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은, 언젠가 가요사를 정리할 때 꽤 의미 있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15일 오전 1시 반 경,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같은 날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케이블 채널 Mnet에서 생방송으로 제10회 ‘MKMF’ 행사가 열렸다. 전자가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문을 닫았다면, MKMF는 그 본질이 ‘떠들썩함’인 듯했다.
‘MKMF’, 즉 ‘Mnet KM Music Festival’의 줄임말인 이 행사는, 적어도 이 땅의 10대들이 가장 열망하는 시상식이자 축제로 자리 잡았다. MKMF 10년은 한국 아이돌 역사의 궤적이다. 이날 그 자리에 참석한 가수 중 가장 연장자(?)에 속했던 이효리는 여자가수상을 수상하며, ‘올해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라고 했다. 한국 아이돌의 효시라고 불렸던 H.O.T는 ‘엠넷 10주년 기념상’을 받기도 했다. 일종의 명예요 공로상이었던 셈이다.
아이돌을 최고로 대우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하며, MKMF는 공중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과 연말 시상식이 지지부진해진 지난 몇 년 간, 명실상부하게 가장 큰 영향력을 틀어쥐게 되었다. 물론 그 배경엔 방송사 채널과 기획사를 소유하고, 시상식까지 주관하는 거대 미디어 재벌의 그림자가 걸쳐있고,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가수상’과 ‘올해의 앨범상’이 모두 다른 기획사에 주어지는 안배의 미학(?)이 당연한 듯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점은 MKMF가 공중파 3사의 연말 프로그램보다 훨씬 ‘볼거리’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이효리와 T.O.P의 퍼포먼스도 볼만했지만, 김창완과 에픽하이의 조인트 무대는 상징하는 바가 컸다. 2005년에는 전인권이 타이거JK, 다이내믹 듀오와 한 무대에 섰고, 같은 해 이민우-구준엽-장우혁의 합동 댄스 배틀도 있었다. 좀처럼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가수들이 이렇게,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은 팬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준다. 가수 한 사람씩 나와서 노래 부르고 퇴장하고, 곧이어 다른 방송사의 생방송으로 뛰어가는, 고만고만한 공중파의 연말 풍경과는 비교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정작 공중파 3사에서 대중음악의 유일무이한 ‘브랜드’가 된 장수 프로그램이 〈가요무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이돌’도 아니고 〈가요무대〉에 나갈 수도 없는 가수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은 노래라도 한 소절하려면, 개인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토크쇼에 나가서 새 앨범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김건모와 신승훈처럼, 한참 노래해야 할 나이의 가수들이 ‘원로’라며 우스개 섞인 농담을 주고받을 때 그 웃음은 더 없이 쓸쓸하다.
그 쓸쓸함의 정점은, 아무래도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퇴장이다. 가수들이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로 자신의 노래를,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관객과 교감하며 부를 수 있던 곳이 사라졌다. 춤을 추거나 모창을 하거나 굴욕을 당하지 않아도 그저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0시 15분의 편성이라는 서러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떠났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소라의 프로포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던 그 전통이 〈이하나의 페퍼민트〉까지 이어질까?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이하나가 연기자라는 이유로, 〈김정은의 초콜릿〉에 대항한 편성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려가 그저 기우로만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진행자가 바뀌고, 타이틀이 바뀌는 건 프로그램의 콘셉트 또한 바뀐다는 암시지만, 그 시간, 그 작은 무대를 관통해온 ‘진정성’만큼은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음악이, 노래가 어떤 인더스트리가 되기 전에 원래, 한 시대의 호흡이고 정서이고 문화였다는 걸 기억하는 그 무대의 정신은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