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송 따져보기] 조지영 TV평론가

지난 11월 15일은, 언젠가 가요사를 정리할 때 꽤 의미 있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15일 오전 1시 반 경,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7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같은 날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케이블 채널 Mnet에서 생방송으로 제10회 ‘MKMF’ 행사가 열렸다. 전자가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문을 닫았다면, MKMF는 그 본질이 ‘떠들썩함’인 듯했다.

‘MKMF’, 즉 ‘Mnet KM Music Festival’의 줄임말인 이 행사는, 적어도 이 땅의 10대들이 가장 열망하는 시상식이자 축제로 자리 잡았다. MKMF 10년은 한국 아이돌 역사의 궤적이다. 이날 그 자리에 참석한 가수 중 가장 연장자(?)에 속했던 이효리는 여자가수상을 수상하며, ‘올해로 가수 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라고 했다. 한국 아이돌의 효시라고 불렸던 H.O.T는 ‘엠넷 10주년 기념상’을 받기도 했다. 일종의 명예요 공로상이었던 셈이다.

▲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KBS
아이돌을 최고로 대우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하며, MKMF는 공중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과 연말 시상식이 지지부진해진 지난 몇 년 간, 명실상부하게 가장 큰 영향력을 틀어쥐게 되었다. 물론 그 배경엔 방송사 채널과 기획사를 소유하고, 시상식까지 주관하는 거대 미디어 재벌의 그림자가 걸쳐있고,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가수상’과 ‘올해의 앨범상’이 모두 다른 기획사에 주어지는 안배의 미학(?)이 당연한 듯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점은 MKMF가 공중파 3사의 연말 프로그램보다 훨씬 ‘볼거리’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이효리와 T.O.P의 퍼포먼스도 볼만했지만, 김창완과 에픽하이의 조인트 무대는 상징하는 바가 컸다. 2005년에는 전인권이 타이거JK, 다이내믹 듀오와 한 무대에 섰고, 같은 해 이민우-구준엽-장우혁의 합동 댄스 배틀도 있었다. 좀처럼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가수들이 이렇게,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은 팬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준다. 가수 한 사람씩 나와서 노래 부르고 퇴장하고, 곧이어 다른 방송사의 생방송으로 뛰어가는, 고만고만한 공중파의 연말 풍경과는 비교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정작 공중파 3사에서 대중음악의 유일무이한 ‘브랜드’가 된 장수 프로그램이 〈가요무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이돌’도 아니고 〈가요무대〉에 나갈 수도 없는 가수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은 노래라도 한 소절하려면, 개인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토크쇼에 나가서 새 앨범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김건모와 신승훈처럼, 한참 노래해야 할 나이의 가수들이 ‘원로’라며 우스개 섞인 농담을 주고받을 때 그 웃음은 더 없이 쓸쓸하다.

그 쓸쓸함의 정점은, 아무래도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퇴장이다. 가수들이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로 자신의 노래를,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관객과 교감하며 부를 수 있던 곳이 사라졌다. 춤을 추거나 모창을 하거나 굴욕을 당하지 않아도 그저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0시 15분의 편성이라는 서러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떠났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소라의 프로포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던 그 전통이 〈이하나의 페퍼민트〉까지 이어질까?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이하나가 연기자라는 이유로, 〈김정은의 초콜릿〉에 대항한 편성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려가 그저 기우로만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진행자가 바뀌고, 타이틀이 바뀌는 건 프로그램의 콘셉트 또한 바뀐다는 암시지만, 그 시간, 그 작은 무대를 관통해온 ‘진정성’만큼은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음악이, 노래가 어떤 인더스트리가 되기 전에 원래, 한 시대의 호흡이고 정서이고 문화였다는 걸 기억하는 그 무대의 정신은 지속되기를.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