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비평]오락성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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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비평]오락성은 죄가 없다
  • 승인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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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어린 여자 아이가 말했다. "저분은 굉장한 부자인가 보지요? 어딘가 몹시 천박해 보이니 말이에요." 그와 같은 식
|contsmark1|으로 일반 독자는 비평한다. "이 저자는 상당한 학자인 모양이지? 몹시 지리하니까 말이야."
|contsmark2|- 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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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요즈음 오락 프로그램 저질 시비가 한창이다. 늘 있어왔던 현상이지만 한 동안 잠잠하다 다시 시작이다. 지적되는
|contsmark6|사항들도 다양하다. 불륜 행각, 낯뜨거운 성이나 폭력 묘사, 밤무대를 연상시키는 대화, 퇴폐 경연장에 가까운 쇼,
|contsmark7|인권 무시 등. 게다가 불분명한 제작 목적, 외국 프로그램 표절, 지나친 사치 풍조 조장, 저속한 언어 사용, 준비
|contsmark8|없는 무성의한 제작 등에 이르면 한 마디로 가관이다. 그 덕분에 말 많은 매체 비평 단체나 방송 비평가들의 질타
|contsmark9|가 홍수처럼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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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그래서인지 오락 프로그램 폐지 내지 축소를 골자로 방송의 공익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횡행한다. 그리고 그 주
|contsmark13|장의 끝에는 교양·다큐 프로그램을 늘리자는 첨언이 따라붙는다. 분명 우리 나라 오락 프로그램이 질적 저하 현
|contsmark14|상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도덕 강국을 지향하는 국가관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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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그러나 좀 이상하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천만의 말씀.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거니와 그렇게 해결되어서
|contsmark18|도 안된다. 왜? 일단 시청자들은 유쾌하고 싶고 재미있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결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
|contsmark1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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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오락 프로그램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판단 기준이
|contsmark23|지나치게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것은 아닌지? 과연 오락성이 나쁜 것인가? 게다가 오락 프로그램을 저질로 제작하
|contsmark24|는 문제(혹은 아무 생각 없이 저질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문제)와 오락 프로그램 자체의 저질성 문제는 구분해야
|contsmark25|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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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8|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시청률은 그 자체로 대중들의 선호도와 시청 능력을 반
|contsmark29|영한다. 시청률이라는 게 무엇인가? 시청률이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다는 계량화된 자료가 아니다. 불특정
|contsmark30|다수의 평균적인 선호도를 반영하고 시청자가 자신의 여가 시간을 합리적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따라
|contsmark31|서 이를 무시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선호도와 시청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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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더구나 오락성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의 평론가 보브나르그가 말했다던가? "노동에서 얻은 열
|contsmark35|매는 모든 쾌락 중에서 가장 맛있다"라고. 그러나 노동만으로는 삶이 감미로울 수 없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오늘을
|contsmark36|살아가면서 현대인들의 노동 강도가 더욱 세지는 마당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예전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contsmark37|노동에는 반드시 적절한 휴식이 요구된다. 그리고 오락은 휴식의 중요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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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0|오락은 즐거움을 준다. 즐거움 속에서 노동의 고단함을 풀고 새로운 활력을 찾게 한다. 휴식 문화의 상당 영역을
|contsmark41|차지하는 tv가 오락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그러니 오락 프로그램이 조금 이상하다고 해서 오
|contsmark42|락성 자체가 문제라고 섣불리 진단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오락 프로그램을 저질로 만드는 것과 오락성 자체가 저
|contsmark43|질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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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6|그렇다면? 오락 프로그램은 오락성 문제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대중들의
|contsmark47|즐거움이나 선호도 또는 여가 시간의 효용적 활용이라는 기준들에 근거해서 이루어질 때 설득력을 갖는다. 그런데
|contsmark48|왜 오락 프로그램에 미학적 기준이나 도덕적 규범을 들이대면서 오락성 자체가 문제인양 매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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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오락 프로그램에 인간 정신을 고상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던가, 창조적 예술이기를 바라지 말자. 오락 프로그램은
|contsmark52|단지 대중들의 여가를 위한 오락으로 인정하라. tv는 대중을 위한 것이고 오락 역시 대중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contsmark53|미학적 기준들이나 도덕적 규범을 통해 오락 프로그램을 재단하는 것은 범주 오류(categoty mistake)를 범하는 것
|contsmark5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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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7|요즈음 한창 주가가 치솟던 한 개그맨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급격한 시청률 저하를 보이고 있다. 유사한 여러
|contsmark58|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에게는 프로그램을 준비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는 바닥난 밑천
|contsmark59|으로 프로그램들을 전전하며 반복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의 이름값으로도 시청자들의 식상함을 상
|contsmark60|쇄시키지는 못하였다. 몇몇 토크쇼 사회자가 자기 관리를 통해 한 프로그램에만 몰두하며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
|contsmark61|어 가면서 기대 이상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결과는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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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4|결론은 간단하다. 오락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제작 능력이나 시청 능력, 혹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문
|contsmark65|화 환경 때문이다. 인기만을 고려해 그 밥에 그 나물 격인 사람들을 섭외한 덕분에 프로그램의 특색을 살리지 못
|contsmark66|하는 제작진의 능력이나 자신의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여기저기 얼굴을 들이밀며 스스로 무덤을 파는 연예인들이
|contsmark67|나 그것을 보고도 별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던 시청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contsmark68|오락성을 저질이라고 한다던가 공익성 운운하며 오락 프로그램을 축소해야 한다고 떠들지 말자. 오락 프로그램이
|contsmark69|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contsmark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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