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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방송 다시보기(6)]

70년대 중반 방송 3사의 드라마 시청률 쟁탈전 속에서도 방송 본연의 가치와 방송인들의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TBC의 <부부>와 KBS의 <KBS무대>, MBC의 <수사반장>을 들 수 있다.

77년 8월 <수사반장>은 당시 큰 물의를 일으킨 카바레 춤바람 사건을 다루었다. 바람난 유부녀와 나이 어린 정부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수사반장에 나오는 수사관들은 구수한 연기로 사랑받았다. 김상순, 최불암, 조경환, 남성훈이 그랬다. 그러나 구수한 인간성에 떠밀려 논리적 수사는 늘 뒷전이었다. 당시 실제 수사에서 유행했던 고문수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진 못했지만 탐문수사라는 이름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집에 마구 들어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선 일상의 모습이었다.

▲ MBC <수사반장>
비슷한 시기 <부부>도 카바레 사건을 다루었다. 춤바람 나 이혼당한 여자가 후회의 눈물을 삼키는 데서 시작해, 그 여인이 자포자기로 만신창이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아내에게 원인을 제공한 남편의 불신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KBS무대>는 <TV문학관>이나 MBC의 <베스트셀러극장>과 같이 드라마 작가나 PD의 입문 창구였다. 그렇다보니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이런 실험적 무대를 통과해 유명한 배우가 된 이도 많다. 지금은 거물급 배우로 성장한 김혜수도 MBC의 <베스트셀러극장> 같은 단막극 출신이다. 도회풍의 신인 여배우가 시골 아줌마 역을 맡아 억지로 연습한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설픈 연기력이 자주 발견되는 흠이긴 했지만 <KBS 무대>같은 실험극은 배우들의 입문 공간이었다.

90년대 들어 방송사 스스로 이런 실험무대를 없앴다. <베스트셀러극장>은 <베스트극장>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았다가 지난해 3월 664화 드리머즈(The Dreamers)를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이후 연예계 권력구조는 급속히 배우 쪽으로 저울 추가 기울었다. 드라마 한 편 출연에 몇 억 원씩 받는 기형적 제작구조는 방송사 스스로 자초했다. 한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의 양극화도 심해졌다. 최근 방송 3사가 이런 기형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그 해결책이 단순히 재정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는 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아 아쉽다.

▲ 이정호 대중문화평론가

‘드라마의 위기’는 콘텐츠의 위기다. 모든 드라마가 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시청자의 비판 앞에 자신을 과감히 드러냈던 30년 전 단막극 시대로 돌아가 다양한 실험 속에서 작가와 연출, 배우들의 실력을 키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탄탄한 콘텐츠 생산과 재생산, 확대재생산 구조만 있다면 드라마의 위기는 치유할 수 있다. 단말기 1500만 가입자 시대에도 여전히 ‘지상파 DMB 위기’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게 콘텐츠의 빈곤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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