사태 이후 처음이다. YTN 노조원 6명의 해고는 21세기 들어 첫 번째 대량 해직으로 청와대의 방송 장악 시도로 발생한 ‘언론노동자 학살’이다.

YTN 노조는 낙하산 사장의 부당 인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사장 출근저지 투쟁과 함께 부당 인사 철회 투쟁 등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언론현업 및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등에서는 이번 사태가 YTN 만의 문제가 아니라 MBC 민영화와 신문·방송법 개악 등 전체 언론 장악의 밑그림 속에 진행되는 중대한 문제라고 규정하고 총력 대응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YTN사태는 언론계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랐으며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가 초래한 언론 탄압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YTN노조는 지난 6일 오후 7시 YTN타워 19층 보도국에서 비상총회를 열어 사측의 '무더기 징계'를 규탄하고, 투쟁수위를 높여 구본홍 출근저지투쟁을 재개하기로 결의했다. ⓒPD저널
이명박 대선 캠프 출신 낙하산 사장이 공영방송 수호, 언론자유를 외치는 노조원들에 대해 독재정부 빰치는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은 그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낙하산 사장의 극히 비상식적인 인사권 발동은 그의 권력 배경인 청와대 쪽에도 비판의 불똥이 튀면서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낙하산 사장에 대한 강력한 저항에 대해 청와대 등 권력기관 등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사실 등에 비춰 이번 사태는 정권 차원의 사전조율 결과로 추정된다. YTN 사원들의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대해 청와대가 얼마 전 직간접적인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문광부에서 YTN 주식 매각 사실을 유포한 것 등은 현 정권이 YTN 사태에 공동보조를 취해왔다는 증거들이다.

청와대는 정권 출범 이후 방송통신위원회, 문광부 등을 중심으로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군사작전하는 식으로 방송장악 등을 시도해왔다. KBS 정연주 전 사장을 감사원, 검․경찰, 문광부 등이 입체작전을 펴 단시간 내에 부당 면직 시킨 것은 현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가 커다란 스케줄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낸다. MBC <PD수첩>에 대한 노골적인 외압도 권력의 언론에 대한 직접 통제의 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강한 집착은 정권의 승패가 언론에 달려있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에 전혀 걸맞지 않는 정치 및 언론관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매체가 공존하는 정보화시대에 정치권력이 정책 홍보, 언론의 어용화에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언론을 권력의 하부기관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현 정권의 언론에 대한 비민주적인 접근은 “언로(言路)를 장악하면 천하를 얻는다”는 봉건시대 권력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각종 정부 정책에 대한 홍보가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출했다. 이대통령은 각 부처 내 최고의 인재들을 홍보업무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소식을 청와대가 지난 수개월 동안 추진한 반민주적인 언론 대책과 연결시키면 향후 언론과 정부의 갈등이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반에 자초한 실정의 원인이 자신의 책임이라기보다 정부 부처의 홍보 부족, 언론의 대 정부 비판 탓이라고 보고 관련 대책을 강력 추진하려 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YTN 사태는 이 대통령의 ‘실망감’ 표현 이후 발생했다는 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 ⓒPD저널
민주주의 사회에서 방송, 신문 등 공식 미디어는 정치로부터 독립한, 자율적 존재로 인식되며 한 이탈리아 학자는 이를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불렀다. 즉 과거 모든 것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 반면 오늘날 모든 것은 언론을 중심으로, 또는 언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민주주의는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이처럼 명쾌하게 설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이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억지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듯 다양한 정보 전달 시스템이 공존하면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정보화시대의 방송, 신문은 과거와 달리 정보를 독점하지 못한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신문과 방송 정도로 국한되었던 과거에는 정치군인들이나 독재자 또는 자본가들의  통제를 받는 언론이 극히 제한적인 정보만을 전달하거나 때로는 정보를 왜곡하는 일이 가능했다. 외국언론의 기사가 국내에 알려지는 것 등을 강제로 막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이런 일은 불가능해졌다. 신문과 방송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터넷 매체가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정보가 차단되거나 왜곡되는 일은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것도 이 나라의 정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덕택이었다. 오늘날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는 지난 수십년 동안 수많은 민주시민들의 피와 눈물, 희생으로 달성된 것이다. 언론의 경우 독재자의 선전 홍보 도구역할을 강요받던 시대에서 서구식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도 불과 20여년 전이다. 그 이전 우리 언론은 비좁고 험난한 정치적 자유의 공간 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우리 언론의 역사는 정치권력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뤄져 왔다.

예를 들면  이승만 정권하에서 언론은 정치권력의 통제아래 서구사회와 같은  언론자유를 누리지 못했고 4.19뒤의 군부통치 속에서 반민중적 언론 활동을 강요받는 순치된 언론의 모습을 나타냈다. 5.16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과 그를 승계한 신군부의 통치기간 동안 언론은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 우리 언론사에서 언론 통폐합은 61년,72년,80년 등 3차례에 걸쳐 일어났고, 기자대량 해직 또한 72년,75년, 80년 등 3회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언론에 제약을 가한 법률은 20여개나 되고 긴급조치 계엄선포에 따른 한시적 언론기능 억제도 수회에 달한다.

▲ YTN 항의방문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을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PD저널
87년 6월 항쟁이후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항쟁이전에서는 정치권력에 언론이 종속된 형태였으나 그 이후 정치와 언론의 영향력은 대등한 관계로 변했으며 97년 평화적 정권 교체이후 언론의 영향력이 정치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수구언론이 진보적 정권에 대해 지속적인 헐뜯기, 발목잡기 보도를 하면서 그것은 더 심화되었다. 수구언론은 이 나라 정치 및 언론 민주화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채 그것이 달성된 뒤 무임승차하하는 식으로 상업적 이익 등을 챙겼으며 오늘날 이명박 정권과 한 통속이 되어 신문 방송 겸업을 통한 언론 시장 독과점을 시도하고 있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에게 최대한 서비스를 베푸는 것이다. 정치가 이런 목표에서 멀어지게 되면 국민위에 군림하거나 국민을 속이려하는 흉기로 변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섬기는 태도는 지난 수 개월 동안 여러 방면에서 낙제점인 것이 드러났다. 그는 집권 수개월만에 임기말의 대통령처럼 지지도가 바닥을 기는 불행한 신세가 되었다. 이는 그가 국민을 얕잡아보고 자초한 것이다. 그는 국민의 여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강부자, 고소영 인사, 낙하산 인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부자 1%만을 위한 경제정책 등을 강행하려 했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앞세웠지만 정작 소기의 목적은 달성치 못했다.

▲ 고승우 박사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스 미디어 역할의 하나인 파수 견 역할(watchdog role)은 정부에 대한 감시, 견제로 실천된다. 매스 미디어는 제 4부로 일컬어지는데, 이는 미디어가 시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에서 형성된 여론을 보도함으로써 정부를 감시하게 되고, 선거 시 유권자들에게 정당과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언론이 전체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배권력을 감시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처럼 유권자의 선거 참여가 저조하고 정치적 관심이 낮은 상황에서 언론의 환경 감시 역할의 중요성 더욱 강조된다. 이런 점을 살필 때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는 정치 프랜들리 언론이란 시대상황에 걸맞지 않다. 정치와 언론이 정상적인 관계를 벗어나 예속 또는 야합의 수준으로 간다면 정치와 언론 모두를 망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청와대는 진정 훌륭한 정치를 하려거든 우선 즉각 YTN 사태부터 정상화 시켜야 할 것이다. 동시에  방송 장악, 신문 방송 겸업 허용과 같은 언론 제도 개악을 즉각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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