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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세계의 명화 <와일드 차일드(L'Enfant sauvage)> / 31일 오후 11시 35분

감독 :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 장 피에르 카골, 프랑수아 트뤼포, 프랑수아 세이그너, 클로드 밀러
제작 : 프랑스 / 1970년, 방송길이 : 84분, 나이등급 : 12세

▲ <와일드 차일드> ⓒEBS

줄거리
1798년, 시골 숲에서 열매를 줍던 한 농부가 짐승도 아닌 이상한 생물체에 깜짝 놀라 달아난다. 그것은 야생으로 자란 아이였던 것. 당연히 언어도 모르는 그 아이는 네 발로 걸어 생활하고 있었다. 이내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생포하려 하는데, 달아난 아이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사람들은 연기를 피워 끝내 생포하고야 만다. 생포된 아이는 조사를 위해 닥터 장 이타르(프랑수아 트뤼포)에게 보내지는데 그는 아이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보려고 다짐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보게도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못 하고 잠을 잘 때는 침대 옆에 내려와 바닥에서 자면서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것은 물론 비가 오면 밖에 나가서 생활한다. 그래도 장은 포기하지 않은 채 연구 결과를 써가며 머리도 잘라 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새로 옷도 입힌다. 식사예절부터 알파벳은 물론 악기 연주까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르친다. 그렇게 직립보행을 하면서 낮에 생활하던 아이가 밤만 되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장의 연구는 계속된다. 아이에게 ‘빅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럴수록 정상적인 아이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몰두한다.

주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와일드 차일드>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독특한 부류에 속한다. 정치, 사회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피아니스트를 쏴라>나 <비련의 신부>처럼 장르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도 아니다. 오직 박사와 아이, 두 사람의 이야기로만 펼쳐 간다.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극히 관찰자적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한다. 아이가 어떻게 변해가고 적응해 가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제도와 교육이라는 보다 심화된 주제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감상 포인트
일단 야생의 아이가 빅터로 변해가는 과정 자체가 충분한 볼거리다. 매번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고 성장하는지 지켜보고, 얼마만큼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지 유추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어울리지 않는 정상적인 복장을 하고서 알파벳을 배우고 톱질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건 특이한 경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모습이다.

실제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자신의 경험이 투영돼 있는지, 그는 끝까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또한 트뤼포의 열렬한 팬이었던 스필버그는 <와일드 차일드>를 보고서 <미지와의 조우>에 그를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 <미지와의 조우>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고압적인 관료들 사이에서 인자하고 낙천적인 프랑스인 과학자였는데, 따지고 보면 그 캐릭터가 <와일드 차일드>의 이타르 박사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감독
193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무관심한 부모로 인해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에게 새로운 삶을 접하게 해준 것은 극장이란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는 극장을 자신의 안식처 삼아 엄청난 영화광이 돼 갔다. 그 뒤 소년원과 군대 감방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도움으로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동인이 됐다.

앙드레 바쟁과 만나기 전, 짝사랑하던 여성이 다른 남자와 사귀는 것을 보고 홧김에 인도차이나 전선에 자원입대했다가 3일 만에 탈영한 일도 있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 영화를 사정없이 비판하는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선언문으로 작가주의 노선의 도화선을 당기기도 했다. 앙리 랑글루아가 창설한 시네마떼끄에서 만난 장 뤽 고다르와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등과 함께 평론과 단편영화들을 만들던 트뤼포는 드디어 <400번의 구타>(1959)로 정식 데뷔한다.

이후 그는 누벨바그 세대가 열광했던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 장르를 차용한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낭만적 삼각관계 이야기 <쥘 앤 짐>(1962), <부드러운 살결>(1964), <화씨 451>(1966) 등을 발표하며 장 뤽 고다르와 함께 누벨 바그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에도 여성의 신비로운 존재감과 연애감정을 다룬 영화와 기존 장르어법을 비트는 영화와 앙투안 드와넬이 나오는 성장영화를 찍었다. 트뤼포의 영화에서 드와넬은 소년에서 사춘기 청소년으로, 그리고 연애에 몰두하는 청년으로, 갓 결혼한 유부남으로 나오며 <도둑맞은 키스>(1968), <떠나간 사랑> (1979) 등이 이 드와넬 시리즈에 속한다. 특히 드와넬을 연기한 배우 장 피에르 레오는 트뤼포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트뤼포는 얼마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사랑의 묵시록>(1973)은 트뤼포의 수줍은 자기고백이자 열혈 영화광인 트뤼포가 영화 만들기에 대한 애정을 낭만적으로 담아낸 중기 대표작이다. <아델 H의 사랑>(1976), <이웃집 여인>(1981) 등의 영화도 섬세한 통찰을 보여줬다. 배우로서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1984년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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