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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도 PD의 온에어오프에어]

▲ 윤성도 KBS PD
파면과 해임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양승동 PD,김현석,성재호 기자에 대한 재심청구가 29일 열렸다. 역시 예측대로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는 정직 4개월, 성재호 기자는 정직 1개월로 경감됐고, 나머지 5명에 대해서도 감봉 등으로 처벌의 수위가 낮아졌다.

지난 1월 16일 파면소식이 전해진 후 12일 만에 사태는 일단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여느 때처럼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아닌 것이었지만, 이번의 싸움은 평가를 하자면 승리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것으로 본다.

지금 순간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다. 오늘 특별인사위원회가 끝나고 재심위원으로 참가했던 모 본부장 하나가 엘리베이터를 타며 “어차피 이렇게 될 거를..”하며 한숨을 쉬었다고도 하는데, 사측이 과연 처음에 왜 파면과 해임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사원행동의 수괴들을 박멸하기 위해서? 아님 나중에 좀 깍아줄 생각을 하고 일단 세게 질러 기선제압을 하자는 의미에서? 노조와 기자,PD의 노노갈등을 유발해 2월 공영방송법 국면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서?

수만 수천 가지의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상황은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기자와 PD들이 이번 싸움에서 굴하지 않고 싸워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들이 단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이틀간의 대휴투쟁때 이번 사태를 다루기로 한 '미디어비평'이 결국 결방이 됨으로서 기자들의 열기는 더욱 높아졌고, 기자동료들의 이런 헌신적인 투쟁은 12일간의 싸움동안 PD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힘이 되었다. 아마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지난 15일 KBS로부터 '파면' 징계를 받은 김현석 기자, 양승동 PD와 '해임' 징계를 받은 성재호 기자가 29일 오후 집회에서 '동지가'를 부르고 있다. ⓒPD저널
사실 노조도 동참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기한 제작거부를 들어간다는 것은 방패없이 싸움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싸움이 이길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것은 방송의 두 축인 기자와 PD들이 흔들림없이 같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이 두 집단이 분열돼있었다면 사측은 훨씬 더 쉽게 이 국면을 끌고나갈 수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KBS의 구성원들이 미약하나마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KBS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수모를 겪고 새 정부의 ‘이념을 구현하는’ 방송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KBS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절대 간부가 돼서는 안될 사람들이 반정연주 전선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등용이 돼도, ‘게이트키핑’이란 명목으로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들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잃어가도, 그래서 KBS가 신뢰도와 공정성 조사에서 타 방송에 밀려나는 상황이 돼도 “이래서는 안 돼!” 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묻히기 마련이었다. 체념과 순종만이 이로운 덕목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비록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그 열의가 모여 국민의 방송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더 빠르게 행동하고, 더 깊게 생각할 줄 아는 후배들의 눈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길이 멀다고 가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죽기만 하란 법이 어디 있다더냐. 오늘은 푹 좀 자야겠다.

※ 이 글은 윤성도 PD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윤성도 PD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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