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신상공개,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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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인권]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언론인권센터 1인미디어특별위원회
흉악범 신상공개를 둘러싼 논란

최근 연쇄살인사건 범인의 신상정보가 신문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인권과 알권리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악질적인 흉악범에 대해서는 공인(public figure)과 같은 수준의 신상정보가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사법적 판단과 피해자의 인권 차원에서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권, 국민의 알권리, 국민의 법 감정, 그리고 원론적 논의가 뒤엉키면서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토론이 활발하다. 다음 아고라의 한 토론글은 게시된 지 4일 만에 조회 수가 7만 건이 넘었고 토론 글도 1,700건이나 달렸다. 대부분의 네티즌 의견은 흉악범에 대한 사회적 경종과 살인자에 대한 인권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략 80%정도가 공개에 찬성하고 20%가 반대한다는 의견을 달고 있다. 또 다른 인터넷조사에 따르면, 네티즌들은 90% 이상이 흉악범에 대한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사건 전개에서 하나의 입장이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런 이분법(二分法)적인 논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인권이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그것이 어떤 절차를 통해서 결정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정보공개의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어야

▲ <한국일보> 2월 3일 3면
그런 의미에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직 한국의 프라이버시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수준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이드라인이 정비되거나 법제화 논란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전에도 유사사건이 있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지적 외에 고민의 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부분은 학문을 하는 이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결과론적으로 이번 언론의 범인 신상공개는 그 찬반을 떠나서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인권의 범위와 절차, 방식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종합적인 대책마련과 사회적 합의 필요

두 번째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사회적 합의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하면 일희일비하면서 즉자적인 대응에 익숙하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모아가고 그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협의의 모델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에서도 범인이 검거되자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더니 급기야 언론이 먼저 마스크와 모자를 벗기고 신상을 공개하는 과정을 보였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서는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현재의 법체계와 국민의 법 감정, 알권리와 피의자 인권 간극 사이의 갈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인권 등 여러 문제가 중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 2월 1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PD저널은 자체 모자이크 처리를 했습니다) ⓒMBC
그런 맥락에서 이번 언론의 정보공개는 사건의 본질과는 다른 맥락으로 논의가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알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범죄예방효과 차원에서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기사와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자극적인 반응,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보다는 일방에 대한 배제 등이 우려된다.

요컨대, 신상정보의 공개냐 아니냐는 논란은 어쩌면 부차적일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교훈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사회병리적 흉악범죄의 원인과 대안분석, 그리고 여러 대책이 마련된 이후 성범죄자와 같은 정보제공의 범위와 절차 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절차 없이 사회적인 감정이나 여론에 밀려 언론이나 법 집행당국이 자의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럴 경우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문제가 다시 나중에 등장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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