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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재기]

|contsmark0|르완다에는 개가 없다. 94년 대학살 뒤 개 소탕령이 내려졌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주검들로 배를 채운 개들이 산 사람까지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개에게 사체수습을 빼앗길 만큼 학살은 끔찍했다. 후투 민병대는 100일 동안 100만명의 투치와 온건후투를 살해했다. 그 대상에는 이웃은 물론, 아내와 아들, 딸도 포함됐다. 주민의 90%가 하나님을 믿는 독실한 크리스챤 국가였지만 그들은 tv와 라디오까지 동원해 대학살을 선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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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투치의 승리로 학살과 내전이 끝난 지 6년. 난민촌은 모두 사라졌고, 수도 키갈리 시내에는 비디오숍, 디스코텍, 인터넷 카페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외국을 떠도는 사람이 100만명, "거리의 아이들"(인터뷰를 한 뒤 빵을 준 것을 후회. 눈앞에서 수십명에게 뭇매를 맞고 빼앗겼다)과 30만 소년소녀 가장이 굶주림과 싸우고 있었다. 후투전범을 처리하는 일도 부담스런 과제다. 법조인 90%가 학살돼 15만 재소자 가운데 법정에 선 사람은 2%에도 못미친다. 르완다에서는 분홍색 옷을 입은 무리를 자주 보게 되는데 이들이 후투전범들이다. 보통은 죄수 50여명에 어린이 혹은 여자간수 하나. 일반 주거지로 노역을 나와서는 슬쩍 술도 마시고 심지어 아이까지 만들고(?) 간다. 정부가 "가챠챠"라는 인민재판을 도입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르완다 시민 열 중 아홉은 "용서"와 "화해" 대신 "정의"를 주장한다(한국의 5·18이 줄곧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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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4월7일 학살추모일. 벨기에 총리가 방문해 르완다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내 조국의 이름으로 용서를 빈다." 학살 당시 유엔 평화유지군이었던 벨기에의 공식사과였다. 르완다 종족분쟁은 20세기 초에 시작된 벨기에 식민통치의 결과이다. 코 높이와 키, 얼굴 모양 등으로 종족을 구별하고 소수 투치가 다수 후투를 지배하게 했다. 50년대 아프리카에 독립운동의 바람이 불자 벨기에는 후투를 선택했다. 종족분열을 이용한 간접지배가 원수지간을 만든 것이다. 프랑스도 94년 내전에 한몫을 했다. 군사고문단을 보내 후투를 도왔는가 하면 600만불의 무기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게다가 un은 94년 평화유지군의 보고서를 무시해 학살을 방치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또다시 르완다를 외면하고 있다. 콩고내전의 불똥이 언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르완다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분명 국제사회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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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남아공 케이프타운의 공원벤취. 한 남자가 4절지 크기의 종이를 들고 있다. "아내와 아이를 먹여살려야 합니다. 일자리를 부탁해요." 홈리스의 주인공은 백인. 흑인정권의 고용평등법으로 직장에서 밀려난 실직자였다. 그러나 과연 진실은?
|contsmark10|4월27일은 인종차별 철폐를 기념하는 "freedom day". 프레토리아 대통령궁 앞 잔디밭에서 흑인들이 축하행사를 벌이고 있다. 같은 시각 "남아공 개척사관"에는 백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대통령궁 앞에서 어렵게 찾은 백인과의 인터뷰. "글쎄, 자유의 날이라고 하는데, 누가 자유를 막았나요?" 흑인의 얘기. "우리에겐 아직 자유가 없어요. 일자리도 집도 먹을 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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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진실은 이랬다. 아파르트헤이트(정치)는 없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경제)는 있다. 백인 기업가들은 요하네스버그 대신 런던 주식시장에 상장을 한다. 실업률이 35%로 뛰어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흑인 가장은 하루 35랜드(7000원)의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는가 하면 백인 청년은 월 5000랜드(100만원)의 직장이 싫어 해외로 떠난다. 흑인과 백인 거주지는 철도와 고속도로로 나뉘어 있고, 거리를 걷는 사람 99%는 흑인(차가 없기 때문)이다. 주거분리를 위해 대중교통을 억제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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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치안(흑인경찰의 40%가 운전면허증 미소지. 하이제킹 전담부서에 컴퓨터가 지난해 보급. 2006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남아공은 독일에게 졌다. 스포츠 정치가 치안문제를 이용했다.)과 흑인정부의 무능, 부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에이즈도 무시못할 일이다(케이프타운 시청에 걸린 대형현수막은 다름 아닌 콘돔광고. 에이즈 때문에 흑인이 줄어들면 백인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 이 모든 일들이 백인의 도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교육과 경제적 부를 나누는 일에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남아공의 진정한 흑백화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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