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비평]TV가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
상태바
[방송비평]TV가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
  • 승인 2000.06.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관음 예찬
|contsmark1|
|contsmark2|
|contsmark3|"영화는 관음적인 성적 욕망에 의해 탄생했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의도에서 출발했건 또 어느 학자의 궤변에 불과
|contsmark4|하건, 영화라는 것은 이미 문화를 이끌어오는 하나의 힘이 된 지 오래기 때문에 우리는 "관음(觀音)"의 긍정적인 기
|contsmark5|능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관음적 엿보기의 도구"라는 선글라스 역시 정말 필요에 의해서건 단순한 멋내기의 일환
|contsmark6|이건, 어쨌든 편리한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관음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욕망
|contsmark7|이다. 표출 방식의 차이일 뿐,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contsmark8|tv 역시 일종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도구다. 시청자는 가장 편한 자세로 tv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고, tv
|contsmark9|속 인물들은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지 모르는 채 자신의 모든 행동을 노출시킨다. 따라서 tv
|contsmark10|제작자들은 최대한 이 "관음적인 시청자"들을 배려해야만 한다. 관음이라는 것을 반드시 성적인 것과 연결짓는다면
|contsmark11|이런 식의 논의 자체가 성인 방송에나 필요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형태의 다양한 소재로 "관음적
|contsmark12|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만나고 있다.
|contsmark13|
|contsmark14|
|contsmark15|tv 훔쳐보기
|contsmark16|
|contsmark17|
|contsmark18|일단 이 엿보기 프로그램이 전세계적인 유행이라고 하니, 괜히 "우리 나라 방송이란…" 식으로 무조건적인 색안경
|contsmark19|을 낄 필요는 없겠다. 보편적 유행이라는 것은 그 평가야 어떻게 모아지건 대부분 그 발단 자체에 대해 고민하기
|contsmark20|시작할 때는 이미 그 논의의 시기가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소모적인 말다툼을 하는 동안 그 보편적 유행은 새로운
|contsmark21|변이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논쟁자들이 바라는 바람직한 결말과는 오히려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tv 역시 마찬
|contsmark22|가지다. 기본적인 방송의 도덕성에 심각한 방해물이 되지만 않는다면 각 오락 프로그램마다 엿보기 코너로 도배를
|contsmark23|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문제는 그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관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바빠서 정말 보
|contsmark24|여주고 싶었던 바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이며, 그런 프로그램을 즐기던 시청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contsmark25|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평소 원하지 않던 종류의 관음증 소유자로 유도당하고 있지 않은
|contsmark26|가 하는 것이다.
|contsmark27|꽤 많은 인기를 모았던 "god의 육아일기" 코너를 보자. 미처 몰랐던 육아(?) 과정 등과 같은 모범적인 순기능은
|contsmark28|물론, 잘 생기고 매력적인 젊은 남자 연예인의 몸매, 식사하는 모습, 그들의 집이 정확히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
|contsmark29|가 등의 꽤 짭짤한 볼거리가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욕구는 그 강도를 더해서
|contsmark30|다섯 남자들이 수영복 입고 물장구치는 모습, 윗통을 벗은 채 잠든 모습 등을 은연중에 바라게 된다. 그러면서도
|contsmark31|"귀여운 아기 키우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을 뿐, 결단코 나는 그들이 잠자는 모습이나 수영복이 벗겨진 채 물 속
|contsmark32|에서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이미 그들의 시선은 tv 모니터에 고정되어
|contsmark33|있는데 말이다.
|contsmark34|"문차일드의 정글스토리"라는 코너에서는 어리기만 한 가수들이 단지 새끼 사자나 어린 원숭이를 돌보는 차원을 넘
|contsmark35|어서 사자의 이빨 수술까지 보조로 참여시킨다. 어느 누구도 사색이 된 "문차일드"의 애처로운 표정을 요구하지 않
|contsmark36|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런 화면을 즐기는 법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어떤 종류의 엿보기 프로그램이 등장해도 놀랍
|contsmark37|지 않다. 끝도 없는 재미에 가려진 역기능이라는 것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숨겨진 관음증에 박차를
|contsmark38|가하며 다가오고 있다. tv가 시청자들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는 것도 좋고 의사 소통이 가능한 쌍방향도 좋지만,
|contsmark39|이제는 tv가 시청자들을 몰래 엿보고 있으니 큰일이다. tv의 관음증에 시청자들이 노출당하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40|
|contsmark41|
|contsmark42|tv의 시청자 훔쳐보기
|contsmark43|
|contsmark44|
|contsmark45|tv는 시청자들의 감정까지 엿본다. "북한청년 동일섭" 코너의 경우, 동일섭이 남북 정상회담 뉴스를 주시하는 장면
|contsmark46|이 나온다. 어김없이 "가슴이 벅찬", 내지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듯" 등의 자막이 등장한다. 물론 많은 생각을 하
|contsmark47|기도 했겠지만 얼굴을 클로즈업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의 표정에서 그렇게 벅차 오르는 감동을 읽어내기는 힘들
|contsmark48|었는데도 말이다. 시청자들은 화면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tv 자막의 안내에 따라 "그는 정말 가슴이 벅차
|contsmark49|다"고 받아들인다. "남북해빙무드를 오락 프로그램으로 이어갔으면"하는 pd의 바람이 노골적으로 전달되는 부분이
|contsmark50|다.
|contsmark51|자신이 정말 저런 화면들을 필요로 해왔던 것인지 리모콘만 들면 늘 접하게 되는 tv 프로그램으로 인해 저런 취
|contsmark52|향을 갖도록 길들여진 것인지 혼동이 된다면, 껍데기만 남은 관음증을 진실로 받아들이다가 제대로 된 엿보기의
|contsmark53|재미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물론 시청자들의 욕구를 필요 이상으로 앞질러가며 온갖 형태
|contsmark54|의 관음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제작진이 일차적으로 좀 더 시청자들의 의식세계까지 배려해줘야 하는 것은 당
|contsmark55|연하다. 그러나 제작진들의 끝도 없는 가속도에 휘말려 자기 것이 아닌 관음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contsmark56|대해서도 우린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진정으로 tv와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tv의 엿보기를 막아내
|contsmark57|기는 점점 힘들어진다.|contsmark5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