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씨 덕분에 우린 더욱 하나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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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씨 덕분에 우린 더욱 하나가 됐습니다”
[2008년 한국의 언론인, 그들이 사는 법(2)] YTN 사람들
  • 김도영 기자
  • 승인 2008.10.15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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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방송계가 요동을 치고 있다. 미 쇠고기 안전성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 파문과 정연주 전 KBS사장 ‘퇴출’에 이은 인사보복 논란 그리고 최근 구본홍 사장 반대투쟁을 벌인 기자들에 대해 해고 결정을 내린 YTN사태까지 방송계는 그야말로 논란과 파문의 연속이다. 〈PD저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방송장악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KBS MBC YTN 기자와 PD 등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2008 한국 언론’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현재 구본홍 사장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사람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의 평가전이 있던 지난 11일. YTN 스포츠부의 축구담당 최기훈 기자(1996년 입사)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평소 같으면 취재를 위해 경기장을 찾았겠지만, 이날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최기훈 기자는 지난 6일 인사위원회가 발표한 33명의 징계 명단에 포함돼 6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출근저지 등 구본홍 사장 반대투쟁에 참가해 회사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최 기자는 “징계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크게 걱정하지만 펜과 마이크가 꺾인 기자는 무기력했다. 그는 “취재원과 접촉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내가 정직 상태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정직 통보 이후에도 최기훈 기자는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한다. 보도국 대신 농성 천막이나 노조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는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집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최기훈 기자(스포츠부), 왕선택 기자(정치부), 한경희 사원(국제부 편집팀) ⓒPD저널

매일 아침 8시가 가까워지면 YTN 노동조합원들은 YTN타워 후문 앞으로 하나 둘씩 모여든다. 제법 쌀쌀해진 가을 날씨는 ‘투쟁 조끼’를 걸친 노조원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여름에 시작한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은 어느덧 90일째로 접어들었다. 이제 ‘투쟁 점퍼’라도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농담처럼 나온다.

세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싸움’에도 YTN 노조는 지치지 않는 기색이다. 사측의 ‘무더기 징계’ 이후 재개된 노조의 출근저지 집회에는 전보다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동참하고 있다. 우려했던 동료, 선·후배들의 징계가 현실이 된 것에 대한 분노와 울분의 표현이었다.

휴대용 방석을 깔고 앉은 대열의 앞줄에는 정치부 왕선택 기자(1994년 입사)가 있다. “말하는 게 어색해 평소 잘 나서지 않는다”는 왕 기자도 후배들의 징계 앞에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얼마전 보도국 부·팀장 회의를 항의방문한 자리에서 선배들을 향한 애절한 호소로 주변의 눈시울을 적셨다.

“(노)종면이가 <돌발영상> 만들었잖아요. 그 덕에 YTN 가치가 500억 이상 올랐을 거예요. 이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데 왜 이 사람을 잘라요. 내가 얼마나 짐승처럼 일했는지 선배들은 모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일해서 지금 YTN 잘 된 것 아니에요? 선배들이 움직이면 해결할 수 있어요.”

왕 기자는 “선배로서 의연했어야했는데 감정이 북받쳤다”며 쑥스러워했지만, “YTN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회사를 넘기기 위해 지금의 YTN을 만든 1등 공신들을 해고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는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장기화된 노조의 투쟁에 조합원들이 지치지 않고 참여하는 것은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남다른 ‘애사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왕선택 기자는 “YTN은 우리가 빈 사무실에 책상 나르고 집기 닦아가며 만든 회사에요. IMF 때는 5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최고의 언론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다고요. 지금도 기자들 스스로 출장비를 아끼려고 노력할 만큼 ‘내 회사’라는 인식이 강합니다”라고 말했다.

왕 기자의 뒤편에는 오전 7시에 밤샘야근을 끝내고 곧바로 집회에 참석한 국제부 편집팀의 한경희 사원(2002년 입사)이 있다. 야근이 잦은 부서 특성상 아침 집회에 참석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고되지만 그녀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힘이 된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를 지킨다.

최근 집회에 참가한 사진이 한 인터넷 신문에 실리면서 한경희 사원은 주변의 우려 섞인 전화를 많이 받았다. 그녀는 지난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더욱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한경희 사원은 “개의치 않는다”며 오히려 “국제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원이 함께 근무하는데, 노조원이 아니라서 함께 투쟁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사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한경희 사원처럼 YTN의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에는 기자 뿐 아니라 다양한 직종의 사원들이 동참하고 있다. <돌발영상>의 임장혁 팀장은 “언론사 노조 투쟁에 이렇게 여러 직종이 참여한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명섭 사원(마케팅국), 이성호 차장(기술국 송출기술팀), 정지원 차장(보도국 그래픽팀)

마케팅국에 근무하는 김명섭 사원(2001년 입사)도 집회에 참석한다. 경영분야인 부서 특성상 ‘사무실 눈치’가 보일 법도 한데 노조의 투쟁에 동참하는 그의 표정은 담담하다. 대신 그는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오전 9시께면 사무실로 복귀한다. 김명섭 사원은 “공정방송 수호는 기자 뿐 아니라 언론사의 모든 종사자가 지켜야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술국 송출기술팀의 이성호 차장(1995년 입사)도 “직접 취재를 하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공정방송’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 몇 개월간 구본홍 씨가 입성하는 과정을 보면서 왜 대선특보가 사장으로 오면 안 되는지, 왜 공정방송이 필요한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처음엔 ‘대선 특보’가 반대의 명분였지만 지금 YTN 사원들이 구본홍 사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구 사장이 3개월간 보여준 행동은 사원들에게 실망과 불신을 안겨줬다.

왕선택 기자는 “처음엔 공정방송의 제도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해고 등 노조원 징계 이후에는 구본홍 씨 퇴진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케팅국 김명섭 사원도 “공정방송 이외에도 구본홍 씨가 제시한 경영 청사진은 YTN에 대한 고민이 없는 단순한 발상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YTN 사원들이 구본홍 사장과의 ‘긴 싸움’을 통해 얻은 것도 있다. 보도국 그래픽팀의 정지원 차장(1994년 입사)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조직이기 때문에 원래 소통이 원활한 편이었지만, 구본홍 씨 선임 이후 출근저지집회 등에서 선·후배들을 자주 만나면서 더욱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를 겪고 나면 더욱 탄탄한 언론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최기훈 기자는 “후배들은 이번 투쟁을 통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라며 “지금의 시련이 나중에 젊은 기자들이 더욱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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