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학살’을 딛고 일어선 건국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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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BS순천 여순사건 60년 특집기획 ‘잃어버린 60년’

‘킬링필드’는 수만리 떨어진 캄보디아만의 역사는 아니다. 1948년 여수와 순천, 제주에서, 거창은 물론이고 노근리에서 그리고 1980년 광주까지…. 적어도 수십 만 명 아니 한국전쟁까지 포함하면 족히 수백 만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권력의 군홧발에 죽임을 당했다. 어찌 보면 현대사 60여 년 동안 한반도는 무시무시한 ‘킬링필드’였는지 모른다.

올해는 건국 60주년이면서 여순사건이 터진지 60년 되는 해다. 8월15일 이승만 정권 출범 2달 뒤인 10월 중순 여수와 순천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양민이 몰살당했다. 이승만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했다고 한다. 역사서에는 여순사건이 제주4·3사건과 함께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이라고 기록돼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건 것일까.

▲ KBS순천 여순사건 60년 기획특집 <잃어버린 60년> ⓒKBS순천

KBS 순천방송국은 지난 16일 여순사건 60년을 맞아 특집기획 〈잃어버린 60년〉(취재 지창환 · 촬영 김종윤)을 내보냈다. 취재진은 백발노인이 된 여순사건 당시 피해자와 역사의 희생자였던 진압군 그리고 일본으로 도피한 당시 반란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내막과 민간인 피해 규모 등을 유추하고 여순사건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조사와 유해 발굴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잃어버린 60년〉은 60년 전 화순사건을 애니메이션 기법과 재연을 이용해 찬찬히 따라갔다. 1948년 10월19일 밤, 여수 15연대에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4.3사건으로 토벌작전이 진행 중이던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것이었다. 이날 밤 여수 14연대 소속 지창수 상사를 필두로 좌익계 병사들은 ‘친일경찰 타도’ ‘제주도 출동거부’ 그리고 ‘남북통일’을 구호로 내걸고 봉기를 일으킨다.

이들은 다음날 새벽3시, 여수를 점령하고 곧바로 순천으로 이동한 뒤 구례, 벌교, 광양으로 진격했다. 이 소식은 여수 순천지역의 좌익단체와 학생들에게까지 퍼졌고, 일부 학생들과 주민들이 반군에 가담했다. 취재진은 당시 중고등학교 졸업생 명부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반군에 가담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그 이후 정부는 반군토벌 사령부를 설치하고 22일 여수 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진압군이 27일 여수를 탈환하면서 여순사건은 발발 8일 만에 일단락됐다. 그 사이 반군은 지리산과 백운산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 이후 반군토벌 사령부는 반란군과 그들을 도와준 주민들을 색출. 사실상 처형에 나섰다.

취재진은 당시 증언을 듣기 위해 피해지역을 찾아갔다. 그중 순천시 산동면 상관마을은 민간인 피해가 많은 곳이다. 이곳은 지리산 아래 첫 동네로 반군의 은신처와 가까운 곳이어서 이곳 마을 남자들은 대부분 부역혐의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살아남은 남자는 단 2명 뿐이다. 취재진은 사건 발발 직후 10여일간 전남도청이 집계한 여순사건 희생자는 2600여명, 그러나 민간 연구소들은 사건 이후 양민학살까지 포함하면 사망자가 1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반란군에 가담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잃어버린 60년〉은 바로 가난 때문이었다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프로그램에 담았다. 인터뷰에서 홍영기 교수(순천대)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에 보면 지주소작제에 대한 모순이 여순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동기 였을거라고 한다”며 “어쩌면 그것들이 그 당시에 인플레의 심화라든가 곡물수집에 대한 문제가 서민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었고, 불만이 표출돼 학생들도 동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권력에 의해 이념을 선택해야하는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었던 시대. 그리고 평등하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민중들의 바람은 위정자들의 총칼에 처참하게 짓밟혔다. 그 뿐이 아니다. 그의 가족들은 연좌제로 부모와 형제를 잃어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하고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인고를 견뎌야 했다.

해방 후 좌우익 갈등의 와중에서 희생된 양민은 우익에 의해 학살된 숫자만도 1백만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김상웅 씨의 ‘해방 후 양민학살사’에서 학살된 주민 대부분은 이데올로기가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좌익척결과 공비·통비분자 토벌이란 구실 아래 억울하게 숨져갔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사 수정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국사편찬위가 각 출판사에 지시한 가이드라인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업적을 부각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건국 60주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미다. 역사는 이기자의 것일까. 건국 60년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의 대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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