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왜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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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왜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가?
  • 승인 200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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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방송위원회가 전체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100분의 30 범위 안에서 방송사 특수관계자(자회
|contsmark1|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의 비율을 고시하게 되었다. 이에 근거해 방송위원회가 전체 외주제작비율 25% 중 특수관계
|contsmark2|자 비율을 20%로 고시한다고 알려지자 당사자인 mbc프로덕션과 sbs프로덕션 소속 pd들이 방송사 자회사를 고
|contsmark3|사지경으로 몰아넣는 탁상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글은 sbs프로덕션에 근무하는 한 pd가 pd연합회보에 투
|contsmark4|고한 것이다. pd연합회보는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이 글을 싣는
|contsmark5|다. 단, 이 글이 pd연합회의 공식입장은 아님을 밝혀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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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도 밥도 아닌 샌드위치가 된 채, 꿀먹은 벙어리로 세월을 엮다가 느닷 없이 동네북이
|contsmark9|되어 "매우 쳐질" 신세가 된다면 그것만큼 기구한 팔자도 없을 것이다. 헌데 요즘 내 주위엔 이런 팔자를 가진 사
|contsmark10|람들이 갑자기 많아진 것 같다. 아니 주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나 자신부터 문제의 팔자타령에서 벗어나지 못
|contsmark11|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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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나는 방송 제작을 밥벌이로 삼고 있는 pd다. 그런데 나의 직함 앞에는 두 개의 영어 단어가 붙는다. sbs 그리고
|contsmark15|production. 우리 나라 유수의 공중파의 상호와 무한경쟁의 살기로 충만한 "프로덕션"의 이름이 기묘하게 결합
|contsmark16|된 sbs 프로덕션의 pd인 것이다. 최근의 방송법 용어로는 "특수관계자"의 일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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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돌이켜보면 5년 전, 나는 그저 방송이 뭔지도 모르면서 방송인이 되고 싶어하던 장삼이사의 하나였다. 헛된 꿈이었
|contsmark20|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고 앞에서 말한 그 어정쩡한 직함을 갖게 된 것은 그 노력의 결과
|contsmark21|였다. 어쨌건 방송사 sbs의 이름 걸린 곳에 시험 보고 pd로 들어왔고 내 이름이 실린 스크롤이 안정적으로 sbs
|contsmark22|를 통해 방송되는 프로그램 말미에 깔린다는 사실이 그때는 더 중요했다. 자회사라는 꼬리표나 외주제작업체라는
|contsmark23|엄연한 차별성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무식했다고? 나의 무식에 침을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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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6|침을 닦아 내고 한 마디 한다면, 방송 pd로 명함 파고 다녔던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더 무식하게 방송일에 전념해
|contsmark27|왔다. 자회사건 특수관계자건 그건 신경 쓸 일도, 저어할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는 격언
|contsmark28|을 가슴에 새긴 이상 프로그램에 전념하는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무모했다고? 나의 무모함에 침을
|contsmark29|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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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또 한 번 얼굴에서 침 닦아 내고 한 마디 한다면 내 주위의 무모했던 사람들, 방송사 소속은 아니지만 여느 방송
|contsmark33|사 pd 못지 않은 책임감으로 일했고 방송사와의 "특수한 관계"라곤 일절 없는 말뿐인 자회사에서 방송 두 글자에
|contsmark34|자신의 황금기를 소진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요즘 추스를 길 없는 허탈에 빠져 있다. 자신들의 과거가 송두리째 불
|contsmark35|필요한 곁가지였고 자신들의 현재는 "외주제작 활성화"의 걸림돌이며 자신들의 미래는 "궁극적 소멸"이라고 단언하
|contsmark36|는 축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은 나에게 선진 방송의 이상과 한국 영상 문화 발전의 마스터 플랜에 무지하다
|contsmark37|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무지함에 침을 퉤퉤 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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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0|하지만 나는 되물을 것이 있다. 과연 우리가 속한 곳의 과거가 그다지도 쓸모 없는 것이었나? 외주제작이라는 말
|contsmark41|조차 생소할 무렵 외주제작의 시스템을 기본포맷한 것은, 후발 독립제작사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인력, 시설, 기
|contsmark42|술 등 방송 인프라를 제공한 것은 어디 사는 누구였나? 또 과연 우리의 현실과 미래는 방송 발전의 걸림돌에다 사
|contsmark43|라져야 할 허섭쓰레기인가? 지금 방송사 자회사의 목을 조르고 외주 비율 숫자놀음을 벌이는 것으로 외주제작의
|contsmark44|활성화가, 진정한 선진 방송 구현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건가? 현재 외주제작 시장에 시장의 원칙이 세워져 있다고
|contsmark45|믿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신들의 똥배짱에 침을 뱉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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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8|나는, 내 주위의 선후배 동료들은 방송을 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다 "방송사 자회사"라는 곳에
|contsmark49|몸을 실었고 "특수 관계" 따위 생각도 않은 채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의 "만나면 좋은 친구"가
|contsmark50|되고 싶었던 사람들일 뿐이다. 왜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가? 왜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게 하려 하는가? 왜 우
|contsmark51|리를 죄인 취급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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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4|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게으름이 죄라고? (음 이것 빠삐용의 한 장면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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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그렇다면 나는 유죄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나를 돌로 쳐라.|contsmark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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