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기]아직도 끝나지 않은 "냉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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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난 5월 한달 동안 티모르 로로사에("티모르에 태양이 뜬다"라는 뜻으로 독립 동티모르의 새로운 이름이다)와 베트남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다녔다. 물론 날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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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인구 80만의 조그만 섬나라, 세계사의 흐름에서 비껴 서 있을 것 같은 동티모르의 역사는 식민통치와 냉전을 경험한 아시아의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400년 넘게 지속된 포르투갈의 식민통치에 끈질기게 저항했던 티모르인들은 지난 1974년 포르투갈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독립을 눈 앞에 둔 듯 했다. 포르투갈이 "식민지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인도네시아의 침공이 뒤따랐다. 명분은 "독립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선량한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것.
|contsmark4|동티모르 사람들은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인도네시아군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약 20만명의 티모르인들이 살해되거나 굶어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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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7|하지만 국제사회는 티모르인들의 독립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독립을 요구하는 식민지 민중과 "반공"을 앞세운 외세의 개입. 우리는 여기서 냉전이 아시아 각국 민중에게 "식민주의"라는 또다른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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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이런 갈등은 베트남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이 젊은 시절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참석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민족자결"을 주창한 윌슨에 매혹돼 1차대전 전승국 대표들에게 베트남의 독립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호치민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뒤 호치민은 신생국 소련에서 베트남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기대하게 되었다. 손문이 그랬고 식민지 조선의 이동휘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민족독립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었고 이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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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1936년 프랑스에서 사회당이 주축이 된 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그들 역시 베트남에서 식민지배를 끝내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베트남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프랑스를 베트남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잠시, 곧바로 미국이 등장했다. 미국은 "반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베트남에 개입했다. 베트남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호치민이 소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온 것도,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첩보부대를 도와 활동했던 것도 미국의 적대적인 태도를 바꾸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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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그렇게 해서 "20세기 인류 양심의 시험장"이라 불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은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고 베트남은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의 대가는 참혹했다. 300만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아직까지 140만을 넘는 사람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contsmark17|이런 전쟁에 우리가 참여했다. 독립을 위해 총을 든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군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군을 바라보던 시선과 얼마나 달랐을 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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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0|이쯤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양민학살 논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건 물론이다. 하지만 양민학살 문제가 베트남전을 재평가하는데 있어 모든 것인 양 되어버린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민간인만 죽이지 않았으면 베트남전 참전은 괜찮았다는 건지? 베트콩을 죽인건 정당한 일이었다는 건지? 베트남인들에게 베트콩이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부모, 형제, 친구들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안중근, 유관순을 생각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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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3|동티모르와 베트남 취재를 마치고 두 가지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냉전은 끝났는가? 식민주의는 끝났는가?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20세기 마지막 식민지 동티모르가 독립을 한 마당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시대착오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고 나는 어느 질문에도 자신있게 "끝났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contsmark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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