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언론법안 처리를 위해 의원들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린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6일부터 언론법안 저지를 위한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언론노조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26일 오전 6시부터 언론법안 관련 보도를 제외한 일체의 보도·제작을 거부하고 방송사 주조정실과 송신소 근무자들은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는 파업 지침을 발표했다.
26일로 예고된 전국언론노조의 총파업은 민영화의 주 표적이 되고 있는 MBC를 필두로 방송사 위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MBC 노조는 ‘선언적 파업’이 아니라 이날 아침 6시부터 조합원들이 업무에 참여하지 않는 ‘전면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오후에는 19개 지역·지부 조합원이 상경투쟁을 벌인다. 노조는 이날 집회에 기자·PD·아나운서 등 2000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예능프로그램 PD들의 참여율이 높아 <무한도전> 등 인기 프로그램의 결방도 예상된다. 파업이 다음 주까지 이어질 경우 사전 제작 프로그램의 소진에 따라 결방되는 프로그램이 속출할 가능성도 있다.
민영방송인 SBS가 개국 이래 처음 파업에 참여하는 것도 주목된다. SBS 노조는 방송 송출 인력 등을 뺀 나머지 조합원은 전면파업에 돌입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그러나 사 쪽이 ‘불법 파업’이라며 경고해 실제로 파업 참여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심석태 노조위원장은 “YTN ‘블랙투쟁’에 동참할 때 보여준 진정성이 파업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YTN 노조도 이날 파업지침을 통해 우선 여권이 추진하는 언론악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투쟁’에 나선 뒤 상황에 따라 전면파업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KBS의 경우 현 집행부는 파업 참여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새달 1일 출범하는 새 노조의 일부 집행부가 파업에 찬성하고 있어 상황이 유동적이다.
지역신문들도 이날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예산 삭감 등을 규탄하며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사퇴와 신문법 개정안의 철회를 촉구하는 사장단 성명서를 공동 게재하는 등 ‘지면 파업’에 돌입했다. ‘국민주권과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언론인 시국선언’ 대표자회의는 언론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국민대토론회 개최와 함께 언론법안 강행 저지를 위한 비상시국회의 결성을 제의했다.
한나라당은 언론노조의 파업 방침에도 불구하고 26일 이후 강행 처리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토·일요일도 대기해 주셨으면 한다”며 ‘대기령’을 내렸다.
‘최시중의 방통위’ 무소불위 권력기관 만들기
정부·여당의 언론법안은 방송사에 대한 징계권 등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방통위를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통해 방송·통신사를 장악·통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정권에 우호적인 보수신문들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에 따른 여론의 다양성 훼손과 함께 법안에 숨어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란 게 야당과 방송 전문가들의 주장이라며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방통위가 방송심의 규정과 협찬 고지를 위반할 경우 방송사에 건당 50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신설했다. 기존 처벌 규정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 방송편성 책임자 등에 대한 징계·주의 또는 경고에 이어 경영에 압박을 주는 과징금이 추가된 것이다. 이 경우 선정성과 상업성이 과도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실효적 개선 효과가 있다는 긍정론도 있다.
그러나 단서 조항을 두지 않아 방통위가 친여 성향의 심의위원이 다수인 방송통신심의위의 결정을 받아 정권비판 프로그램에 대해 징계를 남발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상지대 김경환 교수(언론학)는 “이 조항은 편파적인 현행 심의구조에서 정권이 과징금을 무기로 MBC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없애고 방송사를 길들이는 데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정부가 내놓은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안’은 방통위가 방송·통신사로부터 걷어들이는 각종 기금을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통합 운용·분배토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종전에는 민간위원이 참여한 방통위 기금관리위원회 등이 관리를 맡아왔다. 이에 대해 방송전문가들은 “최시중 독주체제의 방통위가 뉴라이트, 공정방송시민연대 같은 입맛에 맞는 세력과 단체만을 골라 기금을 지원해주기 위한 의도가 짙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통위설치법 개정안도 문제다. 이 법안은 방통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방통위에 사무국과 사무총장직을 신설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무총장을 방통위원장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데다, 방송·통신 직렬 외의 공무원까지 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해 ‘청와대 낙하산’을 심기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방통위원장이 막대한 기금을 손에 쥔 채 대통령이나 자신의 측근인사를 통해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방통위 조직을 이중, 삼중으로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은 방통위와 방통심의위가 그간 법에 명시된 정치적 독립성·중립성 준수의무를 어기며 편파 논란을 자초했는데도 직무와 심의 편파성을 개선하려는 조항을 법안에 전혀 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나라 ‘공영방송법’도 추진 논란
한나라당이 공영방송 예·결산 심사권의 국회 이관, ‘MBC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한 ‘공영방송법(제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4일 알려지면서 여권의 ‘방송·언론 장악’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언론계 등에서 의혹을 제기해 온 대기업과 일부 거대 신문의 ‘방송 소유’ 길 터주기와 방송·언론계 재편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한나라당 미디어특위(위원장 정병국)는 지난 22일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공영방송법’ 제정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공영방송법은 지난 17대 국회 당시 야당 한나라당이 추진하다 폐기된 ‘국가기간방송법’을 모태로 하고 있다.
핵심 내용은 크게 3가지다. 우선 공영방송의 예·결산 심의권을 국회가 맡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공영방송인 KBS의 경우 국회는 결산심의만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국회가 예산권까지 갖게 될 경우 실질적으로 KBS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특위 내에서도 아직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공영방송 수신료를 인상하되, 광고수입을 전체 재원의 20%로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재원의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하는 MBC로서는 공영이냐, 민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공영방송 경영위원회’를 신설, 공영방송 사장추천 권한을 주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언론·시민단체들에선 여권의 “공영방송에 대한 예산 통제” “MBC 민영화 의도”라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연말 ‘강행처리’ 법안으로 선정한 ‘방송법(신문·방송 겸영허용)’이 신문사·재벌의 지상파 방송 소유를 위한 ‘준비’ 차원이라면, 공영방송법은 사실상 MBC란 ‘매물’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작업이란 지적이다. 또 수신료 인상의 반대 급부로 KBS 등에 대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를 빌미로 ‘방송계 인적 물갈이’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
그러나 <중앙일보>는 한나라당의 ‘공영방송법’ 추진은 공익과 산업의 조화란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옹호했다. 그 핵심은 ‘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로 요약된다고도 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24일 “정부· 여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한국의 BBC’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며 “일반 미디어 법안은 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되 공영방송법은 중립성과 공익성을 최고 가치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KBS 재원 중 광고 비중은 47.3%, 수신료 비중은 38.3%(2007년 기준)다. EBS도 재원(2007년 현재 1800억원)의 75%를 광고나 학습교재· 영상물 판매로 충당하고 있다. 공영이라 자처하는 MBC는 100% 가까이를 광고에 의존한다. 반면 공영방송의 교과서라 불리는 영국 BBC의 수신료 비중은 99%, 일본 NHK는 97% 수준이다.
그 때문에 공영이란 기치를 내걸고 실제 내용에선 민영과 같이 운영되고 있는 ‘광고 과잉’이란 기형적 구조를 바로잡자는 게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공영방송법의 기본 취지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문제로 지적돼 온 사안들을 고쳐야 진정한 공영방송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중앙일보>는 KBS가 EBS와 수신료를 배분함에도 불구하고, KBS가 받는 수신료가 NHK 수신료의 1/6인 2500원이라는 사실은 빼놓았다. 또한 NHK가 예산 통제권을 가짐으로써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은 전혀 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외면함으로써 법안을 옹호했다. <중앙>의 말 대로 하자면 거칠게 표현해 EBS를 제외하고도 KBS는 현재 여권에서 거론되는 수신료 적정선인 5000~6000원을 훨씬 넘어서는 NHK의 6배 1만 5000원을 수신료로 걷어야 한다. 광고폐지를 이유로 민영화를 부추기는 <중앙>의 속내다.
공영방송법안이 최종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큰 틀은 완성돼 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우선 공영방송의 광고 비중이 20%를 넘지 못하게 할 계획이다.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을 양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입법안은 특히 이사회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토록 돼 있는 공영방송(현재 KBS) 사장 선임권을 공영방송경영위원회(공방위)에 넘기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미디어 특위 관계자는 “낙하산 사장 논란으로 사회적 갈등을 겪는 일을 없애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권호영 박사는 “외국과 달리 우린 방송법에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정확한 구분조차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공·민영을 분리하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신문·대기업 방송진출, 국민 63% “반대”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신문사와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PD연합회·한국기자협회·미디어오늘이 한길리서치에 의뢰, 지난 18일부터 3일간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다. 조사에서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사를 소유하고 방송 뉴스까지 하도록 허용하는 데 대해 62.4%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21.6%에 그쳤다. ‘
신문사의 지상파 방송사 소유 등에 대한 찬반비율도 엇비슷했다. 63.1%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18.4%에 불과했다. ‘특정신문의 영향력이 커져 다양한 여론형성이 어려워질 것’(40.2%)이라는 응답과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이 사라져 뉴스의 공정성이 약해질 것’(39.2%)이라는 답이 반대의 주요이유였다.
“경제 살리기” - 조사 · 연구 없어 졸속입법
한나라당과 신문시장 과점신문들은 언론법안이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조·중·동 살리기’ 법안의 강행 처리를 위한 여론 호도임을 알 수 있다.
<경향신문>은 한나라당은 ‘글로벌 미디어그룹’이 경제 활성화의 보증수표인 양 외치지만 실제 어떤 경제유발 효과가 생기는지에 대해선 조사 연구 결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졸속·부실 입법의 또 다른 징표라고 비판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속한 법안처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내외 경제상황 등을 감안할 때 비현실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24일 “미디어산업이 발전하는 데 필요한 국내 광고시장 확대나 유료방송의 시청료 인상 등은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서 기대하기 어렵다”며 “경기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 미디어산업 관련 법안이 필요하면 그때 가서 논의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최근 23개 방송과 LA타임스 등 12개 신문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트리뷴이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대규모 인원 감축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거대 미디어그룹들에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는 것은 시사적이다. 거대 자본이 마음껏 언론시장에 뛰어들게 하고 인수·합병 관련 각종 규제와 제도를 철폐, 미디어그룹간의 과잉 사업확장 경쟁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연쇄 도산’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소수 지배의 공룡 미디어그룹을 지원하기보다 다양한 풀뿌리 언론들이 차별화된 창구들을 통해 뉴스를 유통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올바른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립적 학회에 연구 의뢰해서 MBC 편파성 여부 조사해 보자”
<중앙일보>는 공정언론시민연대(이하 공언련)가 MBC 뉴스데스크가 23일 방송에서 보도의 편파성을 지적한 공언련 조사 결과를 반박한 데 대해 “그렇다면 중립적인 학회에 연구를 의뢰, 편파성 여부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보자”고 24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공언련은 22일 MBC가 2002년 병풍 사건, 2004년 대통령 탄핵, 2007년 BBK 사건, 올해 광우병 사태 등 4대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일관된 편파성을 보였다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에 MBC는 23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탄핵안 통과한 날 증시 폭락 소식을 다룬 뉴스, 교수들이 탄핵 철회 성명을 발표했다는 보도, 가치 판단이 아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보도지만 편파 방송으로 분류했다”며 반박했다. 또 한나라당 추천 방송위원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며 공언련의 인적 구성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최홍재 공언련 사무처장은 “사실보도라 하더라도 특정 입장이나 사람에게 유·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만 계속 내보낸다면 편파보도가 되는 것”이라며 “MBC가 공공 자산인 전파를 이용, 자신들의 편파성을 또다시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