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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이정호 대중문화평론가

▲ SBS <압록강은 흐른다> ⓒSBS
SBS의 3부작 창사 특집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는 수필가 전혜린과 정규화 전 성신여대 교수와 죽은 이미륵(본명 이의경)이 만들었다. 더 정확히는 뮌헨대학이 만들었다. 세 사람 다 시대는 다르지만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 먼저 이미륵이 1928년 뮌헨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전혜린은 1959년 이 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 마지막으로 정규화 교수는 60-70년대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 세 사람 모두 뮌헨대학으로 묶인 동시에 출생지가 북한이란 공통점으로도 묶여 있다. 이미륵이 황해도 해주, 전혜린이 평안남도 순천, 정규화가 함경남도 영흥이다.

이미륵은 1899년에 태어나 1920년 독일로 가 평생 돌아오지 못하고 1950년 그곳에 묻혔다. 전혜린은 1959년 뮌헨에서 이미륵을 발굴해 그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한국에 소개했다. 정규화는 속편격인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와 이미륵의 유고작 <무던이>까지 한글로 소개했다.

▲ 이미륵
이미륵은 1928년 학위 이후 50년 사망때까지 20여년의 짧은 세월동안 발표작만 40여편에 이르고, 유작도 50여편에 달한다. 의학에서 동물학으로, 다시 철학과 문학으로 이어지는 이미륵의 작품은 2차 대전 후 독일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미문(美文)이라 독일인들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처럼 아낀다. 이미륵은 죽은 뒤에도 BBC 등 유럽 방송들에 등장했다.

뒤늦게 KBS에서 다큐를 만들었지만, 소개한 정도에 그쳤다. 이번의 SBS 드라마는 농밀한 연출이 좋았다. 전편을 흐르는 임형주의 음악은 식민지 지식인의 슬픔을 그대로 담았다. 드라마는 바이마르시대 독일 지식인 대부분이 1933년 들어선 나치 정권을 피해 유럽과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돌아갈 곳조차 없었던 이미륵의 쓸쓸한 삶을 잘 녹여냈다.

드라마는 한 발 더 나가 이미륵의 독립운동을 그린다. 이미륵의 국내 독립운동은 1919년 경성의전 시절 3.1운동 가담과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향행과 이어 상해 임시정부에서 1년까지다. 드라마는 상해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 안본근과의 생활도 그린다.

그러나 이미륵은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이 부분을 “4명의 한국 학생이 중국에 와 있었다. 프랑스 가서 공부하려고 반 년 이상이나 무료하게 증명서를 기다렸다. 매일 밤 몰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장기를 두고, 몸을 녹이려고 술을 마셨다”고 서술했다. 독립운동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문장들이다.

수필가 전혜린은 뮌헨대 유학시절 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영화 <쇼피 숄의 마지막 날들>(마크 로테문트 감독, 117분)
“뮌헨대학엔 세 개의 광장이 있다. 후버 교수 광장이 앞 광장이고, 솔 남매 광장이 뒤쪽 광장이다. 또 하나는 ‘국민 사회주의 희생자 광장’이다. 세 광장은 히틀러의 나치주의에 대항한 진정한 인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들이다. 2차 대전 중 반나치 비밀지하조직 <백장미>란 저항단체가 있었다. 1943년 2월17일 뮌헨대 학생이던 한스 숄과 그의 누이 소피 숄 남매는 대담하게도 게쉬타포 교수와 게쉬타포 학생들이 들끓는 이 학교 뜨락에서 백장미의 반나치 유인물을 뿌렸다. 결국 두 남매는 즉결재판에 회부돼 6일 뒤 2월 22일 처형됐다. 당시 뮌헨대 총장이던 후버 교수도 함께 처형됐다.”

숄 자매와 후버 교수의 얘기는 2006년 <쇼피 숄의 마지막 날들>(마크 로테문트 감독, 117분)이란 영화로도 나왔다. 드라마는 이미륵과 후버 교수를 연결해 이미륵의 반나치 활동까지 덧붙인다. 드라마를 만든 이종한 PD는 후버 교수의 딸을 만나 당시 이미륵과 후버가 매일 만나 밤새워 얘기를 나눴고 뮌헨대 백장미 기념관의 팸플릿에 후버 교수를 소개 글을 이미륵이 썼다는 사실을 취재했다.

뮌헨대의 세 광장 이야기를 썼던 전혜린의 아버지 전봉덕은 일제때 거물급 조선인 경찰이었다. 해방 당시 조선인 경찰 가운데 고위직인 경시(지금의 총경) 이상으로 확인된 자는 모두 8명인데 그 중 한 명이다. 1943년 전혜린이 열 살때 전봉덕은 평안남도 의주경찰서 보안과장이었다. 일제때 의주경찰서는 압록강을 넘는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독일의 히틀러는 2차 대전 내내 동맹군이었다.

황해도 만석군 아들 이미륵의 반나치 활동은 엄청난 변화다. 그렇다면 더 치밀한 고증이 필요했다. 유작 <무던이>에서 보인 이미륵의 따뜻한 연민에서도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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